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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주 Jul 09. 2021

운명

겪고 있는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마다 그동안 내가 그려온 삶의 궤적을 천천히 따라가 본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는 대체로 성실하게 살았던 편이었으나, 목표했던 대학이라는 공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보다는 나의 본성으로 찾아 돌아가는 과정을 겪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런지도 모르겠다. 성년이 되기 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너무 달랐기에. 

그 변화의 과정 속에 부모와의 갈등,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연민이라는 모순된 감정, 관계를 둘러싼 수많은 다툼과 화해 같은 몇 가지 극적인 요소들이 있었다. 하현주라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실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견해하기도 하면서 지난 몇 년간을 일정하고도 비슷한 감정 상태 속에서 부유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만족이라기보다는 불만족에 가까운, 안정감이라기보다는 위태로움 속에서, 나는 대체로 늘 우울했고, 아주 가끔, 미치도록 행복했다. 


사람과의 관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무엇 하나 안정되지 않은 때가 되면 꼭 한번씩 어리석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곤 했다. 내가 했던 과거의 행동 중 어떤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지금의 내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부칠 때마다 생각해보는 습관 같은 건데, 늘 하나의 가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첫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견뎌냈다면 많은 것은 달라졌을 것이다. 내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고 뻗어 나가고 있었을지도. 어쩌면 서울에 작은 집을 하나 마련했을지도 모르고, 나도 내 친구들처럼 결혼이란 것을 하고 애도 하나, 혹은 둘 쯤 낳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2014년 초여름에 낸 사직서는 너무나 하찮은 먼지 같은 사건이지만 역시, 아쉬운 생각이 드는 건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나 보다.


하현주라는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사직서 공이 두 개의 나란히 달리던 직선 중 하나를 건드렸다. 자기 자리에서 아주 살짝 벗어났을 뿐인 그 직선은 나란하던 다른 직선과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영원히’. 

이 ‘영원히’라는 단어가 주는 공허함과 잔인함에 숨이 막혀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던가. ‘영원히 이렇게 소모되다가 죽을 것이다’라는, ‘영원히 일요일 개콘의 클로징 송을 두려워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나이브했다. 첫 직장에 여전히 몸담고 있는 내 동기들은 어느새 대리, 과장이 되면서 여유와 편안을 얻었고, 개콘도 1050회 방송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영원할 것 같았던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지금의 나를 그 당시의 나와 영원만큼이나 벌려놓았다. 


이렇게 제멋대로인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꼭 무한한 진공 속에, 농담처럼 평행 우주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할 것만 같았다. 2014년 초여름, 사직서를 내지 않은 하현주의 모습이 어디엔가는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사직서를 내지 않고 지독하게 진득하게. 결국 평균치의 시민 1인분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지금보다 조금 덜 흥미로운 사람으로, 그렇지만 지금보다는 조금 더 안정된 모습으로 말이다. 

그런데 생각이 그즈음으로 향하는 순간, 재밌는 확신이 들고 말았다. 그 평행우주 속 하현주는 사직서를 쓰지 않은 2014년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시민 1인분의 평균치 하현주는 과거로 돌아가 사직서를 내고 회사 문을 박차고 나오는 상상을 하고 있을 거라는 걸, 직감으로 느낀다. 결국 우리 둘은 서로를 열망하며 현실에서 대체로 우울하고 가끔 미치도록 행복하다는 점에서 결국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사직서를 쓴 이후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7년은, 그 이전, 스물몇 해의 모든 순간의 도합보다 더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노란 불빛이 따스한 선술집에서 친밀한 사람 몇몇과 술을 즐길 줄 알게 된 것, 결혼 적령기가 훌쩍 지난 여성이 받게 되는 사회적인 시선과 태도를 경험하게 된 것, ‘절대’라는 말은 절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엄격하고도 집착이 심한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마침내 나도 독립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 생각보다 독립은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반짝이는 별들을 알게 되고, 그 반짝이는 작은 별들의 인연이 된 것. 하여 사직서를 내기 전의 나와 그 후의 나는 두 번 다시, 그리고 영원히 같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난,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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