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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비안 Apr 05. 2017

[공연 후기] 그레이트 말러 시리즈 IV

수원시립교향악단 제 251회 정기연주회

2017. 04. 04. (수) 오후 7시 30분 / 수원SK아트리움
수원시립교향악단 그레이트 말러 시리즈 4 : 지휘 김대진

Program
S. Rachmaninov :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 (1909) (협연 한지호)
Gustav Mahler : Symphony No. 7 in e minor "Lied der Nacht" (1904-05)

라흐마니노프와 말러가 동시대 사람이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오늘 새롭게 다가온 이야기가 한 가지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1909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작곡했고 그 해 11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본인이 직접 이 곡을 초연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7주 후에 말러가 한번 더 지휘하며 연주했다고 하는데...

오늘 1부 프로그램과 함께 묶인, 수원시향 그레이트 말러 시리즈의 4번째 순서인 말러 교향곡 7번은 1908년에 초연되었다고 하니, 사람들이 얘기하는 '현대음악'이라는 것에는 말러 교향곡 7번보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더 가깝다는 것은 나도 놀라웠고, 앞으로 이 점을 접하는 모두가 살짝 놀랄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교향악축제에는 바로 내일(글쓰는 시점에선 이미 12시가 넘어서 오늘이 되어버렸다) 예술의전당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아니 심지어 앞에 그리그의 소품까지 하나 추가된 프로그램으로 연주를 한다. 보통 지방 시향의 경우 이런 식으로 안방도시에서 리허설 겸 연주를 한번 하고 올라가는데, 프로그램이 발표된걸 보고 난 수원시향이 미친게 아닌가 싶었다. 보통 말러 교향곡은 그 규모와 난이도 때문에 어떤 프로그램과도 함께 편성하지 않는 편인데, 10곡 중 가장 어려운 곡으로 손 꼽히는 7번을 2부에 연주하는데 앞에 10~20분 짜리 소품도 아니고, 그런 소품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배치하다니, 지휘자나 연주자나 관객이나 어느 하나도 가벼운 자세로 임하면 안 되는 프로그램으로만 보였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이번을 계기로 더 발전하겠다라던가, 도전 정신을 강하게 보인것이라거나... 어찌됐건 기대를 나름 하고 연주장에 앉았다.


잠깐 딴길로 샌다면, 사람들이 '현대음악'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듣기를 꺼려하거나 거부하는 면에는 전혀, 시대 구분이 기준이 되지 않는다. 단지 본인들이 많이 듣고 익숙하다 싶으면 클래식이고, 아니면 현대음악이라니... 나름 편협한 시각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14년 3월에 개관한 이 수원 SK 아트리움 (이하 아트리움)은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에 다니는 내게 가장 가까운 공연장임에도 지난 3월 유키 구라모토의 '봄날의 꿈'이라는 주제로 투어 연주가 있을 때 처음 방문한, 정말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 학교에서 실제로 10분에서 20분 버스 거리로 가깝고, 사당에서 버스로 20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연주가 끝나고 집까지는 심지어 50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이는 예술의전당에서 돌아갈 때보다 20분이 더 짧은 시간이다.

그리고 더더욱 이상하게도, 수도권 주요 교향악단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시향, 코리안심포니, 경기필, 부천필 등과 비견될만큼 나름 기획도 연주도 훌륭한 오케스트라임에도 난 오늘로 수원시향의 연주를 처음으로 연주장에서 들었다.

두 가지 요소 모두, 오늘 연주를 보고나서 지난 세월동안 이 곳에서 수원시향의 연주를 듣지 않고 뭘 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지난 3월에도 이번 연주에도 내가 앉았던 자리는 뒤에서 3번째 줄로 굉장히 무대로부터 거리가 먼 좌석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무대에서 들리는 소리는 내가 그렇게 멀리 앉아있다는 인식을 싹 가시게 만들었고, 집중한다면 숨소리도 들릴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감이 없는 아늑한 공연장이었다. 주로 가던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의 객석 규모는 각각 2500석, 2000석 규모이니 확실히, 1000석 규모의 2층짜리 콘서트홀은 조그맣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음향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를 한다면,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 등의 홀이 뭐랄까 고급스러운 음질을 유지한다고 하면 분명 아트리움의 음향은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음악을 즐기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는 수준의 음향이라고 생각한다. 강약에 대한 대비도 훌륭하게 느껴졌고... 

다음번에 다른 자리에서도 충분히 감상을 해보아야 더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내게는 굉장히 친근하고 편안한 홀인 것 같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라단조, 작품번호 30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 그리고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이 세 곡은 연달아 들으면 한 곡을 악장별로 나누고, 그 각 세 악장에 소악장이 여러개 있는 곡 같다. 분위기도 비슷하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대비로 이야기하는 어조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인데, 즉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니즘을 흠뻑 느낄 수 있다는 말이 되겠지. 그럼에도 협주곡 3번은 실황으로는 처음 듣는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으나... 너무 피곤한 상태로 가서 들었기에 잠에 빠진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2번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부분은 1악장과 3악장의 강렬하고 화려한 솔로 독주 카덴차인데, 갑자기 교체되어 독주자로 서게 된 한지호는 꽤 강렬한 카덴차를 들려주었다고 생각한다. 1악장에서 살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후배이자 제자뻘인 한지호에 대한 김대진 선생님의 리드로 점점 나아지면서 카덴차에서는 신나게 날아다녔던 것 같았다. 한가지, 카덴차에서의 저음부에서 좀 더 강렬한 타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지만 전체적으로 호연이었다.

