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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Feb 08. 2023

미간 보톡스와 문제 해결

여느 날처럼 알람이 울리기 전 잠이 깬 나는, 기상 대기 중의 상태로 '될 때까지 버텨볼 것인가' vs. '이대로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 버릴 것인가'로 고민하고 있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침대에 누운 채 헛발을 동동 구르며 일어나기 싫다고 징징거렸다. 나이가 들고 백수가 되고부터는 오히려 성실해졌다. 대체로 일어날 이유도 없고 대단한 성취도 없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단 한 가지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를 닦는 일인데,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언제나 가관이다. 보통은 "나 혹시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나?", "이건 어디서 되게 얻어맞은 얼굴인데?" 하고 웃어버리지만, 요즘은 좀 심각하다. 더 이상 웃을 일이 아니다.


"누군가 내 얼굴로 종이 접기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하군. 얼굴이 반으로 접혀 있어."


미간 주름이 이렇게 까지 깊어질 일이란 말인가. '미간'의 강박에 빠진 나는 머릿속이 온통 '미간 주름'이라는 키워드로 가득 차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내 인생은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이토 준지' 만화에 등장할 만한 강박이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필러가 있다고 들었다. 깊은 주름을 채워 주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의학이 많이 발전했다잖아. 나는 뷰티앱 3개를 깔고 리뷰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펴야 하지? 테이프를 붙여 보라는 글을 보았다. 앞머리를 길러보라고 한다. 그야말로 뷰티 연대의 현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렇게 해서, 가장 리뷰가 많은 병원을 찾았다. 마침 강남에 볼 일이 있어서 시간을 맞춰 보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리뷰들이 있었지만, 내가 간 시간에는 사람이 없었다. 역시 어중간한 시간에 오길 잘했군. 오직 시간만이 자원인 생활은 가끔 도움이 된다.


여자 선생님이 친절하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이렇게 말이 많은 피부과 선생은 본 적이 없다. 보통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시술을 빠르게 마무리 한 뒤 내 옆에 누운 비슷한 고민을 가진 여자에게로 옮겨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사람은 보톡스에 대해 강의를 할 참인 것 같았다. 고작 2만 원짜리, 30초면 끝날 이 인스턴스 보톡스의 현장에서 그녀는 영업의 최전선에 있다.


자, 이제 진실을 마주할 시간이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거울을 들고 내 얼굴과 마주한다. 마치 CSI가 출동해 살인의 현장을 살펴보는 것 같이 얼굴을 가리키며 이런저런 설명이 시작된다. 이건 이래서, 이런데 턱은 어떻고, 광대는 이러한데.... 신경이 이렇게 지나가고, 미간에 필러를 하기에는 위험하고..., 보톡스로 어떤 효과를 거두기는 상당히 어려울 수도 있고...., 그래서 범인은 이 안에 있다.  


머리띠를 하고 이마를 드러낸 초췌한 얼굴의 나. 오늘따라 더 초라한 얼굴은 선생님의 보톡스 영업으로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만다.


"배우 아니시잖아요?"

"네?"

"미간은 짜증 나는 연기라던가, 얼굴 연기가 필요한 배우분들한테는 권하지 않고 있어요."

"아, 네, 배우가 아닙니다." (백수입니다. 저도 그렇지만 제 얼굴도 하는 일이 없어요)


이런 대화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 대화는 상당히 신선해서 나는 다음에 뭔가 글을 쓸 일이 있으면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순식간에 시술이 끝났다. 나는 보톡스 관련 주의 사항을 듣고, 병원을 나왔다. 체류시간은 15분이 좀 넘은 것 같다.


"좋았어, 내 인생에 많은 문제 중 한 가지는 해결을 했군."


이런 식으로 결과에 상관없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저 액션을 취했다는 것에 더 의미를 부여할 때가 있다. 이 깊은 미간 주름이 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나는 이미 마음이 편하다.  


보톡스가 근육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동안 미간으로 인상을 쓰기는 힘들겠다.

그리하여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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