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20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회사에서회식을 했는데 옆자리에 K부장님이 계셨다. 업무얘기, 사는 얘기, 어렸을 꿈얘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겨서 질문을 했다.
"그럼 부장님은 지금 소원이 뭐예요?"
행복한 가정도 이루었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유능한 직원이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없었던 그가 무슨 대답을 할지 사뭇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다소 충격적이였다.
"신지하고 소주나 한 잔 해보고 죽는 게 소원이다"
당시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고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조소 섞인 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고 나는 그때의 부장님처럼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있고 회사에서는 부장이 되었다.
코요태는 나처럼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25년 동안 그룹을 유지하며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 내가 자주 얘기하는 말이지만 무슨 일, 어떤 일이 되었건 오래 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대단한 것이다.
뻥튀기를 튀겨도, 떡볶이집을 해도, 회사를 운영해도, 공부를 해도, 전업주부를 해도 아무리 하찮은 일 같이 보이는 일이라도 오래 한다는 것은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평생직업이 없는 시대이므로 오래 일한 다는 것은 더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더군다나 연예인은 엄청난 자기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나도 젊을 때 코요태 노래를 무척이나 즐겨 들었다. 그때 코요태는 풋풋하고 예뻤고 순수했던 10대 2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지금은 그때의 코요태와는 다르다. 무대에서 춤을 추기에는 나이도 젊지 않고(상대적으로) 풋풋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요태는 아련하고 짜릿한 감정으로 내 마음속에 존재한다.
아마도 내 청춘의 일부에 코요태가 스며들어 있었나 보다.그때의 코요태는 아니지만 지금도 코요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으로 힐링을 하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코요태의 노래를 들으며 힐링하며 사는 사람도 있는 것.
*코요태 "비상" 2003년 발매, 교차 편집 버전. 편집이 기가 막히다.
코요태 노래들의 특징 중 하나가 멜로는 굉장히 신나고 흥겨운데 가사는 슬프다. 이별하고, 실연하고, 헤어지고 마음 아파하는 노래. 신지 목소리는 밝으면서 애절한 묘한 매력이 있다.
김종민에게도 많은 것을 배운다. 25년간 연예계에서 살아남아 지금도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그. 스캔들이나 말썽 한 번 안 부리고 롱런한다는 것이 얼마나 자기 관리가 철처하다는 것인가? 그 시간들을 버티고 지금도 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수십 년 동안 반도체 세계 1위를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뼈와 피를 갈아 넣었겠는가? 구멍가게를 하던, 세계 1위 반도체기업으로 남든 개인이 해야 하는 노력은 비슷하다. 어차피 둘 다 죽도록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다.
택배를 배달하는 사람도 환경미화원도 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그 땀을 인정해야 한다. 입만 벙끗하며 볼펜만 돌리고 있으면 안 된다. 땀 없이 일하니 좋은 머리로 사기를 치는 것이다. 나에게 의미를 부여해 주는 사람이 내게는 모두 스승이다. 그 스승이 요즘은 코요태다.
신지는 남성들을 반하게 하는 아련한 매력이 있다. 내가 젊을 때도 신지에게 매력을 느꼈는데 20년이 지나도 그 매력이 아직도 느껴진다. 그렇다면 신지는 모든 연령대의 남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외모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풍기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그때의 K부장님도 신지와 소주 한잔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나 보다.
*코요태의 "비몽" 히든싱어 왕중왕전 버전
히든 싱어를 기획한 사람은 천재가 틀림없다. 완벽한 프로그램이다. 사람의 감정을 최고의 극으로 치닫게 하는 요소들을 다 집어넣었다. 이런 사람이 PD를 해야 한다. 왕중왕전에 나온 가수를 보며 응원하는 신지의 모습이 무척 선해 보인다. 잡물(雜物)이 섞이지 않았다.
K부장을 보며 호가사 들은 나잇값 못하고 그게 무슨 천박한 얘기냐? 라고 말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순수한 감정으로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지 천박하고 남사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기계나 로봇처럼 살다가 세상 하직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면 안 된다는 말을 학교에서 배웠다. 그러고 보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꽤 쓸모 있는 것들도 많다. 사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 교육도 무시하면 안 된다. 우리는 제도권 안에서 생존해야 하기에 제도권을 무시할 수 없다.예외는 있을 수 있으나 예외를 일반화하는오류를 범해도 안 된다. 억지로 예외를 만들고 소수자로 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가수는 노래만 잘하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김연아나 손흥민이나 한강 작가처럼 세계에서 이름을 날릴 정도라면 노래 하나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겠지만 실상 우리나라에서 가수는 엔터테이너 요소 강하기에 프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
재능+노력+끼
마지막으로 끼가 있어야 한다. 매력, 개성, 풍기는 이미지. 캐릭터. 그것이 있어야 롱런할 수 있지 않은가 싶다. 제대로 이해야 한다. 재능, 노력이 있고 나서 끼가 있어야지. 끼만 부리면 안된다. 신지는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이 확실히 있다. K부장님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환갑은 족히 넘으셨을 텐데 혹시 지금도 유튜브로 신지 영상을 보면서 위로받으며 살고 계신 건 아닌지 모르겠다.
*코요테 "파란" 2001년 발매 오리지널 버전
개인적으로는 혼성 3인조의 하모니가 가장 완벽하게 이루어진 노래가 아닌가 싶다. 랩도 좋고 종민이 노래도 좋고 신지 노래는 두 말하면 잔소리. 기쁘면서 슬프기도 한 복잡 미묘한, 신이 내린 목소리.
얼마 전 병석에 누워계신 이모님 병문안을 갔다. 여든이 넘으신 이모님은 임영웅이 광고하는 피자라며 아이들에게 피자를 시켜주셨다. 우리는 무조건 피자를 먹어야 했다. 병석에 누워서 전화기만 누를 줄 아는 이모님께 임영웅은 유일한 낙이고 희망이었다.
앞으로 터보에 이어 신지와 코요테는 내게 그런 존재가 될 런지도 모르겠다. 도박이나 음주운전 같은 거 하지 말고 말썽 안 피우고 나쁜 구설수에만 오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 건 안된다. 터보의 김종국도 그렇고 코요태의 신지도 그렇고 빨리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
이 정도면 신지와 김종국은 우리 아들딸 정도의 레벨로 찐으로 애틋한 감정이 있다는 얘기다. 충분히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충분히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 들여서 바람이 더 하다.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정상을 찍은 것 이상으로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이 결혼과 출산이라고 생각한다. 김종민도 마찬가지다. 남에게 말 못 할 속사정이 없다면 말이다.
K 부장님은 죽기 전에 신지와 소주 한잔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는데 나는 좀 다르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신지와 연애를 해보고 싶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는 연애를 해보고 싶다. 이왕 꿈꾸는 거 야무지게 꿔야지 쫌스럽게 소주 한잔이 뭐냐.
아.. 마누라가 이 글 보기 전에 삭제해야겠다.
요 며칠 나는 코요태와 신지에게 빠져있다. 당분간 이 기분을 깨고 싶지 않다. 돌아갈 수 없는 아쉬운 청춘을 잠시라도 소환하고 싶은 회환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우리 아들 딸들은 아빠처럼 청춘을 무기력하게 보내지 않았으면 한다. 꽃은 잠깐 동안 피어서 더 아름답고 소중하고 값지다.
짧은 청춘을 개념 없이 먹고 놀면 안된다. 개념 있게 먹고 놀아야 한다. 그게 똑똑한 삶이다. 책임을 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고, 짊어지고 가야 할 일이 있으면 지고 가며 희생이 필요할 때는 희생도 할 줄 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