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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Mar 07. 2022

별 헤는 밤

별이 바람에 스치우던 그 날의 밤.

생일 및 복직 전 휴식을 위해 남편이 기획한 여행으로 우리 가족은 도쿄에서 남쪽으로 세 시간을 넘게 달려 이즈고원(伊豆高原)에 있는 온센을 다녀왔다. 사실 난 저혈압이기도 하고 뜨거운 물에 오래 있는 걸 잘 못해서 온천욕을 즐기는 편은 아닌데 일에 쫓겨 바쁜 남편이 급히 기획한 여행인지라 이 시국에 어디 멀리 갈 수도 없어 5박 6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호캉스를 뛰어넘는 일본의 오모테나시(대접)이나 호사롭게 받아보자 싶어 감사히 떠났던 여행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우린 한창 풋풋했던 그 시절 이미 이곳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아침저녁 남이 해준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이 호텔은 늘 바로 옆 바다에서 생선을 그날그날 잡아오는 건지 뭔지, 저녁 코스는 말할 것도 없고 아침 뷔페에 함께 나오는 회마저도 긴자 거리에서 수십만 원을 내고 먹는 맛이 날 정도로 그 식감의 탄력이란, 정말이지 일품이었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너무나도 오랜만에, "행복하다"를 내내 입에 달고 살았고 옆사람도 뿌듯해했다. 비록 그 천국에서도 미운 두 살을 심심치 않게 잘 돌보는 일은, 우리에게 고된 육아노동의 피곤함을 선사했지만.



방의 뷰역시 말할 것 없이 좋았는데 저녁에 에바를 재우고 나 홀로 내려간 노천탕에서 올려본 밤하늘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탄성을 내지를 정도로, 내 생에 가장 많은 별들을 보았다.


도시에서 가끔 떠있던 한 두 개의 탁한 별들을 보며 호들갑을 떨곤 했었는데, 여기서 보이는 별들은 그동안 교과서에서만 보던 별들이라 더 현실감이 없었다. 마치 눈앞에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듯, 새카만 밤하늘 수십 곳에서 확실한 존재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출처:トラベルjp

'이런 좋은 것은 에바와 봐야 하는데. 하늘의 별을 따다 주지는 못해도 꾸준히 별과 하늘을 보여줄수 있는 엄마는 되고싶다.'


그렇게 며칠을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눈호강을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날 밤 그동안 가던 곳과 다른 방향이지만 꼭대기에 있는 노천탕으로 올라갔는데 되려 별이 더 적게 보였지만 여전히 도쿄에서 보던 별들보다 확실하게 빛나는 별들이 있었다. 여전히 그날 밤의 색은 맑았고 공기는 청량했으며, 밤인데도 포근했다.



문득 뒤돌아보면, 딸이 온 몸으로 발산해내는 매 순간의 사랑치(値)가 늘어나고 있었다.

말이 폭발적으로 트이기 시작하면서  작은 그녀의 좋고 싫음의 표현이 분명해지니 나는 그조차도 버거울 때가 많았다. 그녀의 성장을, 징징댄다 나무라고 보챈다고 뿌리쳤다. 하지만 '나는 엄마니까' 너에게 돌아가 변함없는 애정을 심어줘야 한다며 꾸역꾸역 마음을 추스리던 날들도 많았다.

덩그러니 나 홀로 앉아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있는 그대로의 나를-엄마를- 보고, 담고, 새겨놓은 그녀의 한결같은 눈망울이 떠올랐다. 엄마가 욱해도, 좀 못하더라도, 건성으로 시간을 흘려보내도, 있는 그대로의 엄마를 늘 좇아오던 그녀의 눈. 그렇게 앉아있는 내내 딸아이 생각을 했다.


내 인생에서 언제 또 이렇게 확실하게 가치 있는 순도 100%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너무나 감사하다. 지치고 힘들어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마다 늘 변함없이 곁에서 손을 내어주고 기다려준 건 내가 아니라 나의 작은 요정, 그녀였다.


지치고 짜증스러울 때마다 똑똑히 기억할 테다. 아빠가 재워주려고 읽어주는 동화책이 끝나면 거실로 쪼르르 나와 엄마보고 재워달라고 하는 대신, "엄마 보고시포또" 라며 베시시 웃는 그녀의 사랑스러움을.


딸아이에게 항상 잘하겠다는 다짐은 차마 못하겠지만 내 나름 최선을 다해 언젠가의 그날까지 그녀의 사랑에 보답해야지.


새카맣고 거룩하기까지 하던 밤하늘 앞에 알몸으로 홀로 앉아있던 작디작은 내가, 몸 둘 바 모르게 분에 넘치는 그녀의 큰 사랑 앞에 숙연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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