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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Oct 27. 2021

온도와 촉각 수용체의 비밀

치열한 연구 경쟁에서 노벨상 공동수상으로


날씨가 추워지면 달달한 자장면보다는 매운 짬뽕이 더 먹고 싶어집니다. 뜨겁고 매콤한 국물을 마시면 이마에 땀방울이 맺힙니다. 움츠렸던 몸도 풀리기 시작합니다. 식당을 나설 때 매운 열기로 가득한 입안에 박하사탕 하나를 넣습니다. 순간 시원한 기운이 입안에 맴돕니다.


우리 몸은 주변 온도를 감지해 추울 때는 따뜻한 음식을 찾고, 더울 때는 땀을 배출해 몸을 식힙니다. 인류가 정온동물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우리는 뜨겁지 않은 고추를 먹으면 땀을 흘리고, 열을 빼앗지 않는 박하사탕을 먹으면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일까요?


* 정온동물 : 기온과 관계없이 일정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동물








고추의 매운맛은 열센서로 감지한다


이러한 미스터리는 1997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드 줄리어스(David Julius) 교수팀이 과학저널 네이처에 ‘캡사이신 수용체 : 통증 경로에 있는, 열에 의해 활성화되는 이온 채널’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풀렸습니다. 제목을 살펴보면 매운맛과 통증, 열이 하나의 이온 채널(센서)을 통해 감지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 말단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신경 세포막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이온 채널이 통증 신호를 감지해 대뇌까지 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온 채널은 평소에는 닫혀 있어 신경세포 밖의 양이온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체내 온도가 42℃를 넘거나 고추의 주성분인 캡사이신이 이온 채널인 TRPV1 단백질에 붙으면 닫혀 있던 신경세포막이 열립니다. 순간 세포 밖에 있던 나트륨 이온(Na+)과 칼슘 이온(Ca²+)이 안으로 들어오고 일정한 이온농도를 유지하던 신경세포의 휴지전위가 활동전위로 바뀝니다. 이처럼 외부의 자극이 전기신호로 변환돼 축색돌기와 척수를 거쳐 대뇌로 신호가 전달됩니다. 우리가 열과 매운맛을 느끼는 과정입니다. 


* 이온 채널(ion channel, 이온 통로) : 세포막에 존재하면서 세포의 안과 밖으로 이온을 통과시키는 막 단백질. 이온의 이동은 생체에 전기신호를 발생시키고 신경흥분 등 많은 신호전달에 관여한다.


고춧가루가 들어있는 짬뽕 국물을 마시면 불타는 듯한 느낌과 화끈거리는 매운맛을 느낍니다. 고추의 주성분인 캡사이신(capsaicin)이 TRPV1 단백질을 자극하면 우리 몸은 ‘매운맛’과 ‘열’ 신호를 전달받습니다. 이에 대뇌는 몸을 식히기 위해 땀을 배출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런데 따뜻한 짬뽕 국물이 아니라 미지근한 고추장이나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먹어도 우리 몸은 뜨거워집니다. 뇌의 입장에선 우리 몸이 뜨거운 것을 먹지 않았는데도 고추맛을 느끼면 덥다고 속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전자를 조작해 TRPV1 단백질을 없애면 매운맛과 열을 느끼지 못할까요?








열을 감지하는 센서는 여러 개


2000년 줄리어스 교수팀은 TRPV1 단백질을 없앤 생쥐를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겉보기에는 정상적인 유전자를 지닌 생쥐와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추의 주성분인 캡사이신을 먹이거나 주위의 온도를 높였을 때, 일반 생쥐와 TRPV1 단백질이 없는 생쥐의 행동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습니다. 


캡사이신을 탄 물을 먹였을 때, 일반 생쥐는 한 번 마시고는 다시는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반면 TRPV1 단백질이 없는 생쥐는 평소처럼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나아가 연구진은 이들 생쥐의 꼬리를 뜨거운 물에 담가보았습니다. 그러자 일반 생쥐는 화상을 입지 않기 위해 얼른 물 밖으로 꼬리를 빼냈지만 TRPV1 단백질이 없는 생쥐는 이러한 반응이 훨씬 느렸습니다. 


TRPV1 단백질이 매운맛과 열을 감지하는 센서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TRPV1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고장 낸 생쥐도 일반 생쥐보다 느리긴 했지만 뜨거운 물에서 꼬리를 빼낸 것을 보면, TRPV1 단백질처럼 열을 감지하는 센서가 여러 개인 것을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연구진이 밝힌 열 감지 센서는 여러 개였습니다.


