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굴레, 투자받기
하느냐 받느냐가 다르지만, 개인의 금융자산 투자도, 스타트업의 투자도 공통점은 모두 '해도 안 해도 괴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든든한 첫 지원금도 6개월 만에 동나버리자, 투자를 받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물론 자체 생산한 제품이 있기에, 캐시플로우가 있긴 했지만 IT시스템 개발을 위해선 좀 더 확실한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IR 기회라는 게 뚝딱 생기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열정과 아이디어에 지원금을 내어주는 정부사업과는 달리, <투자>이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상장되어 있는 회사의 주식을 살 때에도 고민하는데, 아직 가치도 잘 모르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당연히 까다롭고, 궁금해하고, 만나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예비창업패키지에서 만난 멘토님이 벤처캐피털리스트였고, 가능성을 봐주셨기에 종종 미팅 기회를 마련해주셨다. 그렇지만 여전히 기회는 턱없이 부족했고, 코로나라 스타트업 데모데이도 잘 열리지 않아 답답했던 와중에, 스타트업 운영 동지인 지인 분이 "넥스트유니콘"을 소개해 주셨다.
넥스트유니콘은 스타트업의 링크드인과 같다. 우리 회사의 비전과 프로필, IR자료를 업로드하면, 관심 있는 투자사에서 보고 연락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카테고리 내에서 많은 조회수를 확보하면 상위에 노출되고, 더 많은 연락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PR 기사도 하나 무료로 내주는 이벤트 중이었어서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는데, 수의사인 아빠와 마케터이자 기획자인 딸이 만든 "반려동물 헬스케어 스타트업" 스토리는 생각보다 관심을 끌었다. 업로드하고 1주일 만에 3번의 IR 기회가 들어왔고, 약 6개월간 1달에 2회 이상의 콜을 받았다.
대부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기업에서 관심을 보였기에 더욱 들뜨는 마음도 잠시, IR자료를 만드느라 몇 날 며칠을 늦게 자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게 되었다. (자세한 작성 내용은 스타트업의 회사소개서에서!)
마켓 분석과, 소비자 unmet needs 파악, 우리의 해결법 등을 누더기처럼 기워 만들었던 첫 IR자료는 수없이 많은 피드백을 강한 펀치로 맞았다.
FI(재무적 투자 Financial Investment)냐 SI(전략적 투자 Strategic Investment)이냐에 따라서도 투자자들의 뷰는 극명하게 달랐다.
FI의 투자자들은 아무래도 재무적 성과를 중심으로 성공할 비즈니스에 투자해야하기 때문에 숫자에 날카로웠지만, 시장에 대한 이해도는 깊기보단 넓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시장의 비슷한 케이스에 대해 신선한 시각으로 많이 조언해주었다.
SI의 투자자들은 반대였다. 전략적으로 기존 자신들의 사업 분야에 도움이 되는지, 신사업방향과 맞는지를 보기 때문에 숫자에는 무뎠지만, 시장과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깊었다. 또, 전략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방향성에 대한 현실적인 제안을 많이 해주셨다.
이 모든 것들은 때론 따뜻하게, 때론 독설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결국 피와 살이 되었다. 강남으로, 왕십리로, 판교로, 많은 투자자들의 사무실로 찾아갔고 다녀오면 자괴감이 가득했지만 그 다음 주엔 더 좋은 IR자료로 소화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FI든 SI든 공통점은, 결국 "사람"을 중심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꾸는 꿈이 어떤 건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지" "그 사람은 그걸 해낼 사람인지" 대표와 팀의 마음과 의지가 그 스타트업의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가장 처음으로 IR 기회를 주셨던 분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김대표님 보고 밀어붙인 거예요. 우리 대표님이 왜 이렇게 작은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저는 그냥 사람 봤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우리에겐 김대표님 같은 분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분의 그 판단이 디어닥터킴의 EXIT의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