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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Jun 19. 2023

인문학의 끝

좋아함과 사랑함의 사이

며칠을 아파서 어린이집 등원이 좀처럼 어려웠던 나날.

가뜩이나 밴댕이 소갈딱지인 엄마는 체력도 딸리고 애매하게 업무와 육아 사이에 매달려 있다 보니 아이의 짜증을 받아주느냐 지쳐있었고, 점차 아이의 눈을 마주 보기보다는 설거지를 우선하고, 누군가의 메시지에 답장을 하거나 SNS스크롤을 내리며 훈육이란 이름의 화를 낼 때만 그녀를 마주하였다. 이 정도면 아이가 엄마 짜증을 받아주는 건지 엄마가 애를 보는 건지.



엄마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한창 색종이로 혼자 썩 잘 논다. 떼를 쓴다고 엄마를 자기 앞에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러려니 하나보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 부드럽게 부탁해 오는 딸.


"엄마아 같이 놀자아아아"

-그래 잠깐만

"엄마?"

-...

"엄마? 엄마엄마엄마엄마- 같이 놀자아."

-알았어!!


마침 설거지를 끝내고 투벅 하게 걸어가 딸아이 앞에 탁 앉았는데, 참 옹졸한 질문을 했다.


-너 왜 엄마랑 같이 놀고 싶어? 엄마랑 같이 놀고 싶은 이유 딱 두 가지만 말해봐. 그럼 놀아줄게.

"ㅇ.ㅇ! 음..... 음... 음, 음, 엄마 많이 좋아해.

-그리고?

"그리고 에바는 엄마 사랑하니까."


글을 쓰다 보니 나란 사람 참 치졸하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애를 심문하는 나.

-그거 똑같은 이유 아니야?!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가 뭔데? (나도 나다.) 뭐가 다른지 말해봐.

"음, 음....."

잠시 생각하는 딸.


"좋아하는 거는, 음, 좋아하는 거랑 안 좋아하는 게 있는데

사랑하는 거는, 음 안사랑하는 건 없어."


어느 별에서 왔니 너란 아이. 그대로 집어삼키기에 반짝거리는 이 아이의 우주가 너무나 커서, 천천히 곱씹었다. 인문학이 형태를 갖고 있다면,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이 아이가 아니었을까.



나란 사람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아이를 훌쩍 커버린 딸이 꼭 안아준다.

조금만 천천히 커줄래. 엄마도 너에게 흠집 없는 사랑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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