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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Nov 14. 2021

잘하려는 마음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끝이 난다.

짧은 경험에서 나오는 개똥철학

잘해보겠다는 마음이 클수록 나 자신에 대한 기대가 커져 쉬이 무너지게 마련이다.

너무 창피하지만 남편의 번아웃을 생활에서 뒷받침해나가겠다 다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몇 번 현타가 찾아왔었다. 사실, 남편의 번아웃이 문제가 아니라 결혼하고 얼마 않되 육아로 쉼 없이 달리는 탓에 서로에게 정성을 들여본지가 오래된 것 같아 이번 일을 계기로 노력해보고자 싶었더란다. 방송에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연예인이 나와 신혼 때는 치약 짜는 길이 갖고도 싸우는 게 부부라던데. 첫 3년은 원래 다 싸우는 거라고.


아무튼 내 딴에는 정말 이 악물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점점 당연하게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바뀌려고 하고 있다는 걸 눈치나 채었을는지 이가 갈렸다.


아 나왔다.

부부지간에 절대 해서는 안될 나쁜 버릇 탑 투.

 

그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누가 했다, 누가 안 했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 (주로 '내가 더 많이 했다'고들 착각한다)


이 둘은 거의 세트로 움직이며 한 쪽만 출몰하는 일은 잘 없는 것 같다.


이 콤보와 치사함을 좀 섞으면 커뮤니케이션이 점점 넘겨짚음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샤워할 때 하수구 막혀 있는 것 같지 않았어?"

-욕실 청소하라는 얘기지?

"엇, 벌써 어두워졌네. 빨래가 아직 밖에 있네."

-지금 빨래 걷어오라는 거야?


활자로 보면 참 답답하다 싶겠지만 생각보다 평범한 부부들, 연인들 사이에 많이 일어나는 대화방식 아닐까?

솔직히 말하자면 저런 식의 대화 중에 50%는 해주길 원한 마음이 없잖아 있을 테지만 포인트는 상대방에게 상기를 시키고 나서 내가 할테니 알아달라는 마음이었다. 다 떨어져가는 화장실 휴지를 다음에 들어올 짝꿍을 위해 나의 귀찮음과 맞바꿔 새것을 걸어놀때의 동기와(動機) 비슷한 동기랄까?


아무튼 분명 문제가 있기에 이런 '치사한' 부탁은 하지 않으려고 하고 삼시 세 끼를 차리는 일과 뒷정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온갖 3D 집안일은 내가 도맡아 하려 했다. 무엇보다 가능한 한 딸아이의 뒤치다꺼리를 내가 도맡아 하려 했다. 시작은 가능한한 그를 쉬게 해주고 싶었고 온전히 그를 위한 마음에서였다.

그런 와중에 또 발병한 것이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이토록 노력하는 데 티가 안나는 것에 대한 억울함.


그렇게 셀프 현실 타임을 갖은 후 한 달여간 타의 반으로 끊다시피 했던 맥주에 손을 댔다. 맥주 한 캔으로 '하-'하고 불꽃튀기던 긴장이 비로소 탁 풀리는 시간. 물밑에서 열심히 헤엄치는 백조는 아니지만 남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135미리짜리 미니맥주를 얼른 마시며 지치기 좋은 오후 4시 30분, 아름다운 노을에 다시 힘내고자 한 필요한 일탈이었노라 둘러대 본다.


그렇게 그럭저럭 넘기는가 싶더니 어느 아침. 결국 별것 아닌 일에 왈칵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내가 짜증을 낸 것이 아니고 그저 아침을 준비하다 빨리 내놓으라고 징징거리며 보채는 딸과 실랑이를 좀 한 것뿐이었는데.

기저귀를 얼굴로 던진 것이 아니라, 정신없는 아침 시간에 에바의 기저귀 갈이를 부탁하려다 손에서 탁 떨어졌을 뿐이었는데.

빛보다 빠른 속도로 차갑게 변하는 그의 싸늘한 책망의 눈빛에서 가슴이 턱 막히고 말았다.


굿와이프 롤플레이도 여기서 끝나는 건가,

다 내려놓고 성질대로 짜증이나 픽 부려볼까,

난 왜 알아주지도 않는 노력을 부족하게 해서 감사보단 오해를 받는 것일까. 




운동을 배워본  없는 사람처럼 인간관계를  배워본  없는 나의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자꾸 잘못된 곳으로 힘이 들어가 애꿎은 통증을 유발한다. 사람간의 힘의 균형이  50:50으로 맞춰진다면야 부부사이에서도  그만큼만 쓰고 남은 에너지를 다른 곳에   있으니 좋겠지만 자고로 부부지간엔 내가 120정도는 해야 상대에게 50즈음 가는 법이다. 고로 서로가 120은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부부관계의 균형이 맞춰진다. 나는 100이나 하는데 너는 뭐하니 라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알고 있어도 실전에서 잘 안되는 것 역시 부부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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