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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연 Jan 12. 2023

진술을 거부해도 되나

정신없는 상황에서 말을 하다보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르겠을 때가 많다. 다른 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경찰서나 검찰청에서 탈탈탈 영혼까지 털리고 나면 나도 모르게 이상한 말을 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으니, 아얘 답을 안 해버리면 어떨까 생각할 수 있다. 그걸 법으로 정해 놓은 게 진술 거부권이다.


아까 수사관이 재빨리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라고 말한게 진술거부권 고지다.


그런데 실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 사실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작성되는 조서를 보면 어떤 불이익을 받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문     피의자는 2018. 1. 1.에 누구와 있었나요.

답     (묵묵부답하다.)

문     누구와 있었는지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시 공범인 @@@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답     (묵묵부답하다.)



조서만 봐도 이상하다.


왜 말을 안 해?’

뭐 어려운 거라고.’

뭔가 캥기는 게 있으니까 말을 안 하는 것 아닐까.’


수사관이나 검사 뿐만 아니라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진술거부권을 보장하는 이유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이 압력을 행사할 때에는 말을 하는 것보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식으로 조사가 진행된다면 무슨 답변을 해도 소용없으니 입을 닫고 있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법률상 보장된 진술거부권이라고 하더라도 수사관, 검사나 판사가 좋지 않게 보는 ‘사실상의 불이익’이 있으므로, 가능한 한 행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즉, 물어보면 입을 닫고 있는 것 보다는 뭐라도 답을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보통 질문을 받고 즉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는 ①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② 질문은 이해했는데 물어본 내용에 대한 답변이 기억나지 않은 경우, ③ 답변이 어렴풋이 기억은 나는데 말하기 곤란한 경우, ④ 또는 이걸 말해도 되는건지 아닌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다.


그러니 바로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좀 더 생각해보고 답변하겠습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데 다시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라고 일단 유보적으로 대답을 해 두는 것이 좋다.

이런 대답이라도 해 두지 않으면 당신의 조서에는,


문     피의자는 2018. 1. 1.에 누구와 있었나요.

답     (묵묵부답하다.)


이런 식으로 ‘묵묵부답하다’가 바로 적힌다.


아니! 나는 기억이 잘 안나서 생각 좀 해보고 답변하려고 했더니 묵묵부답한 걸로 적어?’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수사관이나 검사들은 성격이 급하다. 처리할 사건이 너무 많아서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 줄 형편이 안 된다. 그러니 당신이 “내가 생각 중입니다.”라고 말해 주지 않으면 바로 당신을 묵묵부답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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