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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Oct 13. 2021

새끼를 낳는 다양한 방법들

필자는 지난 주 출장으로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일을 마친 후 짬을 내어 둘러본 경주는 신라 천년 고도이자,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는 표현처럼 발 닿는 곳 어디나 옛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신비한 경주의 이미지처럼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에도 신기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걸 알고 계시지요?


[삼국유사]에 따르면, 어느 날 신라 양산 기슭의 우물인 나정(蘿井)에 흰 말이 엎드려 절을 하더니 길게 울고 하늘로 올라갔다. 말이 올라간 자리에는 자줏빛 알이 있었는데, 이 알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를 동천의 샘에서 씻기자 몸에서는 빛이 났고, 하늘과 땅이 울렁이며 해와 달이 더욱 밝아졌다. 이에 아이의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짓고, 태어난 알의 모양이 커다란 박과 같다고 하여 박(朴)씨를 성으로 삼았다. 아이는 자라서 왕이 되었으며, 나라의 이름을 서라벌이라 하였다. 


신라의 시조였던 박혁거세 외에도 설화 속 위인들 중에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를 가진 이들이 꽤 있습니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 가락국의 초대왕인 김수로왕, 신라 석씨 왕조의 시조인 석탈해 등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아마도 하늘의 기운을 받은 신성한 이들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고대인들에게는 더 그럴듯하게 여겨졌나 봅니다.


이렇게 신화 속에는 알에서 태어난 인물들도 있지만, 현실 속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의 몸을 빌어 태어납니다. 또한 겉으로 보기에 모두 같아 보이는 출산의 순간이라 하더라도,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은 모두 다릅니다.







물속에서 사는 파충류,

알이 아닌 새끼를 낳다


2억 8천만년 전에 지구상에 살던 해양 파충류인 메소사우르스 암컷의 화석은 임신한 채 발견되었으며, 그 밖에 몇몇 해양 파충류 중에는 새끼를 낳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파충류와 포유류는 모두 양막(羊膜, amnion)이라는 일종의 주머니 안에서 배아를 키우는 양막동물입니다. 유생 시절에는 아가미를 가져 물 속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양서류와는 달리 파충류는 새끼 시절에도 폐호흡만이 가능하므로, 평생동안 물 속에 살던 파충류(예를 들어 바다거북)이라 하더라도 알만은 육지로 올라와 낳습니다. 물속에 알을 낳는다면 알 속 새끼들이 숨을 쉴 수 없어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릴 테니까요. 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새끼를 낳는 습성은 평생을 물에서 사는 해양 파충류들에게서 먼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알이 아니라 새끼를 낳는다면 물속에서 출산이 이루어져도 제 스스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을 테니 갓난 개체들이 익사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도 여전히 물속에서 살아가고 번식하는 바다뱀들도 대부분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 것으로 보아 물속에 사는 습성과 폐호흡이라는 생물학적 특성은 알이 아닌 새끼를 낳게 하는 진화적 압력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컷이 임신과 출산을 하는 해마


