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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비안 Jul 07. 2018

[공연 후기] 콘서트 오페라 - 피가로의 결혼

르네 야콥스 지휘,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연주, 국립합창단 합창

0.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봤다. 요즘 날씨가 무덥고 습하고 비구름도 변덕스럽게 왔다갔다하지만, 올해 내가 본 밤하늘은, 요 며칠간만큼 그 검푸른 빛이 멋지고 구름과의 원근이 빛나는 적이 없다. 재수학원 시절 열심히 듣던 클래식 FM 중에서도 6시가 되면 이루마의 청량한 목소리로 "세상의 모든음악, 저는 이루마입니다." 라면서 들은 멋진 오프닝 멘트가 있었다. 퇴근하시면서 하늘을 보세요.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보세요. 오늘 하루 행복했더라도, 힘들었더라도, 지는 해에 물든 하늘을 보면서 하루가 멀리 간다는 생각을 하며 조금 더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을거예요. 뭐 이런 문장이었나... 


1. 모차르트가 누군지, 그의 음악에 어떤 음악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듣는 순간 아는 곡이 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두 소프라노가 부르는 편지의 이중창. 접하게 되는 경로는 오직 하나, 영화 쇼섕크 탈출의 중후반부, 극의 클라이막스로 가는 과정에 주인공이 레코드판을 발견하여 교도소 전체에 들리도록 틀어놓고, 방의 문을 잠그는 장면. 교도관들은 당장 음악을 끄라며 방문을 부시려고 애를 쓰고, 결국 주인공은 독방행 신세가 되는 그 장면. 교도소에 있는 수많은 범죄자들이 스피커가 달려 있던 '하늘을 보는 시선'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름다움인지, 자유인지 그 무언가를 찾고 싶은 수많은 그 눈길들...


2. 극 중 레드라는 역할로 분한 배우 모건 프리먼의 명대사. 

그 두 이탈리아 여인들이 무슨 노래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분명한 건 그만큼 아름다운 음악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가 없었다.

이 장면만큼 모차르트 음악을 음악과 무관한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각인시킨 장면이 또 있을까. 하지만 영화관을 나오면서 그 음악이 모차르트의 어떤 무슨 음악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클덕 중의 클덕인 나조차도 그게 어떤 맥락에서 나온 아리아고 어떤 가사가 붙어있는지는 오늘에 와서야 알았다.



3.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무지카 에테르나와 녹음하고, 입소문만으로 엄청난 판매량을 올리면서 클덕들 사이에서, 심지어 일반 입문 클래식 애호가들한테도 필청 음반이 되어버린 차이콥스키 6번 음반이 올해 초에 굉장히 화제였다. 고음악 전문가 르네 야콥스에게 전위성을 붙이고 이미 현대적인 야콥스의 음악을 그 극단으로 끌어올리면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되지 않을까, 라는 대목을 어떤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에 종소리를 넣었다는 점에 대해서 이렇게 썼던 글이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같은 악단과 소프라노 임선혜 선생님(이하 존칭 생략)과 롯데콘서트홀 기획 연주로 왔던 모차르트의 다 폰테 시리즈 첫번째, 코지 판 투테가 그렇게 호평이었더랜다. 예전에 코지 판 투테 서곡에 대해 굉장히 재미없다고 느낄만한 연주를 경험한 적이 있어서 관심을 두지 않고 보러가지도 않았더라니만. 또 저번달이었나, 서울시향과 지휘자 샤오치아 뤼가 함께한 예술의전당 30주년 기획 연주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오페라 콘서트가 굉장히 호연이었더라고 화제였어서, 이번 롯데 기획의 르네 야콥스 콘서트 오페라를 보러가지 않으면 후회 할 것만 같았어서, 비싼 금액을 감수하고 감상하기로 결정했다.


4. 그 결정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11만원인 S석으로 타협했지만, 기왕 11만원 쓴거 15만원짜리 R석으로 1층에서 봤으면 더욱더 행복했을 것이거늘, 하지만 행복은 언제나 상대적이니까 내년에 다시 돈 지오바니로 올 것을 기대하며 그리고 그 때는 반드시 1층 제일 아래 블록에서 보리라 다짐하며 내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행복해지기로 했다. 이 오페라에 대해서 아는 곡이라고는 서곡, 케루비노의 아리아, 편지의 이중창 이렇게 달랑 세 대목 뿐이었지만 전혀 지루함 없이 볼 수 있었다. 대형 스크린에 이탈리아어 가사와 한국어 번역을 동시에 띄워준 덕분이다. 

