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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Apr 24. 2023

등산과 코인

땀 흘린 후 맞이 하는 상쾌한 코인열풍

첫차를 탔다. 하루를 가장 먼저 시작하는 사람들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만들어 내는 오묘한 에너지. 나는 밀려오는 졸음을 겨우 물리쳐가며, 계룡산 산행을 위해 일행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4월이다. 그것도 꽃이 피고 날씨도 좋은 주말이다. 산에는 이미 컬러풀한 등산객들의 행렬이 시작되고 있다. 이런 시기에는 평일 낮에 솔로 등반을 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계룡산을 등반해서 일정 시간 안에 가면 누군가가 코인(암호화폐)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등산을 좋아하기 때문에 무작정 "콜"을 외쳤지만, 도대체 이런 이벤트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들까 궁금하기도 했다. 코인열풍에 진심이었던 이른바 MZ세대? 이벤트 주체는 코인의 발행인이다. 비트코인 관련 꽤 유명한 작가가 만든 코인이라고 했다. 


"지난 월요에도 수백 명이 몰렸어요."


일행이 말하길, 동일한 행사가 지난 월요일에도 열렸는데 수백 명이 몰렸다고 했다. 크립토 윈터(코인 투자열풍이 완전히 가라앉은 계절)라고 하더니, 불씨가 아직 안 죽었나? 


수통골 코스는 가파르게 오르막 길이 계속된다. 전망이랄 것도 없고 길도 좁기 때문에 한 줄의 긴 등산 행렬이 만들어졌다. 가끔 옆으로 여유 공간이 보이면 숨을 헉헉 거리던 사람들이 휴식을 갖는다. 이런 행렬은 거의 1시간 가량 계속되어 금수봉 삼거리까지 이어졌다. 


코인을 주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금 올라가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이 지독한 오르막 길을 오르며 우리는 일종의 유대감 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드디어 장소에 도착. 야광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줄을 서라며 사람들을 통제한다. 작가라는 사람이 서 있고, 사람들은 차례로 100이라고 쓴 쿠폰 같은 것을 받고 작가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줄을 서면서 보니 상당히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서 있다.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부터 10살도 안된 아이들까지. 남년노소 할 것 없이 즐거운 표정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욕망한다. 


나도 일행들과 기다려서 티켓을 받았다. 상품권 같이 생긴 이 종이는 대형마트 경품권 스타일이다.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시작된 농담 같았다. 물론, 그 사람이 엘론 머스크 정도의 인물이라면? 농담도 돈이 된다. 



이것은 마치 추첨일이 무한히 지연된 로또를 받은 것과 같다. 언제 터질지 알지 못하는 폭죽. 터지기만 하면 된다지만 안 터질 확률 99.9%. 그러나 사람들이 그 로또를 얻기 위해 지불한 것은 다리를 움직인 것뿐이다. 기껏해야 근육통 정도의 비용으로 인생 역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why not? 어차피 우리는 아무것도 보장되는 것이 없이 그저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다. 


그러나 이것이 도를 지나치면 사기가 된다. 사기의 사전적 정의는 '사실을 오인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남을 기망해서 경제적 이득을 얻거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얻게 하는 행위'다. 욕구가 욕심이 되고, 마침내 탐욕이 되려고 하는 바로 그때, 사기꾼들이 귀신같이 나타나 우리의 탐욕에 불을 지른다. 그들이 한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한 것뿐이다. 끝도 없이 돌아가는 행복 회로에 갇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었고, 남은 것은 깊은 자기혐오뿐이다. 사기에 대해서는 유난히 형벌이 약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피해자만 더 죽어난다. 


좋은 구경을 했다며 내려오는데, 맞은편에서 올라 오고 있던 남자가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땅끝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거운 몸을 옮기고 있었다. 그가 가까이 왔을 때 우리는 그가 발걸음에 맞춰 '비트코인', '비트코인'이라는 구령을 붙이고 있는 것을 들었다.  


이 주술적인 구령이 비트코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포기하지 않고 다음 발걸음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마술을 부리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봄꽃은 벌써 지고 여름의 청록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러다가 봄이란 계절이 아예 없어지는 거 아냐? 기후이상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으며 차를 탔다. 시작과 희망의 메타포는 그렇게 사라져 버릴 것인가. 


오는 길에 대전의 명물 성심당에 들렀다. 사실 매장에 발을 들이지도 못했다. 골목을 둘러 둘러 거대한 뱀이 똬리를 튼 듯 길게 늘어선 줄이 입구를 꽉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인에 대한 광기만큼이나 튀김소보로를 향한 이 광기를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근처에서 슈크림 빵을 하나 사 먹고 만족하며 돌아섰다. 


역시나 벼락부자가 된다던가 잘 알려진 맛있는 것을 먹는 사람이 되긴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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