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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연 Feb 20. 2022

십분의 일

책으로 이어진 인연

을지로에 특이한 운영 방식을 가진 바(Bar)가 있다는 이야기를 지인을 통해 여러 차례 들었다. 

일명 십분의 일. 

열 명의 친구들이 모여 오픈한 와인바라고 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도 있고, 친구들과 사업은 안된다는 말도 있는데, 이렇게 금기시된 것만 골라서 만든 가게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가보자, 라며 말로만 공수표를 날리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통해 '십분의 일을 냅니다'라는 책이 나왔다는 피드를 보았다. 을지로의 힙한 와인바 '십분의 일'의 창업기가 고스란히 담겼다고 했다. 가본 적도 없고 연고도 없지만 단순히 한번 그 이름을 들어봤다는 이유로 ‘십분의 일을 냅니다'를 샀다.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엔 당일 방문까지. 이 모든 것이 코로나 창궐 전의 일이었다.

중부 경찰서 사거리를 건너 작은 골목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십분의 일'이 있다. 책에서도 종종 찾기 힘들어 가게로 전화하는 손님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읽은 터라 진득하게 막다른 곳이 나올 때까지 꺾어져 들어가니 블로그 사진에서 본 익숙한 문이 나온다.

테이프로 '커피'(커피는 팔지 않지만), '와인' 등 삐뚤게 붙여 놓은 글자마저 느낌 있다. 45도 각도로 열려있는 왼편 문의 안쪽으로는 계단이 줄을 지어 서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가게들은 가파른 계단을 끼고 있었지만 당시 을지로 입문자에 불과했던 나는 이렇게 힙한 가게가 1층이 아닌 곳에 있다는 사실에 한번 놀라고, 계단의 가파름에 두 번 놀랐다.

계단을 올라 무거운 철문을 밀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아늑하고 따듯한 공간이 있다. 옷을 걸어놓을 수 있는 행거와 거울, 카운터와 그 아래쪽에 놓여있는 책들, 누군가의 서재를 들여온 것 같은 빈티지 느낌의 책상. 연극 무대의 연출된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공간에, 책에서 다뤘던 오브제들이 여기저기서 보여 마치 이곳을 오랜 시간 동안 알아왔던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바의 한쪽에 자리하고 얼마 안 있으니 가게 안이 벌써 만석이다. 가장 맛있다는 짜계치와 치즈 플레이트를 시키고 하우스 와인 한 잔씩 주문한다. 부담 없는 한잔의 가격으로 적당히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당시 같이 '십분의 일'을 방문했던 친구와 나는 독서모임을 위한 장소와 콘텐츠를 찾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곳이 딱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쓴 이현우 사장님을 섭외하여 초청 강연자로 하고 이곳에서 '십 분의 일을 냅니다'라는 독서모임을 하면 어떨까? 술을 마시다 느닷없이 낸 아이디어가 속도를 붙여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십 분의 인스타그램에 책모임에 대해 제안을 드렸더니 사장님도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준비하게 된 '십분의 일을 냅니다'의 독서모임은 작가와 함께, 작가가 만든 창업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책을 지은 저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만들어 냈다는 것도 신기했고 참여했던 사람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책을 꾸준히 읽다 보니 재밌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 정적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의 작은 취미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충만해진다고나 할까. 독서는 결코 혼자만의 활동이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글로 소통하며 우리의 삶을 입체적이고 다층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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