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혼자가 될까 무서워 유해한 관계에 갇혀있는다

똥차 콜렉터를 사랑했던 이야기

by 연만두

어린 시절에 카카오스토리로 알게 되어 10년 가까이 연락을 했던 인터넷 친구가 있었다. 참 예뻤고, 사실은 조금 헤펐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흔히 말하는 '똥차'만 골라서 만났다. 처음에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강해 보이는, 그러니까 힘이 센 동네 건달 같은 형들을 만났었다. 그때는 그나마 강한 남자에게 끌린다는 점이 이해라도 됐는데, 점점 건달도 아닌 반달, 양아치도 아닌 쩜오 쯤이나 되는 겉절이들을 만나댔다.

정말 놀라웠던 건 그 친구가 그런 남자들에게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는 점이다.

그 친구는 돈이 없어서 색을 반쯤 채우다 만 초라한 이레즈미를 하고 있는, 동네에서 작은 불법 오락장을 운영하는 반달에게 걸핏하면 얻어맞고 패륜적이며 모욕적인 욕지거리를 들어댔다.

원치 않는 임신을 종용 받기도 했고, 때로는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친구는 나에게 힘들다고 하소연만 할 뿐, 헤어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길길이 날뛰고, 걱정된다며 눈물을 지어도 알았다는 대답 외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 친구가 관계를 정리하는 건 오로지 그 쩜오 양아치에게 보기 좋게 걷어차인 다음이었다.

더 이해할 수 없던 건 그다음의 수순들이었다. 그 친구는 나와 유사 연애를 했다. 그 친구는 내게 매일같이 전화하고, 때로는 영상통화를 하고, 사랑한다 속삭였다. 언젠가는 폰 섹스 비슷한 것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나와 사귀지는 않았다. 그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자신의 만족감을 채우고 나면 그 친구는 불현듯 사라졌다. 그러고는 이내 며칠 내로 새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연락을 해왔다. 또 똑같은 반달 양아치, 그런 놈이 곁에 있을 때에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도 그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친구를 좋아했다. 여드름이 막 올라오던 학창 시절, 남자 앞에서와는 달리 여자 앞에서는 한없이 멍청해지던 내게 여자와의 긴밀한 연락은 가슴 설렐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생 누나를 만나기 전까지 어엿한 연애라고는 해본 적 없던 나였으니, 나를 그렇게 찾아주는 여자를 안 좋아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예뻤던 데다가 몸매도 좋았으니, 연애를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당시의 나는 그 친구에게 홀려있었다. 그 '오빠' 소리가 듣고 싶어 학교 방과 후를 몰래 도망갔던 일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 아이의 관계가 아주 유해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가족들이 다 잠든 집에서 미닫이문 너머로 소리가 새어나갈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전화를 하던 어느 밤, 해가 거의 떠오를 즈음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밤이었다.

그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정확히 언제였노라 말하기도 힘들었던 지난한 하루였다.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나는 배설하듯 그 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용기도 깡도 없던 나는 좋아한다, 사랑한다 말하지도 못했다. 그저 은은하게,

"우리 꼭 사귀는 거 같지 않아?"

라는 말을 꺼냈었다. 최대한 용기를 짜냈지만 그 비겁한 질문이 최선이었다. 그때 돌아왔던 그 친구의 대답이 여전히 가슴에 콕 박혀있다.

"에이, 우리가 어떻게 사귀어. 우린 진짜 좋은 친구 관계잖아. 오빠는 그냥 좋은 오빠지. 오빠는 나 여자로 보고 있던 거였어?"

돌이켜보면 그 친구는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점을 애당초 알고 있었다. 그저 내가 호감을 필두로 보내는 호의가 좋아서 그걸 누리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내 호감을 받아주는 그 친구가 내 호감에 동의한다고 생각해 고백을 참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친구는 내가 보내는 일방적 호감이 쌍방의 계약관계, '사귄다'라는 형태로 종결되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시치미를 뚝 떼고 계약 관계를 다시금 일방향으로 고정하는 말을 내뱉었으리라.

