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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Sep 13. 2023

내가 착하다는 건 아니지만,

당신의 이야기가 불편하군요.

오랜만에 야근을 하다 보니 어쩌다가 남은 사람들과 저녁을 간단히 먹으러 갔다. 

"A상이 말이에요..."

"K부장이 사실은 이런 전화를 밤 12시 넘에 걸어와서는..."


뭔가 속에서 꿀렁거린다. 화제 속 부장님을 흠모하는 것도 아니고 존경하는 것도 아니지만 불편했다. 한편으로는 그 화제가 된 '일련의 사건'에 한해서는 남의 일이지만 분했다. '그건 좀 실망인데!'하고 내뱉었다.


"비형이라 공감능력이 없나 봐. 섬머, 너는 무슨 형이니?"

"아니 전 비형이지만 혈액형이랑 상관없잖아요?"

"아- 비형 질타해서 섬머가 삐졌네~ 섬머는 알기 쉬워~ 금방 티나~(자기들끼리의 웃음)"


아아. 말려들었다.



술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타인-완전히 남이라고 생각하는-과의 술자리가 불편할 때가 있다.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안주로 올리면서 입방아를 찧게 되는 상황. 다들 공정한 듯, 있는 사실만을 얘기하는 듯, 내가 겪고 본 것만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게 되다 보니 부풀려지게 마련이고 결코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굳이 편을 나누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착하다는 것도 아니지만,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이 영 불편하다. 가능한 한 그런 화제에는 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한마디 거들지도, 듣지도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화제가 되고 있는 그 사람한테서 나 역시 당한(?)적이 있기도 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을 때도 있지만 뭐랄까, 그때그때의 감정만 표현하고 마는 편이랄까. 출구 없는 담화를 위한 담화는 다수의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이야기가 돌고 돌아 결국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이야기로 번지게 되고 괜스레 빈정만 상한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 누군가의 테이블 위에 올라 보기 좋은 안줏거리가 되겠지. 진짜 그 사람의 생각은, 맥락은, 아무도 모른다. 다 큰 어른들이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오징어땅콩으로 삼는 것- 집단폭력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으론 직장을 다니다 보니 매니지먼트가 팀원에 대한 흉을 보는 게 특히나 별로다.)



어쨌든 나는 처음부터 그 화제에 끼고 있지 않았는데. 원래 혼자 담담히 목을 축이고 있었을 뿐인데 괜스레 같은 비형으로 매도당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 의해 '화난 사람'이 되어버렸다.

황당해서 아니라고 말할수록 더욱 멋들어진 표적이 돼버리기에 애써 다른 화제에 기분 좋게 가담해보려 하지만, 이 모든 나의 반응이, 누군가에게 설명을 하고자 하는 핑계 같아 구차하다. 


아아.

모든 것이 성가시다. 


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고, 소셜 미디어를 할 때 역시 여러 가지 첨언들과 이미지들을 잔뜩 붙이게 마련인데 왠지 그것들 모두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데로 남들도 생각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구구절절한 핑계같이 느껴진다. 덕분에 귀가길, 누군가에게 메세지를 보내기를 관두고, 내 공간에 오랜만에 글을 남기고자 하는 동기로 연결되었다.


늦은 퇴근 후 잠시 내려다보는 남편과 딸아이의 옆얼굴을 내려다보며-내가 정말 지켜야 되는 건 이 두 사람 말곤 없었다. 모든 것이 일체 부질없게 느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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