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 일요일보다 행복한 이유
한 강연자가 마이크를 잡는다.
"이것 하나만 얘기하고 바로 수업을 하겠습니다. 여러분, 금요일이 좋아요 일요일이 좋아요? 이것만 얘기해 보세요."
"금요일이요."
"왜요? 금요일에는 학교 가고 직장 가는데? 일요일은 쉬는데? 왜 금요일이 더 좋아요?"
"다음 날에 학교 가잖아요."
"그쵸? 이게 아주 중요한 얘기입니다. 금요일, 다들 좋아하시죠? 아침에, 금요일 아침에 눈 떴을 때 어때요? 기분 좋게 학교 갑니다. 왜? 오늘만 끝나면 되니까. 근데 일요일 아침에 눈 떴을 때 어때. 오늘 쉬죠? 안 가도 되죠? 하지만 마음이 불안하고 찝찝하죠. 이게 인간의 '행복'을 정의하고 있는 겁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행복이라는 걸 찾아가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의 정의를 내려야 해요. 행복의 정의가 뭘까? 뭐가 행복이냐? 내가 방금 얘기했죠, 행복이라는 것은요 현재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미래에 있다는 거예요 미래. 당신, 내가 당신한테 엉덩이 100대 맞으라고, 대신 맞으면 100억을 준다고, 진짜로 준다고 하면 맞을 거예요 안 맞을 거예요?"
"맞죠. 웃으면서 맞죠."
"그쵸? 한 대 맞을 때마다 빡! 어, 1억, 2억!"
청중의 웃음이 이어진다. 강사는 이어서 말한다.
"100억이라면, 까짓 거 100대 못 맞겠어요 그쵸? 엉덩이가 다 터져도 어때요. 맞고 가서 한 한두 달 입원해 있지 100억인데. 100억이라면 100대 맞을 수 있지, 기쁜 마음으로 맞을 수 있지. 솔직히 안 그래요? 되도록이면 빨리 때려 달라고 말하겠죠. 그쵸? 100억이라면 그 정도 가치가 있단 말이야. 이번엔 거꾸로, 1000억 줄게. 때리지도 않아요. 대신 내일이 사형이야. 1000억이 의미가 있어 없어?"
"없죠."
"의미가 없죠? 아무도 즐겁지 않죠? 즉 무슨 뜻이냐면, 인간은 궁극적으로 누구나 행복을 찾아가는데 행복의 정의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는 거예요. 어차피 인간은요, 현재 아무리 즐거워도 현재 즐겁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없는 존재야. 그게 인간의 본성이에요. 그렇다면 행복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 과거를 회상해서,
'아, 그때가 즐거웠구나'
'그때가 참 좋을 때였구나'
라는 사실을 그때 인지하는 거야. 과거를 추억하면서, 행복한 시절을 추억하면서, 그 말 못 할 어떤 묘한 웃음을 짓는, 그게 행복이란 말이야."
강사는 열띤 강연에 목이 갈라지는지, 잠시 마이크를 입에서 떼고 헛기침을 한다. 이어 그는 말한다.
"다시 정의를 내려보죠. 여러분들이 10년 후에 '내가 참 대학 생활을 재미있게 보냈나'를 판단하는데, 그때 잘 돼 있으면 무조건 대학 생활은 다 즐거웠다고 스스로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요, 아무리 지금 재미있게 놀아도 10년 뒤에 잘 못 돼 있다면요 그 대학 생활이 막 짜증이 나기 시작해요.
'아, 그때 내가 놀지만 않았어도 내가 지금 이렇게 안 됐을 텐데.'
라면서 말이에요. 분명히 그 시절에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고 굉장히 불쾌한 추억으로 남는 거야. 훗날 잘 돼야 돼. 잘되면 과거가 다 아름다워. 다 즐거웠던 거고요, 반대로 미래에 잘 안되면요 과거가 전부 불쾌한 추억으로 바뀌어버려요."
"어차피 현재에는 몰라요. 지금 얼마나 즐거운, 여러분의 인생에서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시기를 통과하는지. 여러분은 절대 그 시기엔 몰라요. 사랑을 할 땐 사랑을 모르고요, 젊었을 때는 젊음을 알 수가 없어요. 그걸 알면 사랑이 아니고요, 그걸 알면 젊음이 아닌 거예요. 모르니까 젊음이고 사랑인 거지. 지금은 어차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결국 미래가 좋아야 해요. 만약에 여러분이 지금 도서관에서 맨날 공부를 해. 그러면
'아우, 대학교 1학년인데 지금 5월에 어떻게 계속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고 있어요? 말도 안 돼요.'