여담이지만, 외화나 외국 영상 컨텐츠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에는 개인적으로 영화 산업이건 미술이건 음악이건 항상 아쉬움이 생긴다. 조금 더 잘 번역할 수 있을텐데, 라면서 내가 저 언어를 저 번역한 사람만큼 했다면 더 좋은 번역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자만으로 아쉬움을 덮지만, 그래도 가곡을 번역하거나 바그너, 베르디를 번역한 것보다는 훨씬 좋은 수준의 번역이었던 것 같았다.





5. 먼저 주연 가수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진 주인공 수잔나 역을 맡은 소프라노 임선혜라는, 르네 야콥스가 사랑하는 페르소나 덕분에 롯데 기획의 다 폰테 시리즈가 성사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내한 공연 성사에 얼마든지라도 영향을 미친 요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진 주인공 피가로 역을 맡은 피가로 역을 맡은 베이스 바리톤 로버트 글리도우의 연기와 노래를 보고서는 위 생각은 쏙 들어가기 마련이다. 

글리도우와 임선혜의 피가로 - 수잔나 커플은 정말 잔망스럽기로 따지면 어벤져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새로운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 정도가 아닐까. 보는 내내 그들의 유쾌하고 귀여운 표정 연기와 행동 연기들 덕분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소리내어 터진 웃음이 아닌 모든 순간들은 관객들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음이 분명했을 것이다. 사실 글리도우가 피가로인지 피가로가 글리도우인지 모를 정도로 피가로는 굉장히 능청스럽고 유쾌한 역할을 몸짓과 표정으로 완벽하다시피 풀어냈고, 거기에 단단한 성량까지, 깨끗한 테너 목소리가 굵어지면 이 정도일까 하는 생각이 든 굉장히 청량감 있는 저음의 목소리로 노래했다. 그 덕분에 피가로라는 장난기 넘치는 역할을 연기하는데 완벽한 캐스팅일 거라고 생각했다.


6. 조연 가수들에 대해서라면, 알마비바 백작과 백작 부인을 노래한 아르투 카타야와 소피 카르트호이저, 그리고 케루비노 역의 메조소프라노 올리비아 버뮬렌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카타야가 연기한 백작은 굉장히 권위적이고 멍청한 캐릭터를 담당하고 바리톤이 노래하는 역할인데, 캐릭터적으로 보면 굉장히 희화화되어야할 것 같기에 외형적으로 뚱뚱한 캐스팅을 생각하기가 쉽지만 남자 저음 가수들은 굉장히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편이다. 카타야는 굉장히 잘생겼...고, 또 노래를 (당연한 말이라 쓰기도 귀찮다) 너무나 잘 해서 오히려 더욱더 코믹하게 그려진 것 같기도 하다. 백작 부인의 카르트호이저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그럼에도 남편을 따르게 되는 (보면서 확실히 18세기를 반영을 참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여성상을 띠는 모순적인 감정을 또 워낙 훌륭하게 노래했다. 내 남편이 정욕을 품는, 동시에 본인에게는 하염없이 충실한 하녀에게 의심을 충분히 가질 수는 있는 스토리와 캐릭터 구성이지만 모차르트(인지 다 폰테인지)는 이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한 3세기에서 4세기 정도를 뛰어넘은 선구자적인 리브레또(또는 쉽게 말하면 각본)를 썼던 것 같다. 피가로 - 수잔나 하인층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작품의 엔딩에서 '사랑이 모든 것을 용서하리라' 또한 존 레논의 평화주의 사상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이미 혁명적인 캐릭터를 그렸지만 다시금 새삼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다.

(좌) 백작 (아르투 카타야) - 백작 부인 (소피 카르트호이저) / (우)

케루비노의 백작부인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는 아리아 장면은 오늘 공연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사춘기 소년이라 고음을 가졌다고 설정해놔서, 여성인 메조 소프라노가 노래하게 되어있지만 극 중에서는 다시 '여성을 연기해야 하는 남성'을 연기해야 하는 부분 역시 모차르트의 선구적인 요소로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섬세하고 우유부단한 가장 성 중립적인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로 그려지는게 아닐까? 그렇기에 노래 선율 또한 백작이나 피가로가 노래하는 선율들보다는 도약이 적은 부드러운 멜로디를 써놨던 것 같다. 작품 얘기는 그만하고 다시 버뮬렌의 중음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정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는 절절함이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아리아를 마치자 (오늘 극 중 독창 부분에서 유일했던) 브라바가 터져나왔고, 그 순간에 박수치기를 주저하는 사람은 없었다.


