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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Oct 20. 2021

영웅의 별자리에 숨어 있는 악마의 별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많은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아킬레우스에서 헤라클레스까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영웅들이 많습니다. 페르세우스도 그중 한 명이지만 앞의 두 영웅에 비하면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페르세우스라는 이름보다는 그가 물리친 빌런의 이름이 더 유명합니다. 그 빌런의 이름은 메두사입니다.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실뱀인 괴물로,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돌로 변해버린다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를 읽지 않은 사람들도 메두사의 이름은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최강 빌런답게 메두사는 영웅의 별자리에 숨어서 여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고 합니다. 







악마의 별 ‘알골’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와 인간 사이에 태어난 반신 영웅입니다. 페르세우스라는 이름도 ‘제우스의 아들(Per Zeus)’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페르세우스는 어머니가 세리포스 섬의 폴리덱테스 왕과 강제로 결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겠다고 말합니다. 막상 큰소리는 쳤지만 메두사를 보기만 해도 돌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페르세우스도 고민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때 신들이 제공한 방패, 칼, 하늘을 나는 신발과 투명 투구 등의 각종 아이템 덕분에 페르세우스는 손쉽게 메두사의 목을 벨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메두사를 물리친 페르세우스 동상

극강의 공포감을 주었던 메두사의 소문에 비하면 그 최후는 다소 허무합니다. 하지만 메두사는 영웅의 별자리에서 숨어서 여전히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습니다. 페르세우스 자리에서 베타 별인 알골(Algol)이 바로 메두사의 머리입니다. 알골이라는 이름도 ‘악마의 머리(Ras al Ghul)’에서 따왔습니다. DC코믹스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배트맨에 등장하는 악당 라스 알굴이 여기서 따온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영화 <반지의 제왕>의 나즈굴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단어입니다. 






페르세우스 자리와 악마의 별 알골

사람들은 예로부터 알골을 우주에서 가장 불길한 악마의 별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왜 그렇게 여겼을까요? 그건 알골이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대부분의 별은 일정한 밝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골은 평소 2등급의 밝기를 가지고 있는데, 2일 20시간 49분을 주기로 밝기가 1/3로 줄어들었다가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알골의 밝기가 변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옛날 사람들에게 이 별은 흉조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알골은 하나의 별로 보이지만 실은 세 개의 별로 이루어진 삼중성입니다. 가장 밝은 알골A외에도 알골B와 알골C가 중력에 의해 서로 묶여 있습니다. 어두운 별이 밝은 별을 가려서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식쌍성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악마의 별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너의 이름은?


페르세우스뿐만 아니라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무대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신화와 점성술, 천문학이 아직 혼재한 상태에서 그리스 사람들은 하늘을 신이나 영웅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로마와 중동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의 문화를 흡수하며 하늘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렇게 문학적 상상력이 가미된 학문이 천문학(天文學)인 셈이지요. 



북반구에서 맨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3,000개 정도 되는데 그 중에서 밝기가 밝은 1,000여 개 정도의 별이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망원경이 발명되어 새로운 천체가 계속 발견되자 천체를 표시하는 공식적인 체계나 카탈로그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M31이나 NGC224와 같은 명칭보다 일반인들에게는 안드로메다 은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친숙합니다. M31이라는 것은 단지 메시에 목록 31번이라는 의미밖에 없지만, 안드로메다 은하라고 하면 은하가 안드로메다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기억하기도 좋습니다. 천문학에서 그리스 신화를 뺀다면 정말 삭막하게 변해 버릴 것입니다. 이러한 별의 이름에 대한 전통(?)은 천문학이 점성술과 결별하고 과학으로서 확실한 자리를 잡은 후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 메시에 목록(Messier’s Catalogue) :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천문학자 메시에가 만든 성운과 성단의 목록. 현재도 많은 성단과 성운들이 이 표의 번호로 불린다. 


