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다음날. 새벽에 전화가 왔다.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항상 좋지 않다. 특히 새벽에 엄마에게서 오는 전화라면 더욱. 나는 핸드폰 진동에 눈을 뜨며 ‘할머니가 돌아가셨구나’ 하고 느꼈다. 엄마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장례식장으로 오라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말했다. 씻고 옷을 입고 회사에 연락을 했다. 문을 나서려 할 때. 오늘 미세먼지 농도가 높음을 알려주는 요란한 경보 문자가 왔다. 하얀 마스크를 챙겼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사촌들에게 인사하고 엄마를 찾았다. 눈이 퉁퉁 부은 엄마의 얼굴이 안쓰러웠다. 검은 상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 엄마는 평소보다 더 왜소해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두 번 절을 하고 그녀 곁에 앉았다. 꽂아 놓은 향초들이 너무 빨리 타서 자주 갈았다. 싸구려 향초인지 식장 천장에 검은 연기가 가득했다. 그날 하늘에 잔뜩 낀 농도 높은 미세먼지 같았다. 상주들과 조문객들은 서로에게 인사하기 바빴다. 그들을 보며 나는 궁금해졌다. 누가 가장 할머니를 사랑했을까?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의 영정사진 앞에서 고민했지만, 답을 알 수 없었다.
발인을 마치고 다음날 출근을 위해 나는 먼저 본가로 갔다. 검은 양복을 벗고 검은 넥타이도 풀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식탁 위에 할머니 옷들이 곱게 놓여있었다. 태워질 옷들. 나는 태워질 옷의 냄새를 맡다가, 뻔하게 얼굴을 파묻었다. 실감이 났다. 까만 그을음이 온 얼굴에 묻었다. 코에선 재도 조금 나왔다.
지하철을 탔다. 한강을 지날 때 지하철 창문에 내 모습이 잘 비쳤다. 창에 비친 내가 꽤 괜찮아 보여서, 나는 나와 눈싸움을 했다. 졌다. 4번 출구로 나왔다. 늦은 오후였지만 미세먼지 때문인지 주위가 어둡고 흐릿했다. 마스크를 꼈다. 손에서 아직 빠지지 않은 향 냄새가 났다. 갑자기 산책이 하고 싶어 졌다. 이틀 밤을 새워서 피곤했지만 근처 산책로로 발길을 옮겼다.
산책을 하며 나는 혼자 할머니를 추모했다. 태어날 때부터 나와 함께 해준 천사 같은 그녀. 할머니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땅한 재주도, 가진 돈도 없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생각 끝에 하얀 마스크를 벗었다. 최대한 깊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알았다. 할머니의 영정사진 앞. 고민했지만 알 수 없던 질문의 답. 이보다 더 확실히 그리워하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으므로, 그 순간은 내가 할머니를 가장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