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진실과 법관의 양심-44) 박원순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1. 작품 소개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는 박원순 변호사가 1998년에 출간한 역사적 재판 소설입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잔 다르크, 토마스 모어, 마녀, 갈릴레오 갈릴레이, 드레퓌스, 필리페 페탱, 로젠버그 부부, D.H. 로렌스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재판 10가지를 다루며, 권력에 맞서 싸운 인물들의 숭고한 신념과 고난, 그리고 역사의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역전의 드라마를 통해 독자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선사합니다.
2. 주요 재판 사건 및 박원순의 조명 방식
1. 악은 죽음보다 발걸음이 빠르다 - 소크라테스의 재판
배경: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며 철학적 질문을 통해 시민들의 사고를 자극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가치관에 도전하는 그의 행동은 일부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재판 과정: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변호했지만, 결국 사형을 선고받고 독배를 마셨습니다.
박원순의 조명 방식: 박원순 변호사는 소크라테스를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목숨 바친 숭고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또한, 그의 죽음을 통해 권력에 대한 비판과 인간 존엄성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2.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 예수의 재판
배경: 예수는 로마 제국의 억압 속에서 신의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로마 당국으로서는 위협으로 여겨졌습니다.
재판 과정: 예수는 반역죄로 기소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었습니다.
박원순의 조명 방식: 박원순 변호사는 예수를 권력에 맞서 싸우고 인간 사랑을 실천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또한, 그의 희생을 통해 인간 존엄성과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3. 무덤도, 초상화도 없는 프랑스의 성녀 - 잔 다르크의 재판
배경: 잔 다르크는 백년 전쟁 당시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영국군을 물리친 프랑스의 영웅입니다. 그러나 잉글랜드와 교황청은 그녀를 마녀로 몰아 재판에 넘겼습니다.
재판 과정: 잔 다르크는 남자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이단죄로 기소되었습니다. 고문을 통해 자백을 강요당했으며, 결국 화형당했습니다.
박원순의 조명 방식: 박원순 변호사는 잔 다르크를 조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 바친 애국자로 묘사합니다. 또한, 그녀의 죽음을 통해 편견과 차별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4.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 - 토머스 모어 재판
배경: 토머스 모어는 잉글랜드의 뛰어난 법학자, 작가, 정치인으로 헨리 8세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는 탁월한 학식과 능숙한 언변으로 런던 시장, 영국 대법관 등을 역임하며 헨리 8세의 정치적, 종교적 개혁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헨리 8세의 독선적인 행보와 절대적인 권력에 끊임없이 저항했습니다. 특히 헨리 8세가 아내 캐서린과 이혼하고 안네 볼린과 결혼하려 하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이를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재판 과정: 1534년: 헨리 8세는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고 자신을 수장으로 삼았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의 영국 국교회 수장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헨리 8세가 교황의 권위를 거부하고 스스로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 된 것을 반대했습니다. 1535년: 헨리 8세는 왕위계승법을 통과시켜 자신의 아들 에드워드 6세의 왕위를 확보했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왕위계승법에 서명을 거부하며 헨리 8세의 절대적인 권력에 맞섰습니다. 1535년 4월: 토머스 모어는 반역죄 혐의로 체포되어 런던탑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는 재판에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헨리 8세의 행위를 비판했습니다. 1535년 7월: 토머스 모어는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1535년 7월 6일 런던탑에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박원순의 조명 방식: 박원순 변호사는 토머스 모어를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용기를 가진 인물로 묘사합니다. 그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토머스 모어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양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또한, 그는 토머스 모어의 죽음을 통해 권력에 대한 비판과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5. 마녀의 엉덩이에는 점이 있다 - 마녀재판 : 화형당한 100만 중세 여성의 운명
배경: 중세 시대 유럽에는 마녀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했습니다. 마녀는 악마와 협력하여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마녀사냥은 끊임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재판 과정: 마녀로 의심되는 여성은 고문을 통해 자백을 강요당했습니다. 고문에는 물고문, 엄지 짓누르기, 뜨거운 쇠꼬챙이로 찌르기 등 잔혹한 방법들이 사용되었습니다. 마녀로 판단된 여성은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화형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습니다. 마녀재판은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약 300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약 100만 명의 여성이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습니다.
