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치 Mar 27. 2016

개인 카페에서 일한다는 것

여유 나눠주기

체인점이 아닌 개인 카페에서 일 할 수 있음의 가장 큰 매력은 손님과의 소통이 여유롭다는 점. 물론 다른 매력들도 많지만 요번에 내가 느낀 소통의 여유를 함께 나누고파 글을 적는다.


요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터라 마음의 여유가 턱없이 부족했고, 자청해서 주말에도 일을 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따라 커피 주문 하나하나가 짐처럼 느껴지던 하루였다.


퇴근 두 시간 전쯤이었을까? 여자 손님 한분이 들어왔고, 주문을 받으려는 찰나 손님의 목 상태가 좋지 못함을 알아챘다.


"아 제가 감기에 걸려서요. 목소리가 좀 그렇죠."

"아 아니에요~! 어떤 음료 드시겠어요~?"


라고 물었고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음... 자몽에이드를 먹고 싶은데.."


순간 목 상태도 안 좋으신 분이 차가운 에이드 음료를 드신다길래 놀라서


"네?! 에이드보단 목 상태가 안 좋으시니, 따듯한 자몽차가 어떠세요?"

"아.. 제가 달달한 게 먹고 싶어서요."

"그럼 제가 좀 더 진하게 타드릴께요!"


라며 짧은 대화를 끝냈고, 음료를 가져다 드리면서 마치 담당 셰프라도 된 것 마냥 너무 달지 않으시냐고 맛까지 여쭸다. 맛이 좋다며 미소로 대답하셨고 괜히 뿌듯한 마음으로 카운터로 돌아와 앉았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요 근래 내가 이렇게 웃어본 적이 있나 싶었다.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나를 잃어가는 게 아닌가 했고, 이렇게 누군가와 소소하게 나눈 대화 사이에 이유모를 감사함을 느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싶었다. 근래의 나는 잘 웃지도 않았고, 웃어봤자 억지웃음에, 잦은 두통, 끼니를 거르고, 해야 할 일들은 너무나 많은데 아무것도 손대지 못하고 밤잠만 설치고... 겉만 번지르르한 빛 좋은 개살구였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밥 한 끼를 먹어도 천천히 꼭꼭 씹어 먹고, 한 시간을 공부하더라도 무언가에 쫓기듯이가 아니라 마음 편히 집중할 수 있고,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가벼운 조깅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당장에 실천하자 했다. 나를 위해서 이기도 했지만 타인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얻는 뿌듯한 달콤함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가게에서 파는 서로 다른 맛의 수제 쿠키 두개를 들고 그 여자분께 저벅저벅 걸어갔다.


"저 혼자 먹기 좀 그래서요.. 어떤 거 드실래요?"

"와~ 고맙습니다. 저는 이걸로 할게요. 고마워요!"


라며 아까보다 더 환하게 웃으시며 초코 쿠키를 가져가셨다. 이천 원도 안 되는 쿠키로 아까 보다 더 큰 뿌듯함과 여유를 얻은 셈이 된 것이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갑자기 그 여자분께서 카운터로 또각또각 걸어오시더니,


"저는 달리 드릴 건 없고... 이거라도."

귀요미 비타민C 녀석들


하며 귀여운 비타민C 4알을 건네주셨다. 나는 거의 환호성 지르다시피 감격했다는 표정과 함께 연신 고맙다며 자주 오시라는 말과 함께 손님도 없겠다 수다 삼매경에 빠져 버렸다. 요즘 체인 카페에 밀려 개인 카페들이 빛을 잃어간다는 둥 결혼 이야기, 취업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도대체 카페 로맨스는 어디서 일어나는 거냐며 한탄하기도 했다. (웃음)




아쉽게도(?) 카페 로맨스 따윈 기대할 수 없었지만, 4개월째 개인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손님의 번호가 처음으로 휴대폰 주소록에 담겼다는 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편하게 연락해요~"


라며 웃으며 인사하고 떠난, 짧지만 강하게 나에게 마음의 여유를 깨닫게 해 준, 이제는 손님이 아닌 '언니'가 되어준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