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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Oct 19. 2023

혼자 알콩달콩 잘 살아요.

혼자 살고 있다. 나는 이 작은 집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 넣고, 나만의 요새로 만들어 놓았다. 2년에 한 번씩 나의 요새는 무너지고 새로 지어지지만 상관없다. 시끄러운 세상에 시달리며 진이 완전히 빠져 집으로 돌아온 어느 저녁, 아무도 없이 조용한 이 공간에서 나는 마침내 한 줌의 평화를 되찾는다. 그것이 중요하다.


어머니는 당신이 죽기 전에 내가 좋은 남자를 만나 알콩달콩 재미나게 사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신다. 나는 혼자서도 재미나게 살고 있지만, 남자가 없어서 실격이다. 나는 집에서 혼자 바지런하게 이것저것 무엇인가 하고 잘 웃기도 한다. 내 작은 공간은 내 웃음소리로 가득 차고 이런 나는 상당히 귀엽다. 나는 혼자 알콩달콩하고 자빠졌죠? 하고 말하고, 또 소리 내어 웃었다.


내가 혼자 사는 것을 안쓰러워하는 사람들이 소개팅을 시켜준다. 나는 내가 '혼자'로 완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그들은 흘리지도 않은 내 눈물을 본다. 나는 지금 쯤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을 안고 사는 고독한 중년의 여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나이에도 소개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새로운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중년이 되면서 만나게 되는 소개팅 남자들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한다. 소개팅남 추천사가 대게 <머리숱은 없지만, 집에 돈은 좀 있는 사람>으로 요약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키도 작고 머리숱은 없지만, 집에 돈은 좀 있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도대체 나는 얼마만큼이나 돈을 좋아하는 여성으로 알려져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키 작은 남자와 결혼한 '키가 큰 7층 할머니'의 자식 농사 성공 케이스를 들고 오셨다. 그 집 자식들이 다 크고 잘생긴 것은 인정하지만, 아쉽게도 현대의 의학기술로 내 나이에 내 유전자를 남길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내 자식 농사는 글렀다.


대머리면 어떠냐, 돈 있다는데 심으면 되지.


세계 탈모 시장의 규모는 2025년까지 27조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나는 비만약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위고비>를 보면서 탈모 시장에도 획기적인 약품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며 어머니의 말에 동조한다.


어머니는 <미혼 중년 남성들의 외모>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관대하다. 그럴만하다. 아버지는 이 동네에서 가장 잘 생긴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는 사람을 외모만 보고 평가하는 그런 쓰레기는 아니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렇게 평가받고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키도 작고 머리숱은 없지만 집에 돈은 좀 있는> 양반과 사귀기 위해 애써 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일은 그만하기로 했기 때문에 패스한다.


주선자의 말보다 키도 크고 머리숱도 많았던 이 남성은 생각이 늙었다. 이렇게 낡은 대화는 오랜만이었다. 그의 정신은 몸 보다 빨리 노화되고 있었다. 머리숱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며, 아무래도 누군가를 굳이 만난다면 연하를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씀하셨다.


그거야 그렇지만, 어린 사람들이 너를 좋아해야 말이지.


그렇다. 이렇게 각박한 현실을 마주한 나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 외로운 중년 여성의 모습으로 길을 나섰다. 그러나 마침내 내 작은 요새로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 상당히 귀여운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요리를 하겠다며 부엌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 치울 생각도 하지 않고 외출을 나간 <오전의 나>를, 조금은 성숙해져 돌아온 <오후의 내가> 걱정하고 있다.


이 귀엽고 정신없는 녀석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래 가지고 시집가겠나 이거.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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