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나라에 큰 사태가 하나 터졌다. 바로 한-미, 한-EU FTA 오역 사태이다. 언론에서는 국가적인 망신이라고까지 했고, 당시 외교통상부에 있어서는 정말 큰 비상사태였다. 통역사인 나도 관심 있게 기사를 보며 매일매일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외교통상부에 통역사 채용공고가 난 걸 알게 되었다. 오역 사태가 나기 전에는 외교관들이 처리했던 협정문 번역 업무를 이제는 전문 통번역사를 채용해 그 일을 전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반신반의 하며 이력서를 내보았다. 그때 연구원에서 일이 몰리는 바람에 한동안 야근을 많이 하던 때였다. 그래서 서류심사를 통과했다는 전화를 받고 면접시험 전날까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면접시험 바로 전날 늦은 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부랴부랴 낮에 찾아두었던 FTA 관련 기사들을 읽어보며 면접 준비를 급히 했다. 꼭 1년 전 스무 곳 가까이 면접을 보러 다니던 때가 생각나 이번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 1년 전 경험들이 도움이 되었는지 기사들을 훑어보니 면접에서 어떤 내용을 질문할지 대략 예상이 되는 게 신기했다. 면접 당일날 1년 전처럼 정장을 차려입고 떨리는 마음으로 광화문으로 향했다. 건물 앞에서 출입증 검사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대기하던 회의장의 위엄 있는 인테리어까지 역시 외교통상부는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는 번역시험을 봤는데 협정문의 일부였던 것 같다. 나는 아차 싶었다. 번역시험 준비를 못한 것이다. 다른 지원자들이 대기실에서 형광펜으로 열심히 줄을 그으며 읽고 있던 자료가 바로 협정문이었는데 나는 그때까지 FTA 오역 사태와 관련한 기사만 읽어보았지 정작 협정문 자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영어문장의 구조가 매우 복잡했고, 어떤 문제는 한 문장이 거의 페이지 끝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복잡한 구조를 파악하는 것만도 어려웠는데 한국어로 수식 및 논리관계가 정확히 번역되도록 하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게다가 추운 날씨에 긴장까지 더해져 손으로 쓰는 속도도 느리고 글씨도 엉망이었다. 결국 나는 마지막 문제를 못쓰고 나와야 했다. 점심시간 후에 통역 시험과 면접이 있었는데, 나는 그냥 이대로 집에 갈까 하고 잠시 망설였다. 다들 저마다 협정문을 열심히 공부하던데 협정문 한 번 읽어보지 않은 내가 번역을 제대로 했을 리 없고 또 마지막 문제는 아예 건드리지도 못하고 나왔으니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점심시간 동안 잠시 나가 머리를 식히며 이왕 온 거 면접까지 잘 보고 가자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거의 끝 순서였다. 면접이 이루어지는 회의장 밖에서 기다리는데 바닥에 깔린 빨간 카펫이며,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갈색 문이며 모든 것이 내게는 신기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회의장 안에 양 쪽으로 길게 회의 테이블이 이어져 있었고 내가 앉은 반대편에 심사위원 다섯 분이 앉아 계셨다. 심사위원분들이 돌아가며 질문을 하셨고 나는 성심성의껏 대답하려 노력했다. 내 기억에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두 분이 동시에 질문을 하시는 바람에 어느 쪽을 바라보고 무슨 질문에 먼저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당황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제 버스 안에서 잠깐 읽었던 기사에 있던 내용에 대한 질문이 꽤 많았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체결한 FTA 수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바로 그 면접이 있던 전날 한-페루 FTA 서명식이 있었다는 것 등 기억나는 내용을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리고 심사위원 중 교수님 한분이 “laws and regulations”를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하겠냐는 질문을 하셨다. 내가 우리나라의 법체계에 대한 지식 또는 다른 나라 법과의 비교를 통한 비교법적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UNODC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많은 문서들을 번역하면서 수도 없이 봤던 표현이었기 때문에 나는 자신 있게 “법령”이라고 번역한다고 대답했다(사실 한-미 FTA에서는 “법과 규정”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그게 정답인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어쨌든 내가 아는 건 “법령”이라는 단어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틀리든 말든 무조건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면접을 꽤 잘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집에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면접이 끝나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가운데 앉아계시던 면접위원분께서 마지막 질문이 하나 있다고 하셨다. 당시 FTA정책국 국장님이셨다.
