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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비안 Apr 11. 2018

2018 교향악축제-대전시립교향악단

지휘 : 제임스 저드 /  협연 : 피아니스트 손정범

2018. 04. 04. (수) 오후 8시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18 교향악 축제 - 대전시립교향악단

Program
S. An | Symphonic Poem "Primordial Light"
L. van Beethoven | Piano Concerto No. 5 in E flat Major, Op. 73 "Emperor"
J. Brahms | Symphony No. 2 in D Major, Op. 73


대전시향의 연주는 내가 인지하고 기억하기로는, 아마 두번이었던 것 같다.

첫번째는 13년 가을,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의 차이콥스키 협주곡과 말러 1번이었고, 두번째는 16년 봄 교향악 축제에서 한국계 일본인인 김성향 (세이쿄 킴)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조재혁의 브람스 협주곡, 브루크너 4번이었다. 특히 16년 교향악 축제 당시 대전시향의 지휘자가 공석이었어서 김성향 지휘자의 지휘를 유심히 봤는데, 이날 브루크너 4번 연주는 오케스트라 - 특히 금관 파트의 자잘한 실수가 꽤 많았음에도 음악 자체는 밀도가 굉장히 높았고, 연주가 끝난 뒤의 정적이 굉장히 인상적이고 진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이 날 최고의 발견은 대전시향 비올라 수석 김민정 비올리스트였는데, 연주하며 비올라 파트를 이끌고 다른 파트의 수석들과 호흡하는 몸짓이 굉장히 컸고, 특히나 비올라 파트의 소리가 굉장히 입체적이고 순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교향악 축제가 지나고 얼마 안 되어 제임스 저드라는 영국 출신 지휘자가 대전시향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는데, 국내 애호가들 사이에선 굉장히 빅뉴스로 회자되었다. 말러 녹음이 굉장히 호평을 받아서 아는 사람들 사이에는 훌륭한 지휘자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다가, 지난달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의 내한 때 검색해서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아바도와 저드는 정-부지휘자의 형태로 이 챔버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왔던 것이라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안그래도 작년 17년 교향악 축제 때 대전시향은 저드의 지휘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이 엄청난 호평을 받았던 터라, 이번 연주에 개인적으로도 많은 감정과 기억이 남아있는 브람스 2번을 선보인다길래 굉장히 기대를 품고 연주를 들었다. 



이 연주를 보는데는 피아니스트 손정범이라는 또 하나의 유인이 있었다. 손정범은 작년 독일 ARD 콩쿨에서 우승을 하면서 많은 청중들에게 이름을 알리며, 올해 초 정명훈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원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직접 만난 손정범의 피아니즘은 굉장히 심지가 굳고 선명한 음을 내면서, 굉장히 큰 덩치를 소유했지만 여린 부분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음악을 들려주었어서 좋은 피아니스트를 발견해서 기뻤다. 이 피아니스트가 교향악 축제의 협연자로도 초대되고, 지난 1월 3번에 이어서 이번 연주엔 5번을 연주한다니, 기대가 많이 되었다.


이 날은 예술의전당에 오른 것 치고는 굉장히 특징적인 오케스트라 배치가 되어있었다. 제 1, 제 2 바이올린이 객석에 맞닿아 흔히 '양날개'라는 배치가 되어있었고, 첼로는 퍼스트 바이올린의 바로 옆에 앉아있었다. 심지어 콘트라베이스 일곱 대가 흔히 팀파니와 금관악기가 위치하는 무대 중앙에 정면으로 놓여있었는데, 이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주 홀, 무지크페어라인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배치이다. 아마도 제임스 저드는 오늘 프로그램 전체에서 베이스의 역할을 톡톡히 효과적으로 들려줄 의도를 가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성혁 | 태초의 빛 (Symphonic poem "Primordial Light")

튜불라 벨과 수많은 타악기들, 전자 오르간이 합쳐진 굉음이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곡이 진행되었는데, 이는 최근 발표되는 현대음악들에서 우주를 표현할 때 종종 시도되는 표현법인 것 같았다. 롯데콘서트홀 개관 연주회를 위해 위촉 및 발표된 진은숙 작곡가의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에서도 곡 첫 시작 부분에 우주의 태동을 묘사하는 듯한 묘사가 있었는데, 그것 역시 튜불라 벨과 파이프오르간, 콘트라베이스에 의해서 표현되었어서 공통적인 묘사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음악기들과 베이스 드럼에 의해서 중간중간 규칙적인 리듬들이 또한 제시가 되면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운행하는 질서를 표현했는가 하면, 이후엔 오르간이 찌르는 듯한 고음으로 곡 전체의 주제선율을 들려줬다. 그리고 Offstage 금관악기들이 관습적으로 오페라나 극 음악에서 천상의 소리, 천사, 지원군 등을 표현하는데, 이 점 때문에 무대 밖의 금관악기가 이 곡 안에서는 새로운 존재가 탄생했다는 듯한 암시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이 장외 금관 반다가 2층 양 측면 발코니에, 왼쪽에는 트럼펫 한 대와 오른쪽에는 트롬본과 트럼펫이 한 대씩 준비되어 있었는데, 오늘 오케스트라의 배치로 미루어 보건대 정면에 위치한 베이스 7대와 양 측면의 금관 악기들이 합쳐 삼각형을 이루어서 삼위일체적인 탄생을 표현하고, 삼각형 안에 위치한 오케스트라가 신앙적 질서 안에서 형성된 세계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얕은 신앙적 지식에 의한 감상평이 들었다.

