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치 Jun 11. 2016

각자의 행복

타인의 행복과 비교하지 않기


행복


행복에 흠뻑 취해 본 게 언제 적인지 기억도 가물가물 하다. 그립고 그리운 진정한 행복의 맛. 아마도 그건 애쓴다고 만들어지지 않는 듯했고, 꼭 내가 행복해져야만 행복하다고 정의 내릴 수도 없는 듯했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허락된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 혹은 내 주변 사람의 행복을 바라보기만 해도 그 행복에 물들듯 미소 한번 짓고 기분 좋은 자극 한번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굳이 내가 행복해야만 한다는 건 강박 아닐까?





한 달 전쯤인가부터 연애를 시작한 나의 분신과도 같은 J언니와 오랜만의 데이트이다. 솔직히 오랜만이라고 해봤자 겨우 한 달 만이긴 하지만 그 사이 서로 많고 많은 일이 있던 터라 꽤나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서로 만나지 못한 그 사이 나에겐 폭풍 같던 시간만이 머물렀었는데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묘하게 향긋한 향기를 품은 미소가 자꾸만 내 눈에 띄었다.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부럽다 부러워~"

"뭐 이 지지배야"

"얼굴에 다 티가나네. 나 행복해요 라고"



순간 그녀는 멈칫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야~!"

"아니긴, 언니 다 티가 난다? 좋은 건 굳이 이렇다 저렇다 떠들어 대지 않아도 다 티가 나나 봐. 언니 얼굴에서 티가나. 여유 있게 행복한 모습에서 다 드러나."

"... 아 정말?"

"응 신기하지?"



머뭇거림도 잠시 안도하는 표정과 함께 이내 말없이 내 손을 잡고 휘적휘적 경치 좋은 카페를 찾아댄다. 한 달 전만 해도 마음에 돌 하나 얻어 놓은 듯한 안색의 그녀였는데, 이제는 표정에서부터 은은하게 빛이 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런 그녀를 보니 다행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그녀와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함께하면 할수록 그녀 얼굴엔 웃음이, 내 마음속 얼굴에는 그늘이 지어졌다. 티는 내지 못했지만 그 그늘은 점점 짙어져만 갔다.



'나는 행복한 거 맞나?'

'정말 행복하다면 그녀처럼 자연스레 묻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하하호호 입으로 떠들어대는 웃음소리가 커짐과 동시에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괴리감 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대화의 집중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입으로는 분명 웃고 있는데 내 안에서는 진정 웃질 못하고, 넌 정말 행복한 거 맞냐고 스스로에게 취조 아닌 취조를 당하고 있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또 그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씩 채워가는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하며 지내왔고, 그 속에서 행복하다 말하며 느끼고 살았다. 그런데 오늘 그녀의 행복을 마주하는 순간 내가 그동안 고백해왔던 행복들이 작고 보잘 것 없이 느껴졌다. 결코 내 행복들이 작은 행복들이 아니었는데, 미련스럽게 더 행복해지고 싶은 욕심에 눈이 먼 탓일까. 점점 초점도 흐릿해져 갔다.



"우리 테라스 올라가 볼까?"

"... 어? 어어 그래그래.."



점점 말수가 적어지는 나를 의식했는지 그녀가 먼저 자리를 옮기자 권한다.



"아 좋다."

"그치?"



늦은 오후의 냄새와 온도. 실내의 차갑기만 한 에어컨 바람보다 더 시원한 느낌이다. 알록하게 파라솔들이 팡팡 터져 나와 있었다. 테라스로 올라오길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 멍해진 시선이 찬 바람 한번 마주하더니 맑아지기 시작한다. 갈팡질팡하던 고민의 조각들도 차분해지며 옹기종기 모여 앉기 시작한다. 여전히 해맑게 눈앞에 그려진 그녀를 보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굳이 그녀의 행복과 나의 행복을 비교할 필요는 없잖아'

'그녀는 그녀대로 행복한 거고, 나는 나대로 행복해하며 지내왔잖아'

'괜찮아 괜찮아'



생각의 힘, 말의 힘이 얼마나 무섭던지 서서히 나의 표정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부럽기만 했던 그녀의 표정과 몸짓이 나에게 물들듯 온 몸으로 퍼져왔다. 잠시나마 행복을 저울질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그녀가 부럽지 않았다. 나도 웃고 있었다. 나도 행복에 마음 담그고 있었다.



"언니 진짜 좋다."

"안 올라왔으면 어쩔 뻔했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늠할 수 조차 없는 행복의 무게를 재고 따져본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었다. 어렵게 맛본 행복의 맛이라, 너무나 달콤한 행복의 맛이라 나도 모르게 욕심의 욕심을 거듭하면서 놓치기 싫어 더 발악하며 행복하지만 동시에 불안의 길을 걸어가고 있던 셈이다.



'각자의 행복'



그래. 각자의 그릇에 맞는 각자의 행복이 있는 거지.

누구의 것을 부러워하고, 누구의 것을 탐내지 않는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 있어야 내 앞에 담긴 행복을 진정으로 맛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또한 더 행복해져야겠다는 욕심을 내려놓는 순간 내가 지니고 있던 행복은 결코 작지 않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그제야 하늘이 선명하게 보였다. 분홍색, 하늘색, 흰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자연스레 영롱하다. 그런 영롱한 하늘 아래에서 숨 쉬고 있음이 감사했다. 하루 종일 그녀를 따라 웃던 내가 이제는 내가 그녀를 웃게 만들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도 충전이 필요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