“정다혜 씨는 꿈이 뭔가요?”
하고 물으셨다. 의외의 질문이었다. 통역대학원을 졸업함과 동시에 나는 내 꿈을 이룬 셈이 되었고 내 주위에도 내가 어릴 적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꿈이 뭔지 물어보는 사람은 졸업 후 처음이었고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고 싶었지만, 면접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얼른
“정상회담 통역을 하는 것입니다”
라고 무슨 용기에선지 당차게 대답을 했고 면접은 끝이 났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꿈을 이루었다는 기쁨과 함께 굉장히 허탈한 기분도 동시에 들었다. 지금까지 오로지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며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막상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목표를 향해 또 다른 길을 가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헤매는 듯한 기분이었다. 형사정책연구원에서 일을 도와드렸던 당시 고등검찰청 소속 부장검사님을 다시 뵙고 식사를 하면서도 그런 고민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다. 검사님께서는 본인의 경험담을 들려주시며 지금 눈앞에 닥친 일들만 생각하지 말고, 4-5년 후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내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는지를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가 보일 거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검사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니, 이제는 목표가 없는 게 아니라 그 전에는 몰랐던 수많은 새로운 기회들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이후로 나는 항상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엄마는 한 번씩 내가 수면부족, 과로, 영양 불균형 등으로 응급실 신세를 지고 링거를 맞을 때마다, 뭣하러 서울 가서 혼자 그렇게 고생하며 지내냐시며, 엄마 곁에서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 먹고, 예쁘게 보살핌 받다가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가면 좋지 않겠느냐고 걱정을 하신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난 아직도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는 꼭 이루고 싶은 꿈들이 여러 가지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꿈.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 역시 내 삶을 채워주는 경험이 되고, 또 다른 새로운 꿈을 꾸게 해주는 그런 꿈들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나의 삶의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외교부에 입사해서 일한 지 한참이 지나서 친하게 지내던 서기관님으로부터 내가 그때 면접에서 1등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면접 때 질문을 쉴 틈 없이 굉장히 많이 받아서 대답하기에 바빴는데, 웬일인지 1년 전 보았던 수많은 면접에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대답을 잘할 수 있는 질문들만 골라서 해주시는 것 같아 신기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면접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면접 당일에 운이 좋았던 것도 있겠지만, 1년 전 수없이 최종면접에서 떨어져 보았던 뼈저린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필요 없는 경험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면접 합격 통보를 받은 바로 그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을 해야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매일 뉴스에서는 한-미, 한-EU FTA 오역에 대한 기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고, 외교통상부 내에서는 그 상황을 수습하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오역 수정 작업을 해야 했다. 나와 다른 두 명의 통역사가 함께 채용이 되었고, 우리 셋은 그 사태가 마무리되었던 6월 중순 즈음까지 FTA와 밤낮없이 씨름을 해야 했다. 거의 매일 새벽까지 야근을 하는 것은 예사고 주말도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다. 보통 직장을 옮길 때에는 길게는 한두 달 정도 쉬는 기간이 생기게 마련인데 나는 방콕으로 가기 전날까지 출근했고, 한국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날 출근했다. 그리고 외교통상부로 출근하기 전날까지 일을 했고, 외교통상부로 출근하자마자 야근에 주말근무까지 하고 있으니 일복 하나는 제대로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제일 처음 맡게 된 일은 각 FTA 협정문에 포함된 양허표(Schedule of Concessions)를 검토하는 일이었다. 흔히 양허표라고 부르는 관세양허표는 FTA 교섭에 따른 시장개방의 조건으로 각 수출품목에 따른 관세율 인하 조건과 일정 등을 정해놓은 것이다. 농산품에서부터 시작해서, 각종 공산품, 화학제품 등 수많은 수출품목들이 모두 다 나열되어있는 표이기 때문에 그 양도 어마어마했고,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적힌 표를 하루 종일 들여다보며 스펠링, 숫자, 그리고 HS코드의 품목분류 단계를 나타내는 바(bar)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검토를 하다 보면 정말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때 한 서기관님께서 양허표에 작은 오류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시면서, 대기업의 경우 이 양허표에 근거해서 예측을 한 뒤 아예 공장을 해외로 옮겨버리기도 한다고 겁을 주시기도 했다. 육류의 경우 두 부분으로 절단한 고기를 나타내는 이분도체, 네 부분으로 절단한 고기를 나타내는 사분도체 등의 용어도 굉장히 생소했다. 또 뼈째 절단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으로 나뉘거나, 닭고기의 경우 각 부위별로 다른 품목으로 분류가 되고 또 목이 잘린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털을 제거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발톱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등 세세하게 분류가 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실제 그 동물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점심때 밥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기도 했다. 또 각종 식물과 동물의 학명이 너무나 길고 복잡해 애를 먹기도 했다. 나중에 EU 집행위원회, EU 이사회, ILO, UN Geneva, WTO 등의 국제기구에 출장을 가서 한-EU FTA 번역을 실제로 했던 EU 측 번역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도 역시 그 어려운 학명 때문에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서로 많은 것을 공감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내가 맡은 부분 중에 화학제품도 있었는데, 어떤 것은 문장 끝까지 하나의 화학식으로 된 것도 있었다. 복잡한 화학식의 스펠링 하나하나, 기호 하나하나를 꼼꼼히 비교해야 했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포름알데히드”와 “포롬 알데히드”를 구별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글자 하나하나 꼼꼼히 검토해야 했다. 또 내 힘으로 해결이 안될 땐 화학과 박사인 친척 아지아에게 전화를 해서 한참을 물어 겨우 해결하기도 했다.