수중 파충류들은 포유류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새끼를 낳았습니다만, 파충류의 태아들은 태반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수정란 시절부터 지니고 있던 난황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해 자라다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새끼 출산을 난태생(卵胎生)이라 합니다. 새끼를 낳는 파충류와 어류는 대개 난태생의 방식으로 태어납니다만 생물학에서는 늘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해마입니다. 해마는 암컷이 아닌 수컷이 임신과 출산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짝짓기를 한 뒤 암컷이 수정된 알을 수컷의 육아주머니에 넣고 떠나면, 수컷 해마는 종에 따라 최소 열흘에서 최대 6주까지 이 알을 보호합니다. 아빠 몸속에서 무럭무럭 자란 새끼 해마는 알을 깨고 아빠의 몸속을 빠져나옵니다. 알을 낳는 어류답게 수컷 해마의 자그마한 몸은 한 번에 천마리가 넘는 아기 해마를 품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아기 해마들은 각자가 매달고 있는 난황에서 영양을 공급받으니 양분을 추가로 제공할 필요는 없지만, 이들도 숨은 쉬어야 합니다. 과학자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수컷 해마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아기 해마들에게 골고루 산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일까요? 과학자들은 임신한 수컷 해마를 면밀히 관찰한 끝에, 알 속의 아기 해마가 성장함에 따라 수컷의 육아낭이 점점 더 늘어나고 얇아지면서 새로운 혈관들이 돋아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포유동물의 태반처럼 말이죠. 이렇게 늘어나고 혈관이 많아진 아빠 해마의 육아낭은 아기 해마를 낳은 뒤 24시간 내에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갑니다. 마치 임무를 다한 태반이 저절로 떨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유대류의 태반, 젖이 되어 흐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상징적인 동물인 캥거루코알라는 분명 새끼를 낳는 동물이지만 이들의 출산과 육아는 조금 독특합니다. 유대류라 불리는 이 동물들은 임신 초기 아주 미숙한 새끼를 낳고, 이들을 배에 달린 육아낭이라는 주머니에 넣어 젖을 먹이며 데리고 다니는 습성을 지녔습니다. 이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출산을 하는 이유에 대해 기존에는 태반을 만들 수 없어 배아를 오랫동안 자궁에서 키울 수 없기 때문에 조산(早産)한 뒤에 육아낭을 통해 임신 후반기를 몸 밖에서 이어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류는 알을 낳는 단공류에서 태반 포유류로 진화하기 위한 중간 단계로 보는 시각이 있었지요. 하지만 지난 2017년 미국 스탠포드 의대와 호주 멜버른 대학 연구진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새끼를 매우 이른 시기에 출산하는 유대류에게서도 태반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유대류는 태반이 없이 새끼를 낳는 중간 단계의 포유류가 아니라, 태반 포유류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화된 다른 갈래의 포유류인 것입니다. 태반 포유류와 유대류의 태반은 그 기능과 역할이 동일하지만, 발현 형태가 다른 것뿐이라는 거죠. 태반 포유류에게 있어 태반은 임신 기간 내내 태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태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태아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보호자입니다. 그렇기에 출산 이후 지키고 보호해야 할 태아가 없는 태반은 할 일이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탈락되어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이를 후산(後産)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유대류의 경우, 태아가 비록 자궁 밖으로 나가 육아낭으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새끼는 상당 기간 어미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유대류에게서 태반을 형성하는데 기능했던 유전자들은 이제 유대류의 젖샘에서 발현하여 젖을 분비하고, 태아의 면역계를 모체의 면역계가 인식하여 공격하지 못하도록 교란시키는 새로운 역할을 맡습니다. 마치 태반이 젖으로 변해 새끼 캥거루를 보호하는 듯한 모양새이죠. 그래서 이 연구를 진행했던 연구자들은 유대류의 모유는 일종의 액상 태반(liquid placenta)처럼 기능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포유류, 태반을 발달시키다


인간을 비롯한 태반 포유류는 수정란을 모체의 자궁에 착상시켜 상당기간 모체의 자원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태아를 키운 뒤에 낳는 방식으로 번식을 합니다.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들어볼까요? 난자와 정자가 만나 만들어진 수정란은 하나의 축구공 모양에서 세포 분열을 거듭해 수정 후 3일 정도가 되면 마치 산딸기나 포도송이처럼 작은 세포들이 빽빽하게 모인 형태가 됩니다. 옛 과학자들은 이 모습이 마치 뽕나무 열매인 오디와 닮았다 하여 이 상태의 초기 배아에게 오디배(桑實胚. morula)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이전까지는 배아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의 운명이 동일했다면, 이후에는 운명이 서서히 갈리기 시작합니다. 이들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이들이 놓인 위치입니다. 하나로 뭉친 세포덩어리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세포층은 영양세포막이 되어 태아를 보호하는 태반과 탯줄이 되고, 안쪽의 세포들은 태아로 자라나는 것이죠. 태반은 장차 태어날 아기의 일부였던 조직으로, 아기가 무사히 성장해 태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태반을 만들어 어린 개체를 어미의 몸 속에서 키우는 것은 사실 임신을 해야 하는 암컷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큰 부담입니다. 알을 낳는 경우, 일단 알을 만들어낼 때까지는 자원 투자를 많이 해야 하지만 일단 알을 낳고 나면 어미는 온전히 자신의 몸만 신경쓰면 됩니다. 하지만 태반 포유류의 경우, 임신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태아에게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야 하기에 어미의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자원 지출을 감내해야 합니다. 하지만 새끼의 입장에서 본다면, 태반을 통한 영양분 및 산소 공급은 매우 매력적이고 안정적인 자원 유입 구조입니다. 물론 알 속에도 새끼가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분이 듬뿍 든 난황이 존재하지만, 알은 크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정량 이상을 넣을 수도 없고, 중간에 변수가 생기더라도 추가 지원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태반 포유류의 경우,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모체로부터 지속적,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고, 추가적인 자원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전자가 한 번 저축한 예금을 조금씩 꺼내 쓰며 삶을 꾸려나가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필요할 때는 가불도 가능한 풍족한 연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알 속의 태아를 지켜주는 건 부서지기 쉬운 알껍질 뿐이지만, 모체 속의 태아는 모체 그 자체가 커다란 보호막이 되어주어 훨씬 안전합니다. 안정적인 자원 공급과 안전한 보호막을 바탕으로 어린 개체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몸을 구성하는 매우 복잡한 기관들을 만들어낼 자원과 시간을 확보합니다. 인간의 복잡한 뇌 구조는 266일이라는 임신 기간과, 이 시간 동안의 안정적인 자원 공급 및 효과적인 보호가 없다면 결코 지금처럼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태생은 여러모로 어린 개체의 생존을 위해서 매우 안정적이고 유리한 번식법입니다. 


