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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Sep 26. 2022

화장하기 좋은 요즘

워킹맘 6개월 차 이야기

복직하고 벌써 반년이 지났다. 업무적 성취도나 만족도가 엄청 높은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큰 풍파 없이 적당히, 미지근한 시간들을 잘 보내고 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회사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 2,3회는 남편과의 협의를 통해 출근하고 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로, 말하자면 각자가 파트타임 마냥 시프트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셈인데 재택 하는 사람이 딸의 오쿠리무카에(데려다주고 데려오기/일본은 스쿨버스가 흔하지 않고 자가용 이용률 역시 낮으므로 어린이집까지 전동 자전거로 엄마 아빠가 직접 데려다주고 데려온다)를 담당하고 출근하는 사람은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식이다. 늦게까지 남아있을 때면 회사 사람들이 "어머 애는 괜찮아?"라고 물어오는데 의기양양 '심리스 워크데이'(seamless-workday)라 대답한다.



다들 복직하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힘들지는 않은지 염려 아닌 염려를 하지만 커리어 지향적 여성인 아니라 믿었던 나 조차도 일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아니, 수월하다는 표현은 오해가 있겠고 오로지 나만의 시공간이 하나 더 생긴 느낌이다. 미혼일 때는 일 아니면 사생활 정도로 온오프의 스위치만 있었다면 지금은 온/온/오프의 세 가지 모드를 가지게 된 기분이랄까. (뭐가 오프인지는 굳이 정의하지 않겠다...)


특출 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같이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은 생계의 수단의 측면이 크지만 동시에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걸 화장하면서 깨닫는다. 요즘 출근 전 화장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미혼일 때에 비하면 워킹맘이 되고 난 지금, 사회와 가정에서의 내 '역할'이 나뉘어 있다. 그렇기에 여러 가지 내가 있을 수 있고 그중 하나의 내가 회사라는 사회의 한 조직 속 타인을 대하기 위한 얼굴을 만들기 위해 화장을 하는데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는 여배우가 된 듯 즐겁다. 집에만 있을 때보다 예뻐 보여서 즐겁기도 하고 화장하는 시간은 올곧이 내가 나를 접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색깔을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따로 갖는다고 해봤자 다들 스마트폰 속을 탐험하거나 좀 더 생산적인 자기 계발을 하거나 먹거나 자거나 일 텐데, 진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은 화장할 때 밖에 없지 않을까.


육아휴직중에도 행복했고 나름의 인연들이 있었고 나를 성장시켜준 시간들 이었다고 믿는다. 절대 그런 상황들을 탓하려는 것도 아니고 자기 연민에 빠진 것이 아니다. 그저 모 아니면 도, 한번 빠지면 깊숙이 빠지게 되는 나란 사람이 육아에 매몰되어 있었던 근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루어뒀던 나란 개체를- 복직 후 이름을 불리며 자각하게 되었고 거울을 마주하고 요리조리 색을 입히며 다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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