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당일치기 여행의 매력
당장에 떠나고 싶었다. 숨이 막힐 것만 같았고, 더는 버틸 힘도 없었으니까.
그래, 나는 처음 맛보는 압박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먹을 만큼 먹었다 생각했던 나이는 고작 스물일곱 청춘이었고 앞으로 두 달뒤 호주로 떠나는 비행기에 홀로 몸을 실어야 했다. 게다가 그 짧은 기간 사이에 책을 내겠다고 엄포까지 놓은 상태이니... 하지만 그 선택에 아무도 대신해서 책임을 져 줄 수없다는 걸 알아버린 이후 난생처음 느껴보는 불안감에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산떠미라 한 걸음 떼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한 걸음 떼는 순간 모든 걱정들이 해결해 달라며 우르르 몰아칠까 봐. 물론 스스로 선택한 결정이었지만 '정착'이라는 단어가 어색한 나의 삶은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스물일곱, 이십 대 후반.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씩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일 벌리기 선수에, 도전에 미쳐있었고, 그 흔한 애인도, 모아둔 돈도, 확실했던 꿈 조차 희미해져 갈 타이밍이었으니 더더욱 불안했을 수밖에.
그래도 내 인생인데, 그 누구의 인생도 아닌 나만의 인생인데 두렵다고 물러날 수 없었고, 싫다고 이제와 무를 수 도 없었다.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목표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나에게 숨 쉴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다음 달 초에 제주도 안 갈래?"
"오? 그래 잘됐다. 안 그래도 나 여름휴가도 못 다녀왔잖아."
"대신 당일치기로"
"에...? 당일치기? 제주도를 무슨 당일치기야"
"비행기표가 웬만한 KTX보다 저렴해!"
"어... 그래? 까짓 거 가지 뭐!"
제주도를 당일치기라니... 헛웃음부터 나왔지만, 이미 내 마음 어딘가에선 '남들이 잘 안 하는 거잖아?!' 라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살짝은 무모할 법한 여행 앞에서 마음부터 '꿈틀' 하는 걸 보니 한편으론 다행스러웠다. 아직 죽지 않았구나 하는 철없는 마음에
출발 전부터 우리를 향한 다양한 시선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미쳤다', '당일치기라니 아깝다'라는 둥 부정에 가까운 반응들이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나는 가야겠는 걸? 이미 표도 끊어놨는 걸!
스케줄은 빡빡하게 잡지 않았다. 어차피 여행은 태생이 아쉬운 놈이라, 아무리 타이트한 일정도 아쉽게 느껴질 거라 생각했다. 1박 2일도 2박 3일도 아닌 당일치기였는데 불 보듯 뻔했다. 주로 제주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맛집이라던지, 여유도 느낄 수 있고 시끄럽지 않은 해변가 위주로 다녔다. 작정하고 온 제주는 작정하고 나에게 달려들어와 주었다. 갈급했던 마음 덕이었을까? 처음 가는 제주도 아니었는데 처음 마주하는 사람 마냥 낯설고 궁금했다. 특히 작년에도 다녀갔던 함덕 해변은 사뭇 달랐다. 여름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었고 찰박찰박 파도소리 마저 고요했다. 그에 반해 내 마음은 바다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아 바다야. 바다...! 그것도 제주 바다잖아! 발이라도 담글래!"
"언니 괜찮겠어요?!"
동행했던 동생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치마를 걷어올리고 뛰어들었다.
성큼성큼 파도 속으로 발을 담갔다. 마음 같아서는 젖을 옷 따위는 고민도 안 하고 잠수까지 할 기세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차가웠다. 내 몸은 따듯하니까 바다가 점점 미지근해질 거라는 이상한 착각까지 들었다. 모든 무장이 해제되는 순간이었다. 서서히 발걸음을 해변가로 뒷걸음질 쳤다. 날 향해 달려드는 파도가 보고 싶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이거야
내가 원하던 게 이런 거였어
이 여유가 그리웠던 거야
차가운 바닷물에 발 한번 조심스레 담가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했던 거야.
순간 울컥했다. 이게 뭐라고, 이 사소한 게 뭐라고 그동안 꾹꾹 누르며 스스로를 괴롭히며 지냈을까 싶었다. 결국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은 이런 사소한 발 담그는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하며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여유의 물결들을 한껏 안아주었다. 조금만 더디게 나와 함께 해달라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은 차갑게 귀를 정화시켜주는 파도 소리와, 사정없이 밀고 들어오는 파도의 용감함만을 기억하고 싶었다. 오늘 저녁이면 떠나야 한다는 현실은 잊어버렸다. 쉬이 빠져나가는 모래 알갱이들이 아쉬웠지만 충분했다. 내가 왜 그리 숨이 막혔었는지 알았으니 충분했다.
