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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연 Feb 19. 2022

퇴사, 혹은 퇴교(1)

책방 창업, 할 수 있을까

브런치에서 나를 소개하는  키워드 중 결국 교사 항목을 없앴다. 차차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번 달이 근무의 마지막이라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서른 중반의 철딱서니라고 속으로는 혀를 찰 수도, 혹은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응원과 격려부터 해줄 사람들이다. 고마운 일이다. 부모님께는 1년 간 쉬며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다시는 교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방송 기획 분야에서 2년 정도 되는 일을 하다 그만둔 건 20대 후반의 일이었다. 그땐 모든 것에 자신 있었다. 이곳만 아니라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회사를 나가겠다고 하는 내게 팀장님은 "네가 한번 바깥이 무서운지 쌩고생을 해봐야지 여기가 고마운지 알지."라고 신탁에 준하는 예언을 했으나 그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자기 확신이 아주 강했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 그녀의 말이 머릿속에 자꾸 맴도는 건, 바깥이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나 혹독한지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도피하듯 다닌 대학원을 어찌 저찌하여 끝내고 서울 소재 한 사립학교에 영어교사로 들어갔다. 2년을 다니다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겨 또 2년이 흘렀다. 나는 이 새로운 학교에 또 사직의 의사를 표시했다. 이쯤 되니 문제는 나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끈기가 없거나 멘털이 약하거나. 어느 쪽이 됐든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만두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퇴사(혹은 퇴교)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너무 많았다. 마찬가지로 남아야 할 이유는 더 많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여겨본 적은 없었다. 가진 재능이 애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 썼다고 생각한 글은 일주일만 지나 다시 읽으면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유치해 보였다. 2015년에 내본 독립출판물 '너의 우산이자 비'는 다시는 차마 입고할 수가 없어 집 베란다 창고에 80권이 여전히 남아있다. 글을 쓰는 행위를 너무 사랑했지만 잘 쓰는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문장력도, 기획력도, 꾸준함도, 모두 애매한 내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까. 무기력감 때문에 괴로웠던 순간, 나의 이런 유전자를 카피해다 놓은 것 같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해?"

아빠는 나와 매우 비슷한 사람이었다. 처음에 의욕적으로 시작한 일도 몇 년이 지나면 부침을 심하게 느꼈다. 내가 첫 회사를 그만두던 날 함께 저녁을 먹으며 그가 스치듯 말했던 말 한마디가 강렬하게 남은 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나의 미래를 예감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이 있었는데 너무 내 이야기 같았다. 허황된 꿈을 좇다 어느 날 세수하고 거울을 본 내 모습이 늙어 있더라고."

나도 언젠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늙어버린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날이 올까. 그 말이 자꾸만 맴돌아 아빠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나 같은 끈기도 없고 멘털도 약한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었던 것이다. 아빠는 말했다. 

"너무 큰 걸 이루려고 하지 말고,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였다. 읽고 쓰는 삶, 책과 함께 숨을 쉬는 삶, 작은 것들과 연대하는 삶. 

하지만 무엇이든 애매한 내가 쓰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어 작은 것들과 연대할 수 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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