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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호 May 04. 2018

GLAY - Winter, again [MV]

어느 겨울의 애잔한 독백

GLAY - Winter, again (MV)


(0:00 ~ 0:31)


맑은 기타 소리 위로 팬 플루트 혹은 틴 휘슬을 연상케 하는 아련한 소리가 자욱하게 퍼져 나간다. 이윽고 눈보라처럼 세차게 휘날리는 디스토션 기타음과 함께 곡의 감정선은 격렬해지지만, 보컬은 그 소리에 동요하지 않는다. 그저 눈을 감고 콧노래를 읊조리며 무언가를 생각할 뿐이다.


산과 들을 하얗게 뒤덮는 눈, 마을과 거리를 모두 휘감은 한기 속에서 사람들은 말이 없다.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귀갓길을 서두르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눈은 끊임없이 흩날린다. 그리고 노래하는 이는 그 서사적인 모습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한다.


(1절 - 0:32 ~ 1:14)

無口な群衆、息は白く、歴史の深い手に引かれて
말이 없는 사람들, 입김은 하얗고, (나는) 역사의 깊은 손길에 이끌려

幼い日の帰り道、凛と鳴る雪路を急ぐ
어릴 적 (오가던) 귀갓길, (그) 쌀쌀한 눈길을 서둘러 걷지

街灯の下ひらひらと、凍える頬に舞い散る雪
가로등 아래로 나풀거리며, 언볼에 흩날리는 눈

目を閉じれば昔のまま、厳しくも日々強く生きてる者よ
눈을 감으면 그 옛날처럼, 매서운 추위에도 매일 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여


하늘 가득 눈이 내리는 마을의 정경을 묘사한 가사는 단어의 선택부터 상황에 대한 표현까지, 빼어난 섬세함으로 남다른 울림을 전한다. 글레이(GLAY) 멤버 전원이 일본 최북단이자 눈의 고장으로 유명한 홋카이도 태생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Winter, again'이란 곡은 이들이 기억의 책장 안에 차곡차곡 쌓아온 겨울의 이미지를 진솔하게 풀어낸 결과물이라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만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 법한 겨울의 심상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곡의 전개 역시도 일품이다. 격정적인 도입부가 휩쓸고 지난 자리에는 오히려 차분하고도 절제된 악기 연주만이 남아 자리를 지킨다. 스네어 드럼의 가장자리를 두들기는 소리가 중심을 잡고, 그 위로 절제된 연주를 선보이는 베이스와 블루지한 기타만이 적막한 겨울을 노래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려 나간다.


얼마쯤 지났을까? 뮤직비디오 화면을 홀로 차지한 채로 차분히 노래를 이어가던 보컬 테루(TERU)가 잠시 눈을 감고 상념에 빠지더니, 누군가를 떠올리는 가사와 함께 목소리에 힘을 더한다. 감정선이 고조되며 연주는 후렴구를 향해 치닫고, 배킹 연주에 집중하던 기타리스트 히사시(HISASHI)의 기타 톤에 거친 디스토션이 더해지기 시작한다.


(후렴1 - 1:15 ~ 1:57)

いつか二人で行きたいね 雪が積もる頃に
언젠가 둘이서 (함께) 가고 싶어 눈이 쌓일 즈음에

生まれた街のあの白さを、あなたにも見せたい
내가 태어난 곳의 새하얀 풍경을, 당신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逢いたいから、恋しくて、あなたを想うほど
보고 싶으니까, 그리운 마음에, 그대를 생각할수록

寒い夜は、未だ胸の奥、鐘の音が聞こえる
추운 밤에는, 여전히 가슴속에, 종소리가 들려와


풍경을 떠올리던 노랫말은 어느덧 사랑하는 이에게로 시선을 옮겨간다. 소중한 풍경을 소중한 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정서이기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운 마음에 그대를 생각할수록 추운 밤에는, 여전히 가슴속에 종소리가 들려와


청자의 마음까지 아리게 만드는 후렴 마지막 문장의 뒤를 이어 리드기타는 종소리를 연상케 하는 아련한 멜로디를 연주한다.


(2절 - 1:58 ~ 2:36)

のしかかる雲を見上げて、時の速さの流れに問う
뒤덮인 구름을 올려다보며, 빠르게 흐르는 시간에게 묻고 있어

誰もが抱く悲しみの、終着駅は何処にあるのか
누구나 안고 있는 슬픔의 종착역은 어디에 있는 걸까?

陽だまり、暮れる坂道で、若さの幻と出逢い
해가 저무는 비탈길에서 어릴 적의 환영을 만났지

元気ですの一言に懐かしさよりも、戸惑い立ち止まる
잘 지낸다는 한마디에 그리움보다도 망설임에 멈춰 서게 됐어


(후렴2 - 2:38 ~ 3:11)

過ぎ去りし世に揺れる華、遠くを見つめてた
지난 과거에 흔들리던 행복을 멀리서 주시했어

冷たい風にさらされた 愛はあの日から動けないと、
차가운 바람을 맞은 그 날 이후로 사랑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고

逢いたいから、逢えない夜には、あなたを想うほど
만나고 싶기에, 만날 수 없는 밤에는, 그대를 생각할수록

想い出には、二人が歩いた足跡を残して…
추억 속에는 둘이 걸었던 발자국만이 남을 뿐...