안드로메다 은하






별의 이름에 남은 그리스 신화의 흔적


원래 그리스 신들의 이름이 붙은 행성은 5개였습니다. 맨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것이 5개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라는 이름은 동양의 음양오행과 관련된 이름일 뿐 그리스 신화와는 상관없습니다. 물론 행성의 특성을 따서 이름을 붙이다 보니 우연의 일치처럼 보이는 것도 있긴 합니다. 수성(水星)은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물의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이렇게 이름 붙여졌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빠르게 움직이는 별이라서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로마: 머큐리)의 이름을 따서 머큐리(mercury)로 부른 것이지요. 또한 ‘빠르게 움직이는 은’이라는 의미로 수은(水銀)을 머큐리라고 이름 붙인 겁니다. 


태양계 행성의 이름

새로운 행성이 발견되어도 천문학자들은 여전히 신들의 이름을 붙이던 선례를 따랐습니다. 1781년 허셸이 발견한 새로운 행성인 천왕성은 우라노스(Uranus)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목성이 제우스(로마: 주피터), 토성이 크로노스(로마: 사투르누스)에서 기원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우스의 아버지가 크로노스이고, 할아버지는 우라노스입니다. 그러니까 목성-토성-천왕성아들-아버지-할아버지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이름 붙인 우라노스를 한자로 표현하다 보니 ‘하늘을 다스리는 신’의 의미를 지닌 천왕성(天王星)이 된 것입니다. 


해왕성은 포세이돈(로마: 넵투누스)에 해당하는 넵튠(Neptunus)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천왕성처럼 파란색을 띠고 있으니 하늘의 신 다음에 바다의 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2006년 왜소 행성으로 강등되었지만 가장 멀리 떨어져 어두운 명왕성(Pluto)에는 저승의 신 하데스(로마: 플루토)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앞의 5개 행성에는 ‘왕’이라는 글자가 없고, 새롭게 발견된 행성에는 들어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행성에 신들의 이름을 붙일 때에는 행성의 특성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사실 행성이 항성과 다른 천체라는 것 자체를 몰랐던 것입니다. 단지 모두 같은 별이지만 제자리에 있지 않고 돌아다닌다고 해서 떠돌이별이라는 의미로 행성이라고 부른 것뿐입니다. 하지만 행성에 신들의 이름을 붙여 놓고 나니 탁월한 선정이었던 경우도 있는데요, 바로 목성(Jupiter : 제우스의 로마식 이름)입니다. 목성은 행성 중 가장 덩치가 큽니다. 올림포스 최고 신인 제우스의 이름을 목성에 붙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별에 이름을 잘 붙여 출세한 사람도 있습니다. 망원경을 발명한 갈릴레이는 목성을 관찰하다가 4개의 위성을 발견해 ‘메디치의 별’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당시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던 메디치가(家)에 잘 보이려고 한 것입니다. 덕분에 갈릴레이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궁정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4개의 위성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갈릴레이의 위성’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각각의 위성에는 케플러가 제안한 이름이 붙어 있는데요. 케플러는 어떤 이름을 제안했을까요? 그는 목성의 위성에 제우스가 사랑했던 연인들인 이오, 에우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목성, 그리고 갈릴레이의 위성들 by NASA,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태양계 내에 있는 소행성이나 위성 등 새롭게 발견된 천체에는 그리스 신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의미 없는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이름을 좋아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과학자들은 모두 고리타분할 것 같다는 생각은 큰 오해가 아닐까요?




<참고문헌>


・ [아하! 우주] 밤하늘에서 윙크하는 ‘악마 별’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oid=081&aid=0002544826


・ 1610년, ‘메디치의 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4348063&cid=60336&categoryId=60336


・ 토성의 새로 발견된 위성들…‘작명’에도 규칙과 절차가 있다

https://www.khan.co.kr/science/aerospace/article/201910102255005


・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영어이야기』, 아이작 아시모프, 김태웅 역, 웅진지식하우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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