그리고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에서야 프로그램을 확인했는데, 이 곡의 제목이 "태초의 빛" 이고, 인류와 우주, 만물의 창조와 운행에 대한 질문에서 탄생한 곡이라고 쓰여진걸 보니, 내가 지금까지 클래식 음악을 허투로 들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내림 마 장조 "황제", 작품번호 73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교향악 축제에서 3년에 2번씩은 꼭 연주되는 단골 곡이다. 국내에 알려지기로는 꽤 신인 정도의 인지도이지만, 실제로 연주활동으로는 상당히 성숙한 실력을 가진 손정범이 들려주는 연주였기에 기대가 많이 되었다.

손정범의 터치는 지난 1월에 보여준 원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와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보다도 훨씬 단단해졌고 섬세해진 듯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이 곡을 협연 무대에 올린 것은 처음이었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랐다. 많이 들었던 음반들과 비교했을 때 템포는 꽤 차분했고, 그 차분한 템포 안에서 손정범의 특기라고 생각되는 선명한 타건 음색이 맘에 들었다. 선이 굵고 거침 없는 연주였고, 여린 부분과 아다지오에서는 지극히 섬세했다. 지난 1월에도 3번 아다지오 악장에서, 손정범의 건장한 체격에서 선입견적으로 나오기 힘들것 같던 섬세한 분산화음들이 매력적이었는데, 이번 연주에도 그런 면이 한번 더 빛을 발한 것 같았다.


브람스 | 교향곡 제 2번 라 장조, 작품번호 73

대전시향의 선곡은 뭐랄까, '밝은 빛' 에 포인트를 두고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 지금 쓰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 두 독일 작곡가의 작품번호가 같은 숫자를 공유하고 있는게 새삼 놀랍다. 

제임스 저드와 대전시향은 앙상블을 가득 채우는데 굉장한 노력을 많이 한 것 같았다. 브람스 2번은 제 1 바이올린과 첼로가 고음부와 저음부의 멜로디를 거의 모두 담당하는 반면, 비올라와 제 2 바이올린은 내성과 화음을 채우는 역할이 훨씬 많은데, 멜로디를 연주할 때 제 1 바이올린과 첼로가 풀트마다 반대되는 활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첫째줄, 셋째줄, 다섯째줄 등의 활 방향과 둘째줄, 넷째줄, 여섯째줄에 앉아있는 주자들이 활을 반대방향으로 연주하고 있다니, 위치에 상관 없이 바이올린 및 첼로 파트 단원들의 실력이 굉장히 고르지 않다면 소리가 비는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참 쉽지 않은 연주 방법인데 소리가 꽉 차게 나는걸 보고 제임스 저드의 컨덕터십이 정말 감탄스러웠다. 

제임스 저드는 유러피안 유스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였고, 당시 정지휘자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였다. 이들이 유스 오케스트라를 떠나서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의 창단 연주를 준비할 적에, 저드는 1부를, 아바도는 2부를 지휘하면서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가 태동하였다. 아바도가 전세계적으로 남긴 '서로의 소리를 들을 것' 이라는 이념을, 저드는 가장 오래전부터 배워온 지휘자였다는 것, 그리고 이런 앙상블로서의 오케스트라 지휘법이 대전시향의 고유한 음색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으니 이들의 연주력이 매년 상당한 수준씩 향상되는게 당연하지 않을까.

다시 연주 얘기로 돌아가면, 덕분에 1악장과 2악장의 현악 주 멜로디는 정말 정제된 음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브람스 2번 최고의 매력은 4악장의 최후 피날레 총주부분에서 빛이 폭발하는 장면인데, 아쉽게도 이때까지 집중력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사실 이날 선곡들의 조합이 오케스트라에게는 굉장히 체력적으로 도전적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할만한 연주였다. 



서곡인 교향시에는 내러티브가 있어서 전혀 난해하지 않게 즐길 수 있었고, 손정범의 피아노 협연도 독주도 언제든 그의 다음 연주를 기대하게 만든데다, 앙상블 측면에서는 순식간에 상당한 수준의 실력으로 올라온 대전시향의 연주가 얼른 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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