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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주 Jul 14. 2021

방학즈음하여

교사의 여름방학 시즌1

학기 말이 다가오면 들뜬 기분이 되는 건 학생이든 교사든 마찬가지 아닐까. 학교의 일이라는 것이 7할 정도는 감정 노동이라고는 하나, 방학이 주는 달콤함은 언제나 그 시간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체력이 소진될 데로 소진되어 더 이상 교사로서의 소명이건 뭐건 간에 죄다 내려놓고 싶어질 때가 되면 비로소 재충전의 시간이 허락되었다.


막상 방학이 되었을 때 보다 그 직전, 그러니까 이번에는 뭘 하지, 하며 계획을 짤 때가 늘 더 설렜다. 여행과 비슷한 이치였다.  막상 여행을 가면 이국 땅의 터무니없는 낯섦과 불안감에 기대했던 것보다 항상 살짝 아쉬운 것처럼.  

일 년 중 지금 이 시기, 7월 중순이 바로 그런 시기다. 아이들의 학기 말 고사가 시작되고 방학을 하기 2주 전 즈음부터는 마음에 여유라는 것이 생긴다. 물론 고등학교 교사인 나에겐,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일명 '세특')을 써야 하는 일로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산더미 같지만 쉴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 덕에 견뎌낼 수 있다. 


이맘 때면 나는 특히 더 깊은 공상에 잠기곤 했다. 평일 낮에 가질 수 있는 여유에 대해서 말이다. 

아침부터 사람이 아직 오지 않은 미술 전시회에 가 선선한 에어컨 바람 밑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정성을 들여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을 응시하는 일,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을 내 옆에 쌓아두고 집 안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읽는 일, 구상만 해 놓은 단편 소설의 초고를 마침내 마무리하는 일, 내일 출근 같은 건 걱정하지 않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최악의 책이니 가장 야한 영화니 하는 것에 대해 밤새 난상 토론을 벌이는 일, 오직 풍수지리를 위해 집 안의 가구를 다시 배치하는 일, 미뤄뒀던 운동으로 쭉쭉빵빵 몸짱이 되는 일, 그리고 그리고..

하지만 방학은 늘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그 긴 시간 동안 계획했던 것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초조해지기만 했고, 막상 빠르게 공중으로 흩어져 버리는 시간들을  속절없이 바라보며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한 달이면 감사할 것 같던 쉼의 시간이 잔혹할 만큼 빠르게 지나가고 나면, 어느새 여름의 더위도 한 풀 꺾이고 문구점에는 새 학기 준비를 위한 색색의 예쁜 공책이나 스케줄 수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난 '아 끝나 버렸구나' 어김없이 실망스러운 마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출근 D-1 전, 침대 위. 깊은 슬픔에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흘러내린다. 베갯잇이 촉촉해진다. 

그. 러. 나. 나라는 인간이란 정말이지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에서도 끝내 피어버린 작은 제비꽃 같다. 

'다음 추석 연휴가 있잖아! 그때는 상여금도 나오는 걸'이라고 정신 승리를 해버린다. 

‌‌아아 참을 수 없는 나의 존재의 참으로 가벼움이여! 

‌그때가 되면 어김없이 새 학기는 시작하겠지만, 나는 오늘도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무한한 방학의 가능성에 나를 온전히 적시면서. 그러니 무더위도 내게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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