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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비안 Oct 12. 2016

[공연 후기] 자연스럽게, 브람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리사이틀 <Naturally Brahms>

2016. 10. 07 (금) 오후 8시 /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프로그램
Johannes Brahms (1833-1897)
Sonata for Violin & Piano No. 1 in G Major, Op. 78
Sonata for Violin & Piano No. 2 in A Major, Op. 100
Sonata for Violin & Piano No. 3 in d minor, Op. 108

동시대나 전 후 시대의 작곡가들과 다르게, 브람스는 특유의 완벽주의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곡을 쓰지 않고, 한곡 한곡마다 완성도가 높은 걸로 유명하다. 

예전에 브람스 클라리넷 퀸텟 1악장을 한번 친구들과 연습 및 연주를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아마추어로 브람스 곡을, 그것도 실내악을 만지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두 명 이상이 한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연주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서로의 악보와 소리를 다 알고 들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음도 소홀하게 쓰지 않았고, 연주자는 당연히 한음조차도 소홀하게 다뤄선 안되는 일, 모든 음악이 그렇지만 브람스가 가장 그런 음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 장르에 특별히 작품이 많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브람스는 '전곡 연주' 라는 타이틀로 다뤄지기 참 좋은 작곡가다. 작품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은 한 연주에 그 모든 곡들을 올리기에 시간적으로 무리가 없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연주자 또는 연주 단체가 그 작곡가의 내면을 얼마나 깊게 파고드는지 그리고 작곡가의 인생 동안 쓰여진 곡들을 소화할 스태미나와 스킬, 그리고 해석력을 갖추었는지를 볼 수 있는 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브람스는 교향곡을 4곡 밖에 쓰지 않았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전체적인 실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고 하고, 첼로 소나타도 2곡이라 첼리스트들에게 바흐 무반주 전곡 연주처럼 좋은 도전이 된다.

바이올린 소나타 역시, 이 작곡가는 3곡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선생님은 본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반주만으로 브람스를 담아내는 자리에 섰다.


Sonata for Violin & Piano No. 1 in G Major, Op. 78

소나타는 보통 네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것이 익숙한데, 소나타 1번과 2번은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브람스의 실내악 중 초기 작품들은 종종 세 악장으로 구성된 경우가 있다, 첼로 소나타 1번처럼. 사실 첼로 소나타를 굉장히 좋아하는 반면 바이올린 소나타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첼로 소나타들과는 어떤 다른 매력이 있을지 비교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악기의 차이가 크긴 크겠지, 첼로 소나타는 1번이고 2번이고, 굉장히 중후한 또는 강한 음으로 시작했는데, 바이올린은 달랐다. 작지만 알차 있었고, 순수함이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목프로덕션 대표님이 이전에 그런 글을 쓰신 적이 있었다. 박지윤의 음색에는 과한 게 없다고. 그 이야기를 생각하며 첫 음이 들어가는 자리에서 난 다시 한번 놀랐다.

이전에 아벨 콰르텟의 모차르트를 들을 때에도, 퍼스트 바이올린을 담당했던 윤은솔님의 음색에 이게 모차르트라며 한 순간에 홀렸던 적이 있는데, 박지윤 선생님의 음색이 또한 그랬기 때문에. 브람스가 가진 순수한 색이 너무나 잘 나타났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Sonata for Violin & Piano No. 2 in A Major, Op. 100

스위스의 도시 툰 Thun에서 쓰였기 때문에 툰 소나타라고 불리는 이 두번째 소나타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브람스의 바이올린 곡이다. 

이전에 수강했던, 음악의 이해라는 교양수업 교수님께서 브람스는 가을이라며 교향곡 4번 1악장의 스산함과 함께, 그 스산함을 동시에 메워줄 수 있는 건 바이올린의 하이포지션에서만 나는 첼로같은 두터운 음색으로 노래하는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의 1,3악장이라고.

나는 오늘 세 곡 중에 박지윤 선생님의 소리가 가장 좋았던 것도, 그리고 음악 자체가 가장 좋았던 것도 바로 이 2번이었다. 

특히 2악장에서 느린 멜로디 주제와 빠른 멜로디가 돌아가며 나타나는데,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그 찰나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이 이유 없이 내 마음까지 떨리게 하며 기분이 좋았다.


Sonata for Violin & Piano No. 3 in d minor, Op. 108

인터미션이 지나고 마지막 남은 하이라이트, 세번째 소나타. 작곡 시기는 사실 2번과 1년 밖에 차이가 안 난다. 1번과 2번 사이에 오히려 10년 가까운 시간이 있던 걸 보면, 소나타 2번과 3번을 쓰는 시기는 브람스의 전성기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문득 궁금해지긴 했다. 브람스는 3번을 쓰면서 이 곡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바이올린 소나타는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곡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범위가 세 곡중에서 가장 넓게 느껴졌다. 

3악장인 스케르초가 3번의 여러 악장 중에서 가장 좋았는데, 박지윤 선생님의 평소 성격이 어쩌면 이 곡에서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들었다. 진지함을 간직하면서도 굉장히 유쾌한 모습이 그려졌다.

이어진 4악장, 오늘의 피날레로 이보다 더 적당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빠르고 강렬한 더블스탑이 시원하게 말 달리듯 달리고, 엇박에서 나타나는 긴장감으로 애가 타다가 해소되는 마지막 활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연주가 성공적으로 기뻐하는 선생님, 와준 관객들에게 수줍게 감사 인사를 건네며 연주한 곡은 브람스의 자장가였다. 9개월 된 딸에게 종종 연주해 주기도 한다며, 관객 여러분들도 돌아가서 좋은 잠 청할 수 있길 바란다는 말에 왠지 모르게 소나타 1번이 다시 떠올랐다. 

타이틀을 Naturally Brahms로 정한 건 본인이 지향하는 음악이 꾸밈없이 순수하게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은 것 같았다. 듣는 내내 난 브람스가 부른 비의 노래에 젖어 있었고 그가 불러오는 시원한 가을 바람과 하늘을 떠올렸다. 비오는 가을 밤만큼 브람스에 잘 어울리는 날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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