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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Apr 20. 2023

내 인생도 네 인생도 <리바운드>

이 영화를 보고 난데없이 농구가 하고 싶어졌다. 해본 적도 없는 농구를 바로 지금 이 나이에. 중년이 된 나는 스포츠에 매우 관심이 많지만, 육체적 능력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는 그렇지 못했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시절 체육시간에 '넓이뛰기'에서 여성부 전교 최고 기록을 세운 나. 육상부 감독이 입부를 권유했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향후 소질이 없는 것으로 판명될 피아노에 매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생기부 특기사항에 '투포환에 소질 있음'으로 기재되었다는 사실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제자의 기록부에 공백이 생기는 것을 참지 못한 선생님의 바다와 같은 깊은 배려였을 것으로 믿고 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능력이 내가 고3이 되어 피아노를 깨끗이 포기하고 결국엔 토목공학과에 진학하는 데 있어 어떤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는 졸업 후에 건설 회사는 근처도 가지 않았다. 


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농구공과 같은 인생이여. 내 인생은 애초에 리바운드만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골은 못 넣어, 근데 리바운드는 해.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들을 만들 정도까지는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결과는 그저 그랬다. 이렇게 쓰다 보니 무엇이 '성공'의 기준이 되는지를 모르겠다. 그냥 마음에 안 들었다.  

슬램덩크의 여운이 가시기가 무섭게 나온 또 다른 농구영화 <리바운드>. 이 번엔 한국 고등학생들이 농구하는 얘기다. 땀에 쩔어 오직 '공'만을 쫓아 코트를 누비는 고등학생들. 부산 중앙고등학교 농부구의 실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드라마틱한 승부를 보여 준다. 역시 현실이 스토리를 압도한다. 


안재홍 배우가 농구부 감독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운명일지 모른다. 최근 들어 가장 유명한 감독은 <안 선생님>이 아니신가. 이전에 <족구왕>에서 부터 알아봤다. 그는 왠지 스포츠물에 어울린다. <머니볼>의 조나 힐과도 견주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안선생님과의 싱크로율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말미에 나오는 실제 인물과 비교해 보니 누가 누군지 모를 수준이었다. 


상당히 깨방정 유머들이 많은데 감독의 스타일인 것 같고, 나와 잘 맞았다. 몇 명 없었던 극장에서도 혼자 웃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 이 작가 감독(김은희-장항준) 부부는 어떻게 스토리를 짜야 대중을 웃기고 울리고 감동시킬 수 있는지 공식을 터득한 사람들 같다.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우니 뭐 다른 양념을 넣는다는 것이 필요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뻔한 전개이지만 나는 몇 번이나 눈물을 찍어냈다. 역시나 젊은이들이 도전하고 성장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이야기들은 마음속 깊이 감동을 준다. 아무도 관심 없는 최약체의 팀. 그저 농구가 좋아서 그 자리에 있는 선수들. 아무리 노오력을 강요하지 말라고 해도, 노력하는 인간에게는 항상 감동이 있다. 


팀스포츠가 주는 묘미도 크다. 한 사람의 영웅적인 플레이 만으로는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팀 플레이. 각자가 역할을 해주고, 서로를 믿어야 가능할 수 있는 팀 플레이. 가끔 회사 생활이 그리운 것은 이런 팀 플레이로 성취했던 성과, 그리고 환희에 들떠 서로를 격려하며 술잔을 기울였던 그때가 생각 나서다. 짜릿했다.


직장인으로서의 15년 동안 잊지 못할 순간들도 있지만 대체로 내가 정말 이걸 좋아하는지 어쩐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관성적으로 일을 했다. 그런 것 치고는 정말 오래 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길을 간다. 이런 시기의 나에게 어쩌면 딱 어울리는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뭐 계속 리바운드만 하다가 말 인생인지도 모르겠지만. 


성공의 벽은 채치수만큼이나 높지만, 100세 인생이라고 하는데 건강하게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으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그 기회가 찾아온다면 발목이 으스러질 때까지 뛰어서 후회가 남지 않는 경기를 펼치라는 그런 이야기다. 혹시나 리바운드를 할 기회가 전혀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좋아하는 것을 신나게 하고 있었으니까. 


영화관을 빠져나오다 보니 상영 예정작에 축구하는 영화가 있다. 농구하고 축구하고 난리 났네 난리 났어. 스포츠 영화 전성시대가 왔나. 


그나저나 다른 영화들도 상황이 같은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러 가는 영화들은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낮 시간 대에 갔다면 아무도 없어 영화를 보면서 혼자 드리블을 할 수 도 있었겠어. 마음 맞는 관객이 있었다면 패스를 주고받을 수도 있겠지. 5명이었다면 농구를 하면서 볼 수도 있겠군. 그럼, 난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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