박원순의 조명 방식: 박원순 변호사는 마녀재판을 여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의 역사로 규명합니다. 그는 당시 사회의 여성혐오 문화와 편견이 마녀재판의 원인이라고 분석합니다. 또한, 그는 마녀재판을 통해 여성의 인권과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6. 그래도 지구는 돈다-갈릴레오 갈릴레이 재
배경: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물리학자, 수학자입니다. 그는 지동설을 주장하여 교황청의 탄압을 받았습니다.
재판 과정: 1633년,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주장한 죄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그는 재판에서 지동설을 철회하는 내용의 자백서에 서명했습니다.
박원순의 조명 방식: 박원순 변호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과학적 진리에 대한 헌신과 용기를 보여준 인물로 묘사합니다. 그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을 과학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규명합니다.
7. 나는 고발한다-드레퓌스 재판
배경: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프랑스 육군의 유대인 장교입니다. 그는 1894년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마의 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재심이 열렸고, 1906년 드레퓌스는 드디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재판 과정: 드레퓌스는 반유대주의 분위기 속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반유대주의가 만연했으며, 드레퓌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쉽게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드레퓌스에게 유리한 증거는 무시되었고, 불리한 증거는 조작되었습니다. 재판은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았으며, 드레퓌스는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작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드레퓌스 사건의 부정을 폭로했습니다. 결국 재심이 열렸고, 드레퓌스는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육군에서 복직하지 못했고, 1919년 사망했습니다.
박원순의 조명 방식: 박원순 변호사는 드레퓌스 재판을 반유대주의와 편견에 대한 경고로 규명합니다. 그는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편견이 만들어낼 수 있는 끔찍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또한, 그는 드레퓌스를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운 인물로 묘사합니다.
8. 나는 프랑스를 믿는다 - 비시정권의 수반, 필리페 페탱의 재판
배경: 필리페 페탱은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영웅으로 추앙받았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 비시 정권의 수반을 역임했습니다.
재판 과정: 페탱은 나치와 협력하여 프랑스 국민들을 탄압하고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 가담했습니다. 그는 프랑스의 영웅에서 반역자로 변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페탱은 반역죄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프랑스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페탱은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1951년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박원순의 조명 방식: 박원순 변호사는 페탱을 프랑스를 배신한 인물로 규명합니다. 그는 페탱의 행동이 프랑스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고 비판합니다. 또한, 그는 페탱 재판을 통해 국가 지도자의 책임과 도덕성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9. 인간에 대한 인간의 잔인한 전쟁 - 로젠버그 부부의 재판
배경: 줄리어스와 에델 로젠버그 부부는 미국에서 소련에 원자 폭탄 기밀을 넘겼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들은 1953년 6월 19일 전기 의자로 처형되었습니다.
재판 과정: 로젠버그 부부는 냉전 시대의 희생양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소련에 대한 공포심에 휩싸였고, 로젠버그 부부는 스파이로 간주되어 쉽게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재판 과정은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로젠버그 부부는 변호사를 제대로 선임할 수 없었고, 증거는 조작되었습니다. 로젠버그 부부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습니다.
박원순의 조명 방식: 박원순 변호사는 로젠버그 부부의 재판을 냉전 시대의 정치적 탄압과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규명합니다. 그는 로젠버그 부부의 죽음을 통해 정의의 중요성과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10. 외설인가 명작인가 - D.H. 로렌스와 '채털리 부인의 사랑' 재판
배경: D.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1928년 출판 당시부터 곧바로 외설물로 낙인찍혀 금서 목록에 올랐습니다. 이 소설은 귀족 여성과 노동자 계층 남성의 불륜 관계를 솔직하게 묘사하며, 당시 사회의 성적 관습과 계급 제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었습니다.
재판 과정: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출판된 지 30년 후인 1960년 영국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검찰은 이 소설이 선정적이고 음란하며 부도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변호인들은 이 소설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묘사한 예술 작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재판은 6주간 진행되었으며,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외설물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박원순의 조명 방식: 박원순 변호사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 재판을 표현의 자유와 문학의 가치에 대한 중요한 사건으로 규명합니다. 그는 이 재판을 통해 문학 작품의 정치적 검열과 사회적 편견에 대한 비판을 펼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