앵콜로는 쇼팽의 전주곡 중 '빗방울'로 알려진 소품 한 곡을 꺼내들었다. 곡 안에서 클라이막스 부분의 크레센도는 굉장히 잘 살린 것 같아서 듣기 좋았지만, 디미누엔도는 조금 과잉스럽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기보다는 조금 의식적으로 다가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러 교향곡 7번 마단조, 밤의 노래

말러 교향곡 7번을 듣는 것은 작년 이맘때 엘리아후 인발이 지휘한 서울시향에 이어 두번째인데, 음원으로도 영상으로도 한번도 본 적이 없이 정말 말그대로 두번째 접했다. 그래도 확실히 첫번째 몰랐던 곡은 두번째 실황이면 충분히 감상가능한 범위로 다가온다. 또한 프로그램북이 꽤나 대중에게 친절히 읽히게 쓰여있어서 감상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연주의 총평을 먼저 한다면, 오늘 오길 정말 잘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일 교향악 축제 무대에 가서 이 멋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었으면 하는 희망적인 추천을 하면서도, 오늘 이 모든 연주자들이 오버페이스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현악기의 질감이 이렇게 통일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오케스트라가 있었던가. 최근에 만난 서울시향은 바이올린 뒤쪽과, 수석들을 잃은 첼로 파트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을 가끔씩 보였었다. 하지만 아트리움에서 몇년간 갈고 닦은 음향감 덕분인지 또는 각 수석들과 지휘자의 훌륭한 교감으로 빚어진 앙상블 덕분인지, 바이올린 소리는 악장의 소리에 붙어서 덩치 크고 날렵한 칼처럼, 첼로와 베이스는 따로 또 같이 중후한 매력을 타악기처럼 멋지게 뿜어냈다. 모든 현의 수석과 부수석들은 솔리스트보다 더 격한 움직임을 보이며 음악적인 지시와 표현을 이어갔다. 

1악장 도입의 독주로 대표되는 테너 호른과 프렌치 호른 주자들은 80분 내내 고혹적인 소리를 들려주었고, 그들을 포함한 트럼펫과 트롬본, 튜바까지의 금관 밴드에 대해서 내가 보고 들으러 다닌 교향악단 중 이렇게 흐트러짐 없고 멋진 연주를 보인 곳이 어디가 또 있었을까. 힘겨운 프로그램을 1부에도 2부에도 이어가다보니 5악장 처음 팀파니와 금관 밴드의 팡파레는 정말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보여주었던 것 같다.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 1번과 5번에서 자주 사용하던 방법인데, 현악기에게 하강 스케일 선율을 맡긴뒤 폭발하는 금관으로 코다의 끝을 맺는 형식이 7번 5악장에도 나온다. 곡을 모르니 지금 곡이 어디까지 왔고 얼마나 더 남았는지는 몰라도, 하강 스케일이 주는 끝에 대한 현실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끝인가 하면 다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끓어 오르고, 두번, 세번까지 반복을 하고 마지막엔 타악기 전체가 합세하더니 정말로 끝이 났다. 

귓가엔 소방울 소리가 아직도 찰랑거린다.


위에서 언급했던 많은 오케스트라들에 비해서 수원시향이 갖는 가장 강한 장점은 아무래도 안정성이 아닌가 싶다. 경기필과 수원시향이 함께 나눠 사용하던 경기도 문화의 전당을 벗어나 아트리움에 정착하면서 안정적으로 연습과 연주를 꾸려가며, 수원시민과 아트리움이 요구하는 오케스트라 음향과 수원시향이 추구하는 오케스트라 사운드에서 분명한 수렴점을 찾은게 아닐까. 또한 외부 초청연주라든가 오페라나 갈라 콘서트를 위해서 따로 연주를 안하면서 매달 정기연주회를 가져가니 확실히 다른 오케스트라들에 비해서는 연주자 입장에서 부담이 덜 하면서 연주를 즐길 수 있는 일정이 형성된 것 같다.

김대진 지휘자도 올해가 10년인데, 이미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과 시벨리우스 전집을 음반으로 냈으니 이제는 말러 차례라고 말하는 듯 과감하게 말러 전곡에 출사표를 냈다. 올해 하반기에는 6번과 미완성 10번, 그리고 2번이 준비되어있으니 한껏 기대에 부푼 채로 연주를 보러 갈 것이다.


당장 다음 252회 정기연주회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이니, 다시 한번 오늘과 같은 감동을 느끼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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