양허표 검토가 마무리될 무렵, 우리는 다른 과로 옮겨 이번에는 협정문 본문을 검토하게 되었다. 본문은 양허표와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양허표는 각 수출품목에 해당하는 용어 하나하나가 정확하게 번역이 되어 있는지를 검토하면 되었지만, 본문은 용어 외에도 복잡한 문장 구조, 까다로운 수식 관계 등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수식 관계가 까다로운 문장 구조는 영어실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조문의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물론 국내법과 국제법, 양 당사국의 입장 등 관련 배경지식 또한 필요로 했다. 또 한-미, 한-EU FTA 이전에 체결되었던 다른 협정문들과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에 한 번에 여러 협정문을 동시에 보며 검토를 해야 했다. 그 전에도 번역하기 어려운 문서들은 많이 접해봤지만, 협정문은 완전히 새로운 분야였다. 거의 3개월에 가까운 기간 동안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말고는 FTA 협정문과 함께하고 나니 처음에 비해 훨씬 익숙해져 협정문의 복잡한 문장 구조가 편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기체결 협정문들을 수없이 비교, 검토했기 때문에 각 협정문들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 번역은 어떻게 다르게 되어 있는지도 자연스레 머릿속에 남게 되었다. 특히 양허표의 용어들은 거의 다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 후 일했던 외교부 국제법률국 조약과에서도 국내절차를 위해 FTA의 양허표를 포함한 본문을 검토했는데, 특히 양허표는 거의 찾아보지 않아도 틀린 것들이 신기하게도 눈에 쏙쏙 들어왔다. 빠른 속도로 눈으로 훑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관세율표나 최근 서명한 다른 협정문을 찾아보면 어김없이 번역이 잘못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느라 피곤한 상태인데도 얼핏 봐서는 그 차이를 모를 정도로 미묘한 오타가 눈에 쏙 들어올 땐 스스로가 놀랍기도 했다. 이렇게 협정문 또한 “learn the hard way” 한 것이다. 법률번역 강의를 할 때, 나는 매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꼭 FTA 협정문 하나를 골라 본문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한국어를 비교하며 읽어보라고 권한다. 협정문의 구조와 스타일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처음엔 무조건 많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 tipping point를 넘어서면 대부분의 조문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된다는 걸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그걸 알려주고 싶어서다. 매주 학생들의 과제를 검토하다 보면 학기초에 협정문 숙제를 성실히 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신기하게도 번역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외교통상부에 입사하자마자 우리가 맡았던 일이 매일 언론에서 hot potato가 되었고, 퇴근할 땐 시위대를 피해 출입증을 숨기고 다른 출구로 돌아가기도 했다. 또 협정문 외에도 위키리크스 사건, 쌀 개방 이슈, 론스타 사건 등 굵직굵직하고 민감한 사건들과 관련된 문서를 일부 번역하기도 했는데, 그중 한 문장이 어느 소송에서 문제가 되어 우리 팀의 다른 에디터(우리나라 정부기관에서는 통번역사를 에디터라고 부른다. 처음 우리가 외교통상부에 들어왔을 때 보다 전문적인 법률문서를 다루는 통번역사라는 뜻을 담은 새로운 타이틀을 만들려고 했으나 결국에는 에디터로 불리게 되었다)가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뻔하기도 하고(다행히 번역에는 문제가 없었다), 모 신문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이 제기되기도 하는 등 아찔했던 순간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법률문서를 번역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legally binding(법적 구속력이 있는)한 문서는 법적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단어 하나, 심지어 문장부호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못된 의미로 해석되어 적용되었을 때에는 마치 나비효과처럼 엄청난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즐겨보았던 드라마 “신사의 품격” 마지막회에서 김도진(장동건)이 서이수(김하늘)에게 프러포즈를 하며 “건축가는 도면에 그린 선 하나하나에 책임이 있다”는 말을 했다. 법률문서를 번역하는 번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영어로 또는 한국어로 옮기는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FTA 오역 사태가 마무리될 즈음 나는 우리 팀의 다른 에디터와 함께 유럽 출장을 가게 되었다. 