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스피치
지금까지 통역사로 일을 해오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나요?”
입니다. 저도 사실 처음에는 영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학교를 다녔던 곳은 Lewes라는 작지만 굉장히 예쁜 도시였습니다. 하루는 아침에 학교를 가려고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 저 끝에 할아버지 한분이 가만히 서계셨습니다. 저는 별생각 없이 “아침에 산책 나오셨다보다” 하고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길 끝에 가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할아버지께서는 길이 좁아서 가운데서 만나면 서로 부딪힐걸 미리 생각을 하셔서 제가 다 걸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할아버지가 서계신 곳까지 갔을 때에야 비로소 제게 미소를 지어 보이시며 제가 걸어왔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저는 그 할아버지와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저를 배려해주셨던 그분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통역사가 된 지 채 일 년도 안되었을 때 태국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태국이라는 나라에도 처음 가보는 것이었고, 방콕 현지에선 반정부 시위 때문에 하루에도 십 수명씩 사상자가 발생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했기 때문에 저는 매일 아침 택시를 타야 했습니다. 그런데 교통의 지옥이라고 불리는 방콕 시내 한가운데서 그것도 아침 출근시간에 빈 택시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아파트 일층 리셉션에 내려가서 경비원분들께 부탁을 해서 콜택시를 불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직원분들 중에 아무도 영어를 할 수 있는 분이 안 계셨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손짓 발짓을 다해가며 콜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을 해야 했고, 또 어렵게 택시가 오더라도 기사분께서 영어를 못하시면 정말 너무 막막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그런 고생을 하면서 “외국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막막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처음 느꼈고 매일 밤마다 “내일 아침에는 택시를 또 어떻게 타야 하나” 하고 걱정을 하며 잠을 못 이루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하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을 하려고 일층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직원분 중 한 분이 저를 보시더니 작은 쪽지 하나를 내미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봤더니 거기에는 작은 자동차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서툰 글씨로 영어로 “TAXI”라고 쓰여있었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저는 정말 눈물이 쏟아질 뻔했습니다. 왜냐하면 외국에서 혼자 힘들게 일을 하면서 많이 외롭기도 했고, 또 말이 통하지 않는 막막한 상황들을 매일 겪어내면서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는데 비록 그 경비원 분과 저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저를 생각해주셨던 그분의 따뜻한 배려가 저에겐 정말이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매일 아침 제가 내려가면 그분이 저에게 그 쪽지를 보여주시고 제가 웃으면서 “Yes”라고 대답을 하면 신이 나서 콜택시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택시가 오면 직접 택시 기사분께 저희 회사 위치까지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는 통역사로 일을 해오면서 정말 운이 좋게도 마음이 따뜻하고 착한 분들을 너무나 많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나는 통역사니까 말만 잘 알아듣고, 영어로 또는 한국어로 잘 전달만 하면 돼”
하고 생각하고 정작 그 사람을 보지 못했던 제가 얼마나 오만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어떤 자리에서 통역을 하든 단순히 말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통역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언어를 연결해주는 프로세스인데 거기에 저의 작지만 진심 어린 배려가 더해졌을 때 훨씬 더 따뜻한 소통이 완성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누구의 말을 통역하든 말보다는 사람을 먼저 볼 수 있는 통역사가 되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VButORi4AQ
[법과 영어 연구소 아우디오 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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