2절은 1절과 유사한 멜로디 및 가사 구조를 담고 있으나 몇 가지 차이를 보인다. 먼저 1절에서 스네어의 가장자리를 두들기던 드럼은, 2절부터 동일한 리듬으로 스네어 중앙을 타격하기 시작한다. 이는 1절 도입부에 비해 고조된 감정을 나타내는 주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베이스 라인 역시도 같은 코드 전개 속에서 호흡을 빠르게 가져가기 시작한다. 동일한 코드라도 주어진 박자 내에서 여러 번 연주하므로 리듬감이 형성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곡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뮤직비디오 역시도 곡의 흐름에 맞춰 조금씩 변주하기 시작한다. 1절에서 보컬의 표정만을 쫓던 앵글은 2절부터 주변 풍경과 멤버들의 연주 장면을 담아낸다. 요동치는 곡의 흐름에 따라 카메라 역시도 역동적인 움직임을 더해간다.


(브릿지 - 3:12 ~ 3:48)

降り続く白い雪は、心模様、そっと
계속해서 내리는 눈은, 마음속에 그대로 사뿐히

滔々と白い雪は、無常なる人の世を
거침없이 내리는 하얀 눈은, 무상해지는 세상을

すべて 許すように降り続いて行く
전부 용서하듯 계속해서 내리고 있어


변주와 함께 감정은 한층 더 격해진다. 다가올 처절한 기타 솔로 앞에서 모두가 애써 숨죽인 가운데 울려 퍼지는 리드 기타의 선율은 흐느낌에 가깝다. "무상해지는 세상을 전부 용서하듯 눈이 내리고 있다"는 무거운 표현을 내뱉는 보컬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통스러워 보인다.


글레이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펑키한 곡에서 기타 솔로 파트는 대부분 기타리스트인 히사시가 맡는다. 그는 이펙터의 자유분방한 사용, 섬세한 솔로 연주에 강점이 있는 기타리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곡의 기타 솔로는 리더 타쿠로(TAKURO)가 맡았다. 보통 맑은 톤의 든든한 배킹 연주를 통해 중심을 잡아주던 그의 기타는, 전면으로 나선 이곡에서도 차분하게 복잡한 마음을 연주해낸다.


(후렴3 - 3:49 ~ )

いつか二人で行きたいね 雪が積もる頃に
언젠가 둘이서 (함께) 가고 싶어 눈이 쌓일 즈음에

生まれた街のあの白さを、あなたにも見せたい
내가 태어난 곳의 새하얀 풍경을, 당신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逢いたいから、恋しくて、あなたを想うほど
보고 싶으니까, 그리운 마음에, 그대를 생각할수록

寒い夜は、未だ胸の奥、鐘の音が聞こえる
추운 밤에는, 여전히 가슴속에, 종소리가 들려와

逢いたいから、逢えない夜には、あなたを想うほど
만나고 싶기에, 만날 수 없는 밤에는, 그대를 생각할수록

想い出には、二人が歩いた足跡を残して…
추억 속에는 둘이 걸었던 발자국만이 남을 뿐...


언젠가 당신과 함께 눈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다시 읊조리는 마음은 애틋하면서도 잔잔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다시 커지는 순간부터, 곡은 종결부이자 절정을 향해 달려 나간다.


점층적인 구성은 곡 후반부를 자연스럽게 매듭짓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요소를 폭발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카메라는 조금 더 거리를 넓혀 멤버 전체와 눈 덮인 설원을 비추기 시작하고, 타쿠로의 기타는 절제를 버린 채 브릿지의 강렬한 기타 솔로 코드를 계속해서 연주한다. 진한 마음이 담긴 1, 2절 후렴이 하나로 모여 반복되고, 보컬 테루는 소절의 마무리를 이전과 달리 샤우팅으로 내뱉는다.


추억 속 둘이 걸었던 발자국만이 남을 뿐이라는 조금은 씁쓸한 되뇜과 함께 마무리 연주가 이어진다. 이윽고 모든 소리가 멎은 순간에 카메라는 조금 더 시선을 올려 머나먼 설원을 비춘다.


「Winter,again」 函館野外ライブ DAY 2


<Winter, again>은 글레이의 싱글 중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의 벚꽃 엔딩처럼, 이 곡은 일본의 겨울을 상징하는 명곡이기도 하다.


비단 눈 내리는 설원의 정경을 담은 가사만이 이 곡을 겨울을 대표하는 노래로 격상시킨 것은 아니다. 앞서 장황하게 설명한 것처럼 기승전으로 이어지는 점층적인 악곡 구성, 감정의 오르내림에 따른 기타, 베이스, 드럼의 다채로운 연주, 남달리 감각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은유를 사용한 가사가 하나로 어우러져 짜임새 있는 명곡을 만들어 냈다.


기타리스트 김태원은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의 추모 공연으로 꾸며진 MBC 수요예술무대 방영분에서 Parisienne Walkways를 연주하며 "나는 비록 파리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이 곡을 연주할 때면 파리에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되뇌어본다.


비록 홋카이도에 가본 적이 없는 이라도,
이 곡을 들을 때면 홋카이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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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사는 개인 소장 중인 <Drive ~Glay Complete Best~> 앨범의 가사집을 참고하였으며, 해석은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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