제네바 유엔 본부, 브뤼셀에 위치한 Council of the European Union(유럽연합이사회), European Commission(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 세계 지식재산 기구(World Inter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WIPO)를 방문해 우리나라에 비해 일찍부터 발달해 온 EU의 통역 및 번역 시스템을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각 기관을 방문할 때마다 우리는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각 부서에서는 우리를 위해 각 기관의 번역 프로세스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통유리가 천장 끝까지 이어진 통번역사들만을 위한 멋진 도서관, 근사한 통역 부스가 설치된 회의장 등 여러 관련 시설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번역 프로세스별로 담당자들을 만나 번역 업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국제기구 모두 그 건물이 정말 크고 멋졌던 것이 제일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번역 작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최고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어만 조금 할 줄 알면 통역이나 번역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환경과는 사뭇 달라 부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는 전반적인 번역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시설을 둘러보고, 통번역사들을 만나 각자의 방에서 하루 종일 어떻게 업무를 하는지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신기했던 것은 번역사가 타이핑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경우에 따라 번역 내용을 말로 녹음을 하고, 전문 타이피스트가 그 녹음된 내용을 문서로 만드는 작업을 따로 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EU 이사회는 커다란 건물 전체가 유리로 반짝반짝 빛나는 가운데 스무 개가 훨씬 넘는 EU 회원국의 국기들이 차례대로 높이 세워져 있어 들어가기 전부터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말로만 듣던 Juris Linguist(지금은 Lawyer-Linguist라고 부른다)들을 만날 수 있었다. Lawyer-Linguist란 말 그대로 변호사 출신이면서 언어 관련 학위도 소지한 법률전문번역사를 말한다. 두 명의 Lawyer-Linguist가 한-EU FTA와 같은 법률문서를 예로 들어 전체 번역 프로세스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일반문서와는 달리 법률문서를 번역하기 위해서는 법률지식도 필수적이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이와 같은 Lawyer-Linguist라는 별도의 전문가가 오래전부터 이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법률용어의 사용뿐만 아니라 각 언어로 번역되었을 때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여지는 없는지, 그리고 내용과 관련한 법적 검토 등 전반적인 법률 및 언어 검토작업을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국의 국내법 그리고 국제법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우리가 어떤 qualification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우리 둘 다 통번역학 석사학위밖에 없다고 하자 법학 관련 학위나 변호사 자격증이 없이 FTA와 같이 중요한 법률문서를 다룬다는 것에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우리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Lawyer-Linguist라는 별도의 전문가가 없고, 우리 팀이 생긴 지도 몇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재차 설명해야 했다. FTA 오역 사태 이야기를 하며 대한민국의 외교통상부에도 EU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언어 관련 학위뿐만 아니라 법학 학위 또는 변호사 자격을 동시에 가진 말 그대로 Lawyer-Linguist를 양성하는 게 급선무라고 대답해 주었다. 통번역사들은 언어능력은 뛰어날 지라도 법률지식이 없기 때문에 법적 검토는 할 수 없고, 변호사들은 법률지식은 갖추었지만 언어적 측면에서는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할 수 있는 전문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무척이나 걱정이 되었는지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시설을 둘러보러 나가는데 명함을 주며 나중에라도 도움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 뒤로 한동안
“Lawyer-Linguist”
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는 타이틀. 언젠가는, 그리고 누군가는 하겠지? 그렇다면... 나는? 내가 하면 어떨까? 정말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마침 그 날 EU 경제장관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올 때 건물 밖에서 수많은 언론사들이 저마다 자기 방송사 아나운서의 리포팅을 찍고 있었던 것도 그 회의 때문이었다. 우리는 운 좋게도 메인 회의장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었다. 8개의 언어가 동시에 통역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통역 부스가 회의테이블을 따라 길게 그리고 매우 가깝게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서 동시통역을 할 땐 부스가 너무 멀리 설치되어 있거나 구석에 있어서 연사가 잘 보이지 않아 회의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이곳에서는 그런 점까지 세심하게 배려해 통역사들이 회의 참가자들을 가까이서 보고 함께 호흡하며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통역 부스를 회의테이블 바로 뒤에 설치한 것이라고 했다. 번쩍번쩍 빛나는 멋진 부스도 부러웠지만 좋은 통역이 나올 수 있도록 최적화된 환경이 무엇보다 부러웠다. 