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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Nov 14. 2022

내가 일본까지 그림책을 사다 나르는 이유

책사주는 인테리어 육아가 아닌 책을 읽어주는 책 육아를 위하여.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행하던 이른바 책 육아. 아이에게 영상 시청보다는 책을 읽어주고, 즉각적인 반응이 오는 자극적인 장난감보다는 책을 쥐어주는 육아 방식을 널리 일컫는 표현인데, 나는 이 책 육아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와 내 아이 사이에 존재하는 순수한 방식까지도 트렌디한 용어로 구별되는 게 싫었고 무엇보다 책사 주는 인테리어식 육아가 더 도드라져 보였기 때문이다. (출산 전의 나는 많이 삐딱했다)


그런 내가, 아이가 태어나고 한 2년 반 동안은 열심히 책을 사다 날랐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순수 한국 창작부터 외국문학까지도 한국어로 된 그림책을 말 그대로 열심히 사다 배에 실었다. 일본에도 좋은 그림책은 많지만, 엄마로부터 아이에게 전해지는 언어는 하나로 통일하고 싶었고, 그 언어는 나의 모어인 한국어이길 바랐으며 한국어로 된 그림책이 아이와 나의 유일한 의사소통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욕심과 서포트는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한다. 과유불급이라고, 책'인테리어'를 하기 위한 내 욕심이지 않으려고 직접 만지고 보고 사지 못하는 대신 부단히 서치 하고, 내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고, 산만큼 열심히 읽어주었다. 덕분인지 우리 아이는 정말 잘 따라와 줬다. 

세상 모든 아이들을 아는 것도 아니고 정량적 데이터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1. 기본적으로 몸으로 노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등등의 특별활동 외에는 책을 읽어줬고 신생아 때부터 지금까지 읽어주는 데로 거부 없이 다 집중했다.

2. 엄마가 읽어주지 않을 때는 스스로 책을 뽑아 왔으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책 기둥을 보고 무슨무슨 책이라며 제목이나 스토리를 중얼거리며 본인이 골라왔다.

3. 글밥이 꽤 많은 책까지 섭렵하며 중간에 책을 덮거나 딴짓을 하지 않고 항상 엄마가 머물러 있는 페이지에 딸의 시선도 함께 머물러 있었다.

4. 같은 페이지도 매번 질문이 달랐다.

5. 내가 늦잠을 잘 때면 아주 가끔, 아이는 엄마 아빠를 깨우는 대신 조용히 뒹굴거리다 책을 몇 권씩 뽑아한 페이지씩 넘겨보고 있었다. (한글을 모르니 엄마가 읽어줬던 음성을 기억하며 복기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6. 책에서 익힌 내용을 실생활에 응용, 적용했다.

7. 설명하지 않아도 시제를 이해했다.

8. 엄마가 섞어쓰지 않기 위한 노력을 했기 때문이지만, 본인이 사는 나라, 엄마의 나라, 아빠의 나라의 언어가 다름을 인지하며 우리 아이 또한 섞어 쓰지 않는다. 사실 월령을 더해갈수록 이게 가장 놀라우면서도 목표했던 바이기도 한데 어린이집에 데리러 갔을 때도 우리 아이는 언어전환이 빠르다.


-지금은 세돌을 앞둔 아이지만 이 글을 썼을 때가 두 돌 즈음 나타났던 효과였고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복직 후에는 아이가 더 많이 읽어주길 바라는 데도 내 체력이 허락하지 않아 억지로 재우는 날들이 더 많다...-

번외로, 엄마 입장에서 효과를 가장 느낀 것은

9. 우리아이의 취향, 성향, 성격을 잘 알수 있었다는 것.




쓰다보니 잘난척 같기도 하고, 한국은 워낙 모든 것이 빠르고 멋드러진 육아템, 화려한 교육 인프라가 많기에 이것보다 훨-씬 앞서나가는 아이들이 많은걸로 안다.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수도. 그런데 원래 육아라는 게 그렇지 않나. 내 깜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러나 내 그릇 밖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것. 

다행인지 불행인지 복직하고 나니 아이를 위한 [검색]같은 것에 시간을 할애할 수 없어서, 주말이면 그저 뒷동산이든 앞동산이든 뛰어놀다 배불리 먹고 졸리면 세식구가 뒤얽혀 잠들고, 평일이면 아침저녁으로 부비부비 하는 것이 다 인 일상. 거기에 책 한스푼 더하기. 그 이상으로 채워주는 엄마들도 많고 채워지는 아이들도 많다는 걸 잘 알아서 가끔은 흔들리기도 하지만.




모든 부모가 나의 자식은 나보다 잘 살기를 바란다. 육아의 궁극적 동기에는 그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후회 없이, 나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기 바라는 마음이 깔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 또한 책을 꾸준히 사다 날랐던 것 같다.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책과 함께 하는 삶이 나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하진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나도 '의식 높은 엄마 역할'에 매몰되어 의욕에 가득 차서 읽어준 것도 있고 '아이가 뭘 알까'라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남편 역시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가뜩이나 좁은 일본집에 책이 자리 차지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남편의 걱정이나 나의 불안과는 달리 아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내게 보여줬고 덕분에 육아에도 자신이 생겼다. 이를테면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3개 국어와 코로나, 그리고 왕래하며 지낼 지인 하나 없는 타지 생활 속- 아이의 한국어는 빠른 속도로 틔였고 공감력은 말할 것도 없고 관찰력과 기억력까지 좋다. 처음엔 책 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던 남편도 이제는 괜찮은 영어책 없냐며 넌지시 물어오곤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아이들의 넓고 깊은 우주를 내 짧은 견식과 경험으로 방해하지만 않으면 아이는 알아서 잘 자라줄 거라 믿는다. 늘 부모의 불안과 흔들림이 문제이지, 아이 본인이 갖고 있는 문제는 별로 없다. 나 또한 아이만큼 성장이 멈추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고, 왜 책을 선택했는지 초심을 잃지 않고자 한다. 내 아이가 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크기를(나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상대성을 이해하며 자연스레 무엇보다 나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자존감 높은 아이로 자라기를(나 또한), 내가 알지도 못하는 디지털 공룡들이 내 아이를 괴롭힐 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 있을 때 혼자 고립되지 않기를.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아이로 자라기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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