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극작가 카를로 로렌치니의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 비록 동화의 전체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설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동화를 ‘거짓말을 하지 않고 착하게 살았더니 인간이 되었다’는 내용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동화는 한 아이의 성장기를 담고 있는 모험 소설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라는 교훈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피노키오가 천사로부터 받은 선물에도 우리의 생각과 다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거짓말하면 생각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바로 양치기 소년과 피노키오입니다. 모두 거짓말을 해서 벌을 받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거짓말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보다 정직하면 상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아이를 정직하게 만드는데 좀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고 하는 걸까요?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경우에도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현실에서 칸트의 말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고 항상 정직하게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무려 3만 번이 넘는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주 거짓말을 합니다. 이에 비하면 양치기 소년과 피노키오는 오히려 정직한 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자연에서 거짓은 아주 일상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넓게 본다면 주위 환경과 같은 색으로 눈에 띄지 않게 하도록 하는 보호색과 주위 환경이나 다른 동물과 매우 비슷한 모양을 취하는 의태 같은 위장술도 포식자나 피식자를 속이기 위한 일종의 거짓 행동으로, 생존의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로 얼굴에 분을 바르거나 하이힐을 신어 키가 더 커 보이도록 꾸미는 등 화장과 패션을 통해 본래의 모습을 속여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화 <왕자와 거지>에서 똑같이 생긴 왕자와 거지가 옷을 바꿔 입음으로써 신분을 바꾼 것처럼 말입니다.
언어를 가진 인간은 다른 생물에 비해 거짓말하는 능력도 뛰어납니다. 실제로 아직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은 2세 이하의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지만, 4세 이상이 되면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80% 이상의 아이들이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상대방이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원래 선하게 태어난 아이들이 세상에 물들면서 나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대뇌의 전두엽이 발달하여 자의식이 생겨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거짓말은 고등 정신 기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사람이 거짓말하는 능력도 더 뛰어납니다. 영화에 나오는 사기꾼들을 보면 그들의 아이디어에 감탄을 하게 되기도 하죠. (물론 창의적인 사람은 거짓말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른 동물에 비해 전두엽이 발달한 인간은 거짓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이 탁월한 능력을 공동체 내부에서 발휘하면 공동체는 분열되겠지요. 사회가 인간이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정직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거짓말을 잘 하기 때문입니다.
2008년 ‘미네르바’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주목을 받던 박아무개씨가 경제 전문가 행세를 하며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박씨는 당시의 전기통신기본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제소하였고, 헌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는 진실이건 거짓이건 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만일 진실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표현의 자유가 아닌 진실의 자유라는 것이며, 거짓을 말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겁니다. 물론 허위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이익을 취하는 경우에는 처벌이 필요하겠지요.
개인이 진실이나 거짓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피노키오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피노키오라고 생각해 보세요. 항상 정직하게 말해야만 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할까요? 그렇다면 천사의 선물로 인간이 된 피노키오는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바로 진실을 강요받지 않을 자유를 얻었다는 겁니다. 인간이 된 피노키오는 이제 거짓말을 해도 더 이상 코가 길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거짓말이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정보기술과 뇌과학의 발달은 사람들의 거짓말을 조금씩 밝혀내고 있습니다.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라는 책에서 구글 트렌드를 활용하면 인간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구글의 막대한 검색 데이터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나 영국이 유럽 연합을 탈퇴하는 브렉시트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말했지만, 구글 검색 데이터로 확인한 그들의 속마음은 이와 달랐습니다.
거짓말을 밝혀내는 것에 대한 문제는 바로 개인의 비밀을 지킬 수 있는 권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뇌-기계 인터페이스가 발달해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면 개인의 정신적 활동에 대한 비밀을 어디까지 보장해야 할까요? 뇌스캔을 통해 거짓말을 밝혀낼 수 있다면 이를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해야 할까요?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생기는 새로운 신경 윤리 문제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뇌스캔 기술이 발달하면 우리의 기억을 마치 영화처럼 영상으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는 기억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오해 중 하나로, 기억은 뇌 속에 영상처럼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뇌를 스캔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 하더라도 기억을 동영상처럼 선명하게 재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뇌의 기억 저장 방식은 영상을 기록하는 방식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지만 사람의 기억은 계속 변한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사건 현장을 목격한 후 새로운 경험을 하면 사람의 뇌는 그 경험으로 인해 이전의 기억을 새롭게 구성하는데, 이는 바로 기억이 왜곡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기억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밝히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