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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Aug 08. 2022

의샤션섕님이 되겠다는 딸.

두유 love me ?

일요일 오후, 쇼핑몰 나들이 갔다가 아이가 크게 다쳤다. 엄마들이 가장 가슴 철렁하는 순간. 게다가 난 엄마로서 또 같은 실수를 했다. 유모차에 태운 직후 안전벨트를 채우지 않고 있다가 아이가 매장에 있던 인형을 보겠다고 떼쓰는 와중에 갑자기 유모차에서 떨어진 것이다. 처음엔 그저 깜짝 놀라기만 했는데 아이의 턱이 찢어졌다. 피가 흘러넘쳐 원피스를 빨갛게 적시는데 내 정신이 아득해진다. 벨트를 채우기 전에 과격하게 유모차를 돌려버린 남편을 탓하고 싶어 지고, 그 순간에도 남편을 원망하려고 하는 나 자신이 미워진다. 무엇보다, 태우자마자 벨트를 채우지 않은 내 죄가 가장 크다.


정신없이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야간/휴일 진료가 필요할 때 주변 병원을 연결해주는 샵팔천번(#8000)을 통해 결국 소아 쪽으로 유명한 엄청나게 큰 병원 긴급 외래를 받게 되었다. 워낙 큰 병원이라 약 3시간을 기다렸는데 대기실에서 물외에 음식 섭취는 '자제'해달라네. 세 돌도 안된 아이와 세 시간을 아무 오락거리 없이 (다행히 손안에서 즐기는 달콤한 悪, 너튜브의 존재는 모른다!) 어떻게 버티나.

아무것도 못 먹기도 했고 배가 한창 고플 때라 몰래몰래 과자를 쥐어주는데 그걸 또 뒤돌아 얼굴만 가리고 과자를 받아먹는 딸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갖고온 동화책2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떼우기에 이도 저도 안돼, 손가락 인형으로 인형극을 시작했다.

"안녕 에바 야, 여긴 어디야?"

"음-음- 여긴 의샤션섕님이 있는 병원이야! 턱이 아파셔 와써! 의샤선생님이 도와줄꼬야" (엄청 씩씩한 목소리로)

"그래? 턱이 왜 아파?"

왠일인지 대답을 하지 않는 에바...

"턱 왜 다쳤어?"

(엄청 작은 목소리로) "안전벨트 안해서....."

"그랬구나, 아프겠다.. 엄마아빠 미워?"

(작지만 주저 없는 목소리로) "안 미워"


그전까지는 하나도 안 아픈 아이처럼 씩씩한 목소리로 노래까지 부르던 아이가 병원에 온 이유를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거 보니 본인 딴에는 본인이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나 보다. 한창 자책하고 있던 그 엄마에 그 딸인 건지,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한 엄마 아빠가 밉지 않다는 딸의 말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그렇게 겨우겨우 의사 선생님과의 대면진료. 상처가 생각보다 깊지 않아서 꿰맨다면 2,3 바늘인데 잘 보이는 곳이 아니니 상처를 오므려 재생 밴드를 붙이는 치료로도 충분할 것 같다는 소견에, 굳이 아이 몸에 바늘을 쑤시고 마취시키는 것이 내키지 않아 재생 밴드만 붙이고 돌아왔다. 소개장이나 긴급 후송된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 선정비 8800엔. 렌터카 비용 등 합치면 한화 약 십만 원이 넘는 돈으로 또 인생공부를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아이는 그날 일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을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하는지, 큰 영감을 받았나 보다. 쉼없이 조잘대던 아이가 갑자기

"크면 의사선섕님이 될꼬야! 엄마 아풀 때 두유를 줄 수 이쑤니까."

라고 외친다.


엄마가 아플 때,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기꺼이 내어주고자 하는 그 마음-


이 세상에 어미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보다 숭고한 희생은 없다 싶었는데.

내가 감히 헤아리지 못한 아이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가장 깨끗한 진심에 전에는 없던 감정을 느꼈다.


시기를 놓쳤다고 아쉬워하지 말자,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이한테 배울수도 있는거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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