7. 그 외 단역 및 조조연급 가수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겠지만 간단히 하고 넘어가겠다. 마르첼리나와 바르톨로가 나타나서 피가로에게 너는 내 아들이야 이놈 자식아, 라는 장면만큼 현대적인 연출이라는 관점에서 훌륭한 연출은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 같다. (사실 전 오페라 전막 감상은 이번이 두번째인가 세번째 밖에 안됩니다) 피가로를 남성으로서 좋아해서 법적인 계약으로 수잔나로부터 뺴앗아가려던 마르첼리나가 피가로 몸의 문신으로 어릴 적 납치되었던 본인의 아들이라고 껴안는 장면에, 수잔나가 등장해서 '피가로 이런 못 믿을 수컷 새x!, 마르첼리나 이 늙은 여x!' 라는 장면에서 Sua madre?!!! 라는 대사가 너무나 코믹했다. 이 코믹한 노부부(시부모) - 예비부부(피가로 - 수잔나) 네 명의 연기의 방점은 '우와 가족 상봉이다! Let's get some selphies!!' 라면서 갑자기 바르톨로(피가로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서 셀카를 찍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어떻게 누가 사진으로 남겨둔게 없을까.. 아쉬운 장면이다.


8. 피날레 장면, 수잔나가 백작을 거짓 유혹해서 꾀어내고, 그 자리에 수잔나 차림으로 백작 부인을 보내고 백작의 못나고 추악한 외도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에는 불청객으로 피가로가 염탐하도록 등장한다. 콘서트 오페라이기 때문에, 뮤지컬이나 연극적인 과한 무대 장비와 설치는 없지만 의자와 오케스트라의 물리적인 위치만으로 오페라적 요소를 훌륭하게 연출된 장면이다. 피가로는 수잔나로부터, 백작 부인으로부터, 백작으로부터 본인의 몸을 숨기느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앉아서 연주하는 의자와 보면대 사이사이, 그리고 함머 클라이버의 아래로 기어다닌다. 즉 걸어다니는게 아니라 몸의 앞뒷면을 무대에 비벼가며 안 들키려고 애를 쓰는 연기를 하는데... 정말 드라마틱한 장면에서 이런 코믹한 연출을 집어넣다니, 야콥스와 이 가수들은 연구를 얼마나 했을지, 참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9. 위에서 얘기했지만 코지 판 투테를 안 보기로 결정하고 못 본 게 너무나 아쉽고 후회된다. 내년에는 돈 지오바니로 다시 내한한다고 했는데, 반드시 보러 갈 거다. 작년 코지 판 투테도 올해 피가로의 결혼도 이틀에 걸쳐 2회 상영(연주)인데, 내일(7/7 토요일)은 못 볼 스케쥴이라 너무나 슬프다. 돈 지오바니는 2회 다 볼 거다. 


10. 한가지 고민이 생겼다.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중 두번째 발퀴레의 오페라 콘체르탄테(콘서트 오페라랑 같은 뜻 다른 용어)를 3년 전에 본 적이 있었다. 정명훈 선생님이 지휘하기로 했었으나 허리 부상으로 콘스탄틴 트링크스에게 대타를 넘기고 서울시향이 연주했었는데, 그때도 자막과 프로그램북을 통해 굉장히 재밌게 감상하고 바그너 입문으로 그만큼 훌륭한 연주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날도 바그너에 대해서는 3막 첫곡 발퀴레의 기행이라는 곡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미리 듣지도 않고 가서 봤었지만 훌륭한 감상이었고 최고의 바그너 연주였다. 오늘도 모차르트에 대해서, (모차르트에 대해서는 바그너보다는 많이 알지만) 피가로의 결혼에 대해서 곡 3개 밖에 모른 상태로 갔는데 내년에 돈 지오바니는 스코어와 리브레또 공부를 하고 갈지 그게 고민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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