카약이 그렇게 타고 싶었다. 그냥 카약 말고 투명 카약. 바다와 물고기가 다리 아래로 훤히 보이는 투명 카약.
보통은 둘이 타는 카약이 있다. 하지만 세 명이서 간 여행이라 짝이 맞지 않았지만 씩씩한 내가 혼자 타겠다며 홀로 노젓기를 자청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다. 팔이 무지하게 아프다.) 세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를 저어보는데 어라? 쉽지 않았다. 영화나 만화에서 보면 힘만 있으면 쉽게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니었다.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노를 젓는 방향도 중요했고 각도도 중요했다.
처음에는 힘으로 하려다가 여러 번 배가 뒤집힐 뻔했다. 구명조끼를 입었지만 등 뒤로는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그래 나 혼자 탔으니 나 혼자 빠지겠구나'라는 참 어른스러운 척하는 멋진(?) 생각. 염려했던 것보단 빠르게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등 뒤로 흘러내렸던 땀들은 바람에 날아가버렸는지 사라지고 서늘했다.
15분 정도 노를 저으며 혼자 둥둥 떠나녔을까? 팔이 아파 잠시 쉬고 있었다. 넋을 턱 하니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건 하늘뿐이라, 하늘을 잔디 삼아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불안하게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내가 갑자기 작게 느껴지면서 서울에서 아등바등 거리며 주변 사람에게 징징거렸던 내가 떠올랐다.
그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았어도 됐는데, 조금은 쉬었다 가도 됐을 텐데 스스로에게 피식 웃음이 났다. 바람이 왼쪽 뺨을 스쳐 지나간다. 이번엔 또 바람과 하나가 된 느낌. 나쁘지 않았다. 동시에 든든했다. 서울에 올라가서도 하늘이 있고, 바람이 있을 테니 언제든 힘들고 여유 없이 팍팍해질 때마다 너희들을 찾으면 되겠구나 싶었다. 어려움과 불안 따위야 피식 한번 웃어주는 여유를 잊지 않으면 되겠구나 싶었다.
곧 올라갈 서울이 두렵지 않던, 알차고 당찼던 제주의 당일치기 여행이 지나간다. 아쉬워도 지나가고 그렇지 않아도 지나간다. 우리의 모든 순간들은 순리대로 지나가기 마련이다. 시간은 멈춰있는 것이 아니니 분명 고난도 지나갈 일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 후에는 과하게 애쓰지 않는 여유를 제주에게서 배웠다. 물론, 한번 배운다고 앞으로 다가올 고난들이 두렵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피식 웃어주며 별거 아니라며 다 지나갈 거라는 여유를 잊지 않고 싶다는 작은 다짐이 내게 위로를 건넨다. 숨통이 트여 온다. 오늘 하루면 풀릴 마법처럼 믿을 수 없는 당일치기 가을의 제주 여행에서 인생의 숨 쉬는 방법을 배웠다. 선생님도 부모도 친구도 아닌, 거대한 자연으로부터-
2016.09.07 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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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올리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자꾸 어기고 있어요. (눈물) 핑계가 맞지만, 지금 제가 독립출판으로 출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네, 갑자기 정했습니다. 저는 즉흥적인 사람이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저의 감성들을 엮어두고 떠나고 싶더라구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이곳저곳 출판사에 투고도 더 해보고 원고의 양도 늘려보았을 텐데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지금의 조건에서 최대한의 노력과 정성을 쏟아부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11월에 호주로 떠날 워킹홀리데이 도전은 정말 기대가 돼요. 다른 게 기대가 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글감'에 대한 설렘을 멈출 수 가없네요. 아마, 그곳에 가면 호주에서 생겨나는 저의 감성을 풍부하게 브런치에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감히 기대해 봅니다.
요즘 저는 긴 글 쓰기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서 회의감도 많이 들어요. 그래도 브런치는 뭔가 제가 처음 글 쓰기를 시작한 곳이라 그런지 놓을 수가 없네요. 벌써 새벽 3시가 다 되어가요. 밖에는 후둑후둑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기온이 더 떨어지겠죠. 또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겠죠. 어머! 하는 찰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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