통번역사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전문분야의 자료와 사전들을 비치해둔 근사한 도서관에 들어섰을 땐 정말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들 자료와 사전은 최소 20개의 서로 다른 언어로 된 버전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그 양도 어마어마했다. 이사회 건물을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던 서기관님과 함께 점심식사 장소로 향하면서도 계속 내 머릿속에서는 Lawyer-Linguist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EU 집행위원회는 이사회처럼 근사하고 높은 빌딩이 아니라 아주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학교처럼 여러 개의 작은 건물들로 나뉘어 있었다. 이 곳에서는 당시 외교통상부에서 도입하려고 했던 번역지원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수십 년째 사용해오고 있었다. 국제기구의 문서들은 반복되는 문구들이 많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상에서 작업을 하면 동일한 문구에 대한 예전 번역문들이 자동으로 검색이 되어 번역사가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바로 입력이 되는 식이었다. 한 번역사가 직접 자신의 컴퓨터에서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를 시연해주었다. 처음엔 번역사가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복잡한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여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려워 오히려 작업에 방해가 되는 일은 없는지 물었더니, 처음에는 적응기간이 필요한데 익숙해지고 나면 번역 작업시간이 절반 이상 줄어들어 굉장히 편리하다고 했다. 또 참조할 수 있는 전문용어들이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베이스는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집행이사회 소속 전문번역사들이 사용했던 용어들은 거의 모두 저장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하고 있어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한 단어를 입력해서 도착어(target language)로 그 단어가 어떻게 번역이 되는지를 보여주었는데, 같은 단어라도 분야마다 서로 다르게 쓰이는 용례도 함께 볼 수 있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다.
집행이사회에 소속되어 일하는 번역사들이 제일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업무시간 외에 마치 학교의 방과 후 활동 프로그램처럼 각자 원하는 분야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커리큘럼이 매우 체계적으로 짜여 있었던 점이다. 경제, IT, 법, 문학 등등 관심 있는 분야의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사실 주어진 원문과 관련된 배경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번역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번역사에게 주어지는 번역 기한이 촉박할 때가 많고, 또 번역사가 혼자 어려운 전문분야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인터넷 검색을 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게 알아낸 지식들이 올바른 것인지, 실제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표현인지 등을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점을 이미 오래전부터 잘 이해하고, 번역사들이 양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 번역 프로젝트를 맡으면 짧은 기한 내에 작업을 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컴퓨터 앞에서 씨름을 하기 때문에 피로가 쌓여 다크서클이 가득한 얼굴이 되기 십상이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하루 종일 양허표, 협정문을 눈 빠지도록 들여다보고 나서 퇴근할 때쯤엔 다들 진이 빠져 말 할기운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하는 번역사들은 다들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었다. 각자 방에서 작업을 하긴 하지만 같은 층의 번역사 들은 서로의 방을 지나가면서 쿠키와 커피를 들고 즐겁게 농담을 나누는 등 일하는 모습이 굉장히 여유롭고 즐거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우리는 지난 3달 간 거의 매일 야근과 주말근무를 했고 가끔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고 슬며시 얘기해보았더니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끝없이 길게 이어져있던 ILO의 복도, 중간중간에 놓여 있던 빨간 소파가 인상적이었던 WIPO의 도서관 등도 아직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번역의 전문성을 잘 이해하고, 최고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여러모로 세심하게 배려를 해주고 있는 환경이 정말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단계이지만, 이 시도가 처음의 목적을 상실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조금씩 조금씩 개선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법과 영어 연구소 아우디오 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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