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동물에 비해 연약한 인간이 다른 동물로부터 몸을 보호하거나 추위를 막는 데에는 불이 꼭 필요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류 문명이 불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만큼 불이 중요했기 때문이지요. 불은 문명을 태동시키는데 직접적인 역할도 했습니다. 불을 이용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 때마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지요. 물의 상태변화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증기기관이 발명되었고, 이를 통해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에도 불을 이용했습니다. 불은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해 문명을 가져다주었지만 방심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위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불에 대해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불이 무엇인지는 어린아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명하기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막상 여러분께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실 건가요? 아마도 자세히 대답하기 힘들 겁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불을 사용해왔으면서도 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불의 정체에 대해 밝혀지기 시작한 게 겨우 2백여 년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로 불에 대해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불 이야기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에서 출발합니다. 물론 불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아닙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주었다는 이야기처럼 옛날에는 불을 훔쳐서 줄 수 있는 물건이나 물질로 여겼습니다. 그런 생각은 4원소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자연철학자들은 불을 공기, 물, 흙과 같이 세상만물을 구성하는 물질(본질)이라고 여겼습니다. 불이 원소의 하나로 꼽힌 것은 물질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촛불이나 장작불 등 모든 불은 마치 살아있는 듯 위로 살랑거리며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공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일 때는 마치 물질처럼 보이지요.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하는 마법의 불 ‘캘시퍼’는 이러한 불의 이미지에 따온 캐릭터지요. 불의 정체를 몰랐던 사람들은 캘시퍼처럼 불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여기고 숭배하기도 했습니다.
신화나 마법에서 벗어나 불의 정체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최초의 과학 이론은 플로지스톤설이었습니다. 1679년 독일의 화학자 슈탈은 불에 타는 물질은 타기 쉬운 성질을 가진 플로지스톤(phlogiston)이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어요. 플로지스톤은 ‘불에 탄 것’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플로기스토스’에서 따온 말입니다. 플로지스톤이 있으면 불타고, 모두 빠져나오면 불이 꺼진다는 것이지요. 장작이 타는 것을 보면 플로지스톤설은 경험과 잘 맞는 듯했습니다. 나무가 타고 남은 재는 무엇인가 빠져나가고 남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지요. 플로지스톤설은 연소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18세기까지 많은 화학자들이 이 이론을 받아들였습니다.
1783년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는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플로지스톤설이 틀렸다는 걸 입증해 냅니다. 연소할 때 플로지스톤이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연소가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즉, 연소는 물질이 산소와 결합하여 열과 빛을 내며 다른 물질로 변하는 현상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연소가 일어날 때 생기는 불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지요. 불은 눈에 보일 뿐 아니라 바람에 따라 움직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불이 물질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불은 물질이 아닙니다. 어떻게 물질이 아닌 불이 눈에 보이는 걸까요?
불의 모양이 캘시퍼의 생김새처럼 위로 타오르는 모양이 되는 것은 대류에 의한 것입니다. 물질이 연소하려면 고체나 액체 상태의 물질이 기체로 바뀌어야 합니다. 양초를 보면 고체의 초가 녹아서 심지를 타고 올라가 기체 상태로 바뀌면서 연소됩니다. 기체 상태의 물질이 산소와 결합하면서 열에너지를 방출하면 이때 열로 인해 다른 물질을 계속 기체 상태로 바꾸면서 연소반응이 지속적으로 일어납니다. 물질의 연소 반응은 열을 방출하는 발열반응입니다. 그래서 반응이 일어나면 열로 인해 물체에서 나온 가연성 기체나 생성 기체의 온도가 높아집니다. 온도가 높은 기체는 밀도가 낮아서 부력에 의해 위로 상승하게 되지요. 상승할 때 가운데 부분이 빠르고 주변의 공기가 빨려 들어오면서 원뿔처럼 생긴 불의 모양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위로 상승하는 기체가 빛을 방출하기 때문에 불의 모양은 어느 것이나 비슷하게 보이는 겁니다. 우리가 불이라고 부르는 것은 타고 있는 물질 또는 생성된 물질에서 방출되는 복사선입니다. 그래서 불은 물질이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물질이 방출하는 복사선이 불이라면 왜 불의 색은 왜 빨간 걸까요? 물질이 연소될 때에는 적외선이나 가시광선과 같은 복사선을 방출합니다. 이중 가시광선을 보고 불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물질이 산소와 결합한다고 해서 모든 불이 보이는 건 아닙니다. 연소가 일어나도 불의 온도가 적어도 500℃ 이상은 되어야 검붉은색으로 겨우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온도보다 높아야 눈으로 볼 수 있는 정도의 가시광선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온도가 낮을 때는 대부분 적외선 복사를 하므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적외선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이 온도보다 낮아도 불타는 것으로 보이겠지요.
불의 색은 온도를 추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불은 온도가 높을수록 붉은색에서 주황색, 노란색을 거쳐 흰색으로 빛납니다. 장작불을 비롯해 우리가 보는 불꽃의 색이 붉은 것은 나무와 같은 탄화수소 연료가 탈 때 기체의 온도가 1천℃ 내외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과학책에서 별의 색이 표면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장작불과 가스레인지 불을 비교하는데, 이건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잘못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처녀자리 알파성인 스피카의 빛과 가스레인지 불꽃은 둘 다 파란색입니다. 그렇다면 스피카와 가스불의 온도가 비슷할까요? 스피카는 표면온도가 약 2만℃이지만 가스레인지의 파란색 불꽃은 1500℃ 정도로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온도가 차이 나는 이유는 파란색 빛을 내는 원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별의 색은 표면 온도에 따라서 빨간색에서 흰색을 거쳐 파란색으로 변하는 것이 맞습니다. 만일 가스불도 온도 때문에 파란색을 띠었다면 비슷한 온도였을 겁니다. 하지만 가스불이 파란 것은 가스가 연소하면서 생긴 이산화탄소가 방출하는 빛이 파란색이기 때문입니다.
화성 아래쪽에서 파란색으로 빛나는 처녀자리의 스피카(Spica, Alpha Virginis) by Stephen Rahn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불꽃의 색이 달라지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별의 표면 온도처럼 물체의 온도에 따른 색입니다. 온도가 높을수록 파란색 파장의 복사선을 많이 방출하기 때문에 파랗게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금속 원소의 불꽃색처럼 전자의 궤도 전이에 따른 스펙트럼에 의한 것입니다. 이것은 높은 궤도에 있던 전자가 낮은 궤도로 내려올 때 방출하는 스펙트럼의 파장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이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같은 파란불이라도 온도가 이렇게 다른 겁니다.
참고문헌
∙『화학의 역사』, John Hudson, 고문주 역, 북스힐, 2005
∙ 가스렌지 불꽃은 왜 파란 색일까? https://blog.daum.net/ksc0482/3
∙ 그렇다면 불은 왜 뜨거운가요? https://luvlyday.tistory.com/57
∙ 불은 왜 빨간색일까? https://shuvro.tistory.com/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