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중력

by 연만두

이별에는 기묘한 중력이 있다. 그 범위에 들어가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끌어들여지고 마는, 얼마간의 힘은 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겠지만 감당키 어려운 힘이 들이닥치면 주저앉게 되는, 그런 기묘한 힘.

이별이라 함에 떠오르는 그 사람과 나는 절친한 친구였다. 아니, 돌이켜보면 절친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 사람과의 관계가 '사랑'이라는 단어가 더 가까웠다. 그 사람과 알고 지낸 시간은 4년을 웃돌았지만 직접 만난 횟수라야 양손으로 겨우 꼽을 정도였다. 대시 그 사람과 나는 매일같이 전화기를 통해 가닿을 수 있었다. 랜선 사랑이라 비웃는다면 할 말이야 없다만, 그 사람과 나는 이제 와서는 원망스러울 만큼이나 가까웠다. 하필 나는 그 사람과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같은 동아리 다른 캠퍼스였던 그 사람. 이별을 논할 때 그 사람과의 시작을 이리도 볶아댄 탓은, 그 사람과의 관계가 처음부터 불가했기 때문이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펼쳐져 있는 정답지였다.

'그 사람을 좋아한다', 펼쳐져버린 마음이었다.

처음부터 가하는 힘의 방향이 달랐던 관계는 다 먹은 과자 봉투처럼 초라하게 찢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미 서로에게 너무 좋은 친구가 됐지'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숨겼다. 그 사람이 내게 운명의 상대를 찾은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기 전까지 그랬다. 분노가 치밀었다. 내게 분노의 정당함마저 없어서, 내가 쿨하지 못해서, 답을 알고서도 상처받아서,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하여 나는 성급하게 이별을 고했다.

"예전부터 생각한 건데, 내가 너를 좋아해. 좋아했고, 좋아하고 있어."

라는 말로 얼른 꺼져버리라는 주문을 외웠다. 이별의 중력만큼이나 강한 저주의 마력은 그만 내 소원을 이뤄주고 말았다. 이후 이불 빨래를 몇 번이나 더 했다. 그때 입던 옷을 다시 입게 될 계절이 돌아와 그런가, 여전히 이 별의 중력은 무겁기만 하다.

"

동아리 활동 중 쓴 글이다. '이별의 중력', 이별이 가진 무너짐의 힘이 꼭 중력이 가진 끌어당김과 같은 결이라 느껴져 지은 글이었다. 일기 형식으로 이별 후에 대해 쓰기로 한 오늘까지는 간이 합평이 이어졌다. 두 조로 나누어 간이 합평을 진행했다. 글을 다 쓰고 합평을 하려 내 글을 돌아보니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었다. 얼굴을 까고 쓰는 글 치고 과하게 내밀하지 않나, 나름 챙긴 한 줌의 위엄이 다 날아가지 않으려나, 그리도 전전긍긍을 하다가 써낸 글이 이 글이었다. 그리도 망설인 나는 결국 발가벗겨진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저는 몇 개월 전까지 친구를 좋아했어요. 요즘 말로 '위장 남사친'이라고 하죠. 저는 처음부터 그 친구를 좋아했습니다. 근데 그 마음을 진작 알리지 못해 5년 정도를 망설였을 뿐이에요. 저는 처음부터 그 친구를 좋아했는데 그저 가까울 수 있는 방법이 친구밖에 없어서 친구가 됐습니다. 그 친구는 저를 안 좋아했어요. 저도 그걸 알고 있었는데 미련하게 5년이나 친구를 했죠. 그 친구가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 같다'

라며 호들갑을 떨기 전까진 그랬죠. 그 얘기를 들으니 화가 나는 거예요. 화가 나는데 내겐 화낼 정당성도 없어서, 나는 아무 힘도 권리도 없는데 화나 나는 머저리라서 스스로에게 화가 났어요. 그때 친구 관계의 존속 불가를 깨닫고, 소위 말하는 '고백 공격'을 했어요. 그렇게 관계는 깨졌죠."

내 말을 듣고 안타까워하던 한 부원이 질문했다.

"혹시, 안 될 걸 알면서도 5년이나 짝사랑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하필이면 그 친구와 저는 호불호가 같았어요. 제 마음이 힘이 들어 무너질 것 같을 때면 그 친구와 공유하는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는데, 그때면 생생히도 즐거워서 반나절씩 통화를 멈추지 않곤 했어요. 그런 경험이 원망스럽게도 저를 자꾸만 되살려서 5년이나 지속됐던 것 같네요."

"아하"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별'의 띄어쓰기를 달리하여, '이 별'의 중력이 여전하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어 봤습니다. 벌써 몇 개월 전 일이에요."

이후 동아리 활동은 마무리되었다.

문득 그 친구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든다. 글 쓰는 남자 만나지 말라는 글에서 이야기하던,

'헤어지면 내가 그 남자의 글감이 된다'

라는 찌질한 모멘트를 내가 재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심지어 나는 만나지도 않았는데. 미안하다 옛 친구야, 조금만 더 추적일게. 네가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5년여의 그 알량한 정으로 내 몰락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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