하지만 태아가 모체의 자궁 속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할 난관이 있습니다. 바로 모체의 면역계입니다. 면역계는 기본적으로 자신과 타자를 구별하고 외부에서 들어온 것은 모조리 거부하는 특징을 갖습니다. 태아의 경우, 절반은 모체의 유전적 특성을 물려받았지만 절반은 타인의 것입니다. 게다가 일단 자궁벽에 자리잡은 태아는 임신 기간 내내 모체에서 당분과 칼슘, 철분, 비타민을 가져갈 것입니다. 심지어 배아가 자궁 내벽에 착상한 뒤에는 장차 태반이 될 세포들이 자궁 내벽에 구멍을 내고 깊숙이 파고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래야 모체의 혈관계를 통해 필요한 물질을 얻어낼 수 있으니까요. 유전적으로 절반이 다른 외부 물질이 몸에 상처를 내는데도 면역계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죠. 실제로 배아가 착상하면서 자궁 내벽을 파고들면 인터류킨(interleukin)의 배출량이 높아지고 염증반응이 일어납니다. 인터류킨은 일종의 면역 신호 단백질로, 주변의 혈관을 느슨하게 만들고 모세혈관의 투과성도 높여 혈류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모세혈관은 보통 굉장히 좁습니다. 적혈구도 모세혈관을 지날 때면 한 줄로 서서 세포를 접은 채 지나가야 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좁아서는 염증이 생긴 곳에 원활하게 면역세포를 보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터류킨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이를 신호로 면역세포가 해당 부위로 몰려들면 인터류킨은 이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이런 염증 반응은 태아에게는 양날의 검입니다. 먼저 혈관이 느슨해지고 혈류량이 늘어나는 것은 태아에게는 이로운 일입니다. 그만큼 영양소를 더 쉽게 얻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면역세포가 활성화되는 것은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으면 생존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태아는 임신 기간 내내 모체의 인터류킨의 분비 자체를 억제하지는 않지만, 분비된 인터류킨을 재빨리 불활성화시키는 방식을 통해 자궁으로 오는 혈류량은 늘리면서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해가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엄마의 몸 속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처럼 다양하고 정교한 진화적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바로 그 진화적 기적의 증명인 셈입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혁거세거서간/수로왕/탈해이사금/동명왕 신화 중에서

- 양병찬, [포유류 태반에 대한 통념 깨져], BRIC 바이오토픽, 2017년 9월 13일자

- 양병찬, [태생포유류의 임신은 어떻게 진화했나], BRIC 바이오토픽, 2018년 8월 11일자

- 버지니아 헤이슨, 테리 오어 지음/김미선 옮김, [포유류의 번식-암컷 관점], 뿌리와 이파리, 2021

- 조홍섭, [임신하는 수컷 해마, 사람처럼 태반도 생긴다], 한겨레 2021년 9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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