TRPV1 단백질은 42℃ 이상일 때, TRPV2 단백질은 52℃ 이상일 때, TRPV3 단백질은 33℃ 이상일 때 신경통로가 열려 뜨겁다는 느낌이 뇌로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TRPV4 단백질은 27~42℃에서 이온 채널이 열렸습니다. 즉, 우리 몸은 열을 감지하는 여러 개의 센서가 다양한 온도 범위에서 뜨거운 정도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캡사이신은 열센서 가운데 TRPV1 단백질에만 달라붙고, 나머지 열센서에는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TRPV1 단백질이 없는 생쥐는 고추의 매운맛을 느끼지 못하지만 뜨거움을 느끼는 다른 센서들은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박하사탕의 시원함은 냉센서로 감지한다


청량감을 안겨주는 민트

그 뒤 과학자들을 열센서와 반대되는 냉센서도 찾아냈습니다. 2002년 줄리어스 교수와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 아뎀 파타푸티언(Ardem Patapoutian) 교수팀은 거의 동시에 멘톨이라는 화학 물질을 사용해 추위에 의해 활성화되는 냉센서인 TRPM8 단백질을 식별해냈습니다. TRPM8 단백질은 25℃ 이하에서 이온 채널이 열리면서 차갑다는 신호를 대뇌로 전달합니다. TRPM8 단백질은 차가운 온도일 때뿐 아니라 박하의 주성분인 멘톨이 붙을 때도 반응합니다. 박하사탕을 먹거나 껌을 씹으면 입안이 시원해지는 이유입니다. 


Sciencia58 utilising the image from LadyofHats; modifier: Kuebi = Armin Kübelbec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72개의 유전자를 한개 한개 비활성화시키며 압력 감지 유전자 찾아내 


이처럼 온도 감지 센서를 발견한 데이비드 줄리어스 교수와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뜨거울 때 뜨겁다고 느끼고, 추울 때 춥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의 생존에 있어 매우 중요한 능력입니다. 뜨거움을 느끼면 화상을 입는 피해를 줄일 수 있고, 차가움을 느끼면 동상을 덜 입게 됩니다. 또한 촉각을 감지하면 날카로운 물건으로 입을 수 있는 부상을 최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감지능력 때문에 필요 이상의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옷깃만 스쳐도 아픈 질환으로 알려진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입니다. CRPS 환자들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극심한 통증을 호소합니다. 어떤 환자는 TV방송에 출연해 안락사를 고려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 고통의 크기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인체가 온도를 어떻게 느끼는가를 밝히는 동안 기계적인 자극이 어떻게 느껴지는가는 오랜 동안 미스터리였습니다. 이에 대해 파타푸티언 교수는 마이크로피펫 끝단으로 찔렀을 때 측정 가능한 전기신호를 방출하는 세포를 찾아냈고, 이후 이와 관련된 유전자 72개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들 유전자를 하나씩 비활성화시키면서 우리 몸에 어떤 물리적 압력이 가해졌을 때 어떻게 신경세포로 신호가 전달되는지를 실험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특정 유전자를 비활성화시켰을 때 세포를 찔러도 아무 반응이 없는 유전자를 찾는데 성공했고, 이 수용체에 ‘PIEZO1’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뒤 두 번째 수용체인 ‘PIEZO2’도 찾았습니다. PIEZO1기계적인 자극을 감지하는 수용체이고, PIEZO2는 위치와 자세를 감지하는 수용체입니다. 파타푸티언 교수팀은 이 두 수용체가 혈압이나 호흡, 방광 조절 같은 주요 생리과정을 조절하는 것도 밝혀내 2010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두 연구팀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주제를 놓고 경쟁적으로 연구를 했지만, 온도와 압력을 감지하여 전기적인 신호로 바꿔주는 수많은 수용체 분자들을 발견해내면서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들의 발견은 통증 기전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시야를 제공해줌으로써 의료분야에서는 TRPV1에서 전기신호가 전해지는 통로를 차단해 신경 통증 자극을 줄여주는 리도카인 등 통증치료제 개발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수상자들은 자국에서 노벨상을 받게 되며 시상식은 TV로 중계될 예정입니다.






참고문헌

- Ajay Dhaka, Taryn J. Earley, James Watson and Ardem Patapoutian, 2008, Visualizing Cold Spots: TRPM8-Expressing Sensory Neurons and Their Projections, Journal of Neuroscience 28(3), pp.566-575.

- Coste B, Mathur J, Schmidt M, Earley TJ, Ranade S, Petrus MJ, Dubin AE, Patapoutian A., 2010 Piezo1 and Piezo2 are essential components of distinct mechanically-activated cation channels. Science, vol 330, pp55-60.

- Michael J. Caterina, Mark A. Schumacher, Makoto Tominaga, Tobias A. Rosen, Jon D. Levine, David Julius, 1997, The capsaicin receptor: a heat-activated ion channel in the pain pathway, Nature, vol 389, pp.816-824.

- ‘이온 통로’,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141589&cid=60266&categoryId=60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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