하겠죠. 그렇지만 훗날 잘 되면요, 그때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져요.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하다가 밤에 끝나고 별을 보면서 집으러 가는 그 과정이. 원래는 아무것도 아닌 그 과정이 정말 아름다워지는 거예요. 여러분이 보기에 '그게 뭐가 재밌어'해도 그게 너무나 즐거운 일이 돼요."
강사가 말 사이에 긴 텀을 둔다. 청중은 고요하다. 강사는 청중을 응시하다가 이내 결연하게 말한다.
"아, 그렇다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행복의 정의는 '금요일'이라는 거예요. 즉, 미래에다가 초점을 맞춰야만이 현재도 즐겁다는 거예요. 그래서 공부라는 것은요 미래에 투자하는 거예요. 지금 내가 조금 힘들어도 미래에 즐겁기 위해서 지금 내 현재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 이게 공부거든요. 그러니까 최대한 많이 투자하세요. 반드시 아주 행복한 미래가 여러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때, 어떤 이가 손을 들고 이야기한다.
"그럼 미래는 언제 오는 건가요? 미래는 오지 않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미래에 행복이 있다고 하지만 절대 미래를 살 수 없고 오로지 현재만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0대에는 더 나은 20대를 위해 살기 힘들어도 참고, 20대에는 더 나은 30대를 위해 죽어라 노력하며 살고, 30대에는 더 나은 40대 40대에는 더 나은 50대, 그렇게 90세 100세까지. 이렇게 미래만을 위해 살면 현재의 나는 항상 힘든 것 아닌가요? 금요일과 일요일은 절대적인 시점이니 그 논리가 맞을 수 있겠지만, '오늘 일하고 내일 쉰다'라고 하면 그 내일은 절대 오지 않잖아요. 내일은 또 다른 새로운 오늘일 뿐이잖아요."
"당신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오늘이 마냥 괴롭기만 합니까?"
"네?"
"이렇게 생각해 보죠. 당신이 어떤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봅시다. 공무원 시험일 수도 있겠고, 토익일 수도 있겠고, 어떤 자격증 시험일 수도 있겠죠. 당신은 그 시험을 열심히 준비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에 들 때까지, 오늘 다 풀어내기로 다짐했던 만큼의 공부를 하고 만족할 만한 수준의 정답률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해가 지고 잠자리에 누웠죠. 그때 당신은 어떤가요? 오늘 하루도 아무 쾌락 없이 그저 미래를 위한 투자만을 해서 불행하다고 느끼나요? 아니면 오늘 치의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달성된 목표가 당신을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즐겁다고 느끼나요?"
"......"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행복은 어차피 미래에 뒤를 돌아보고서야 깨우쳐집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얼마나 즐거웠고 재미있었느냐보다는, '돌아보는 시점의 내가 얼마나 잘 돼 있냐'라는 것이죠."
강사는 여유있게 웃으며, 청중을 바라보며 천천히 움직인다. 그는 하나 떠올랐다는 듯 말을 이어나간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있습니다. '잘 된다'라는 정의가 꼭 돈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 그게 '잘 된다'라는 말의 정의입니다. 내가 웹툰 작가를 꿈꿀 수도 있고, 삼성맨을 꿈꿀 수도 있어요. 혹은 직장은 적당히 월급 주는 데로 취직한 뒤에, 취미로 클라이밍을 배우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를 낳아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일 수도,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동네 회관에서 공연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를 위한 노력 또한 다양하겠죠. 부모가 되기 위해 경제력을 얻는다, 그 경제력을 위한 취업 활동을 한다. 웹툰을 그리기 위해 식견을 넓히기 위한 해외여행을 간다. 여러 가지 준비 과정이 있겠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앞서 이야기 한 '투자'입니다.
강사는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청중에게 강하게 이야기한다.
"여러분,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미래에 투자하세요. 그 투자를 '공부'로 묶어 이야기 한 이유는, 사실 세상 모든 과정은 '공부'라고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꼭 시험공부나 자격증 공부가 아니어도 됩니다. 돈이 필요하다면 주식을 공부하고, 직장이 필요하면 영어와 자격증을 공부하고, 밴드를 위해서 드럼 스틱을 흔드세요. 곧, '공부' 하세요. 반드시 아주 행복한 미래가 여러분을 기다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