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소파에 누워있던 아버지가 글루타치온에 관해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던 장사꾼 의사를 보며 말한다.
“저 의사, 김건희랑 좀 닮아 보이는데?”
어머니와 나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누워 있다가 자세를 고쳐 앉는다. 나는 유심히 여자의 얼굴을 관찰한다.
“아, 잘 보셨네요. 아버지, 그건 말이죠. 저 여자도 김건희 씨처럼 성형 수술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성형수술을 많이 한 얼굴들은 어떤 한 얼굴을 향해 나아갑니다. 지향점이 같기 때문이죠. 혹은 같은 병원에 다녔다는 증거가 되겠죠. 그들은 모두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어요. 이건 성별과는 상관없어요.”
나는 이들에게 어떤 <불쾌한 골짜기-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해당 존재가 인간과 많이 닮아 있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다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 같은 것을 느낀다. 다만, 내가 느끼는 이 골짜기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로봇을 향하고 있다. 시작이 어디든 어느 특정 지점에 다다르게 되면, 양쪽 모두에서 유사한 불쾌감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꽤나 고민한 사람처럼 얘기하고 아버지는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도한 성형수술로 비슷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어림잡아서 생각하고 각자의 개성을 무시한 체 집단화하여 '한 부류' 인냥 설명하는 것은 또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몇 차례 저항해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장점이나 매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일견 합당해 보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는 이 무시무시한 클리셰는 숱한 자기 계발 서적에서 암암리에 반복해 온 유명한 명제 중 하나다. 이렇게 까지 해 봤어? 저렇게 까지 해 봤어? 그런 것도 하지 않고 내가 뭘 했다고 얘기할 수 있겠어? 성공하고 싶다며? 정말 성공하고 싶은 거 맞아?
이들은 젊음, 미모, 누군가의 마음, 돈과 명예,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욕망한다. 그리고 그것을 원하는 마음, 그것을 가지겠다는 욕망은 중단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신기루와 같아서 잡았나 싶으면 멀어져 있다. 이 욕망은 끊임없는 자가발전을 통해 새로운 목표로 갱신된다.
어머니 말로는 아버지가 요즘 성형 감별사가 되었다고 했다. 저 여자 뭔가 한 거 같은데? 저 여자 코 한 거 같은데? 저 아나운서는 한 동안 안 나오더니 얼굴이 달라진 거 같은데? 아버지가 유일한 동거인인 어머니에게 동의를 구한다. 테스토스테론에 점령당한 어머니의 혀가 움직인다.
“또 씰데 없는 소리 하고 있다.”
어머니말로는 유튜브 보는 것 말고는 할 일 없는 영감들이 모여, 또 저마다 보고 온 유튜브에 대해 공유하다 보니, 헛소리들이 양산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아버지는 김건희 씨를 조롱하고자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의도였다) 아버지는 국민의 힘 지지자로 하마터면 80이 될 뻔 한 당신을, 올해만큼은 79세에 머물게 해 준 윤대통령에게 감사했다.
나는 거실에 누워 부모님과 함께 뉴스를 보며, “아.. 또... 왜 또 나간데? 쟤들은 왜 또 어디 해외 순방을 나가고 그래. 부끄럽게…” 하며 짜증을 냈지만, 우리 부모님은 40대 미혼에 백수이기까지 한 장녀와 <6시 내 고향>을 함께 보고 있던 그 시간이 더 부끄러웠다.
20대에 안 하면 후회하는 40가지, 30대에 해야만 할 것들 100가지, 40이 넘으면 포기해야 하는 것 10가지, 대한민국 중산층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 5가지, 3040 싱글 여성들의 선택, 여름 필수 아이템 제안 100.
수많은 할 것들과 가져야 하는 것들의 가이드라인들이 제시되고 있다. 나는 별로 가진 것도 없고, 20대에 했어야 하는 것도 아직 다 하지 못했으며, 나이는 또 왜 이렇게 자주 먹는 것인지, 해야 할 것들은 쌓여만 간다.
자신의 욕망이 진정 무엇인지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혹은 우리가 너무 그것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을 뿐이라는 라캉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난 후, 우리는 이것이 내 욕망인지 타인의 욕망인지 헷갈리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게 죄다 해외여행 간 사진 인증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물을 배경으로 찍은 발가락 사진이거나, 트로피컬 빛깔의 음료수를 들고 있는 손가락 사진이다.
피부 관리실이나 비만 클리닉의 애프터 사진처럼 <기쁜 사람>의 얼굴 사진도 빼놓을 수 없다. 비포 사진들은 하나같이 우울하기 짝이 없는데, 이것과 비교했을 때 애프터 사진에서 느껴지는 밝음은 시술의 성과라기보다는, 나아졌다고 믿는 자신의 심리 변화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나는 돈을 썼고, 그런 나 자신이 마음에 든다.
나는 사직서를 썼고, 그런 나 자신이 마음에 든다.
나는 부모님에게 미간 보톡스를 맞았음을 시인했다. 아버지가 돋보기를 끼고 오셨다. 여전히 선명한 미간 주름 앞에서 아버지는 머뭇거린다. 나는 의사에게서 들은 대로 보톡스의 '효과는 미미할 수 있지만, 안전함'을 설파한다.
"3개월 후에는 없어지는 거예요. 아버지."
나는 성형수술과 피부과 시술이 전혀 없는 집안에 오점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시작점이었다.
아버지는 선선해지면 검버섯 제거 시술을 하러 가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친구 중에 안 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또한 각자의 나이대로 깊어진 팔자주름에 대해서 토론했다. 우리의 욕망은 이제 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내 욕망, 네 욕망, 우리 모두의 욕망이다. 이 욕망에는 제어가 필요하다.
"아버지, 우리가 이 외모지상주의 세상에 살면서도 단 한 가지 절대, 네버,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팔자주름 필러일 것이에요. 그것만큼 인간의 얼굴을 어색하게 만드는 것은 없어요. 그리고, 전 김건희 씨처럼 되기엔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그만 포기하세요."
돋보기 너머로 아버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