저 말을 듣고 크게 당황하며 당연히 아니라는 듯, 농담이라는 듯 말을 얼버무렸던 당시의 내가 기억난다.

이제 막 어슴푸레하게 어둠이 밝아오고 있었고, 나는 어머니가 새벽 기도를 가시기 위해 일어나 씻을 시간이 되었다는 점을 인지하고 조심하고 있었다.

나는 저 말을 듣고 한동안 많이 아팠다. 식음을 전폐하거나 앓아눕지는 않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말았다. 자신감이 사라졌었고, 나는 여자 앞에서 그저 광대나 감정 쓰레기통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에 꽤 오래 빠져있었다.

그 친구는 내게 유해했다.

나도 알았고, 이 관계를 지켜보는 내 친구들도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관계를 끊어낼 수 없었다.

그 친구와의 관계가 끊어졌던 일도 참 어처구니가 없다. 또다시 위의 수순을 밟고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던 그 친구.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친구에게 애인이 있을 때는 싸우거나 헤어진 게 아니고서야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양아치 반달에게 제 가진 것을 다 내주는 그 친구였기에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싸우는 일은 없었는데, 이번엔 무슨 일일까 싶어서 액정에 금이 가있던 갤럭시 노트 2를 귀에 갖다 붙였다.

"여보세요?"

"야, 너 누구냐?"

반갑게 전화를 받은 내 귀에 들렸던 건 여자 치고는 저음이었던 그 친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남자 치고도 저음인, 아주 묵직한 목소리였다. 낯선 목소리에 나는 전화를 잘못 받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액정에 번들거리는 글자는 분명 그 친구의 별명이었다. 나는 조금 긴장한 채 다시 말을 이었다.

"... 여보세요?"

"야, 너 누구냐? 누군데 내 여친이랑 연락하냐? 뒤지고 싶냐?"

아, 나는 깨달았다. 그 친구가 새로 만났다는 양아치 반달이구나. 나는 놀라 가슴이 방방 뛰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 말을 받았다.

"친군데. 넌 누군데 반말이냐?"

"나 얘 남자 친군데, 너 다시는 얘한테 연락하지 마라. 한 번만 더 니 이름 보이면 니 찾아가서 죽여버린다."

뒤에서 익숙한 저음의 여자 목소리가 하지 말라며, 핸드폰 돌려달라며 애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 양아치 반달에게 받을법한 연락이다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 하나도 두렵지 않은 살해 협박을 받을 때 문득, 이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깊게 찾아왔다. 내가 이 친구와 연락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싶었다. 별 같지도 않은 양아치 반달에게 허세 가득한 살해 협박을 들어야 할 이유가, 내가 내 가슴을 스스로 후벼파며 유사 연애를 하고 있을 이유가 무엇인가 싶었다. 나는 회의감이 들어 언짢아진 마음에 마주 대며 욕지거리를 내뱉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몇 통 더 걸려왔지만 받지 않았다.

대충, 꼴같잖으니 연락 하지 말라는 문자를 보냈던 기억이 있다. 이후 나는 그 친구의 번호를 차단했다. 이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몇 통 걸려왔지만, 내가 받지 않자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이 유해한 관계를 스스로 끊어내지도 못했다. 거의 반강제로, 그 친구와 나 사이의 결정이 아니라 제3자의 깽판으로 싹둑 끊어져 버렸다. 그 양아치 반달의 고마운 깽판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친구와 얼마나 연락을 더 했을지, 결국 그 친구와 만나게 되었을지,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유해한 관계를 끊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친구관계에서 전쟁같이 살아남았고 돌아온 집, 학원도 다니지 않았기에 무한하게 남았던 그 시간에 나는 혼자였다. 게임을 하고 책을 읽기도 했지만, 내가 혼자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연락하는 친구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친밀하게 떠들고 웃고 같이 놀기도 했고, 전화를 밤새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혼자였다. 랜덤 채팅을 해보기도 하고, 다른 인터넷 친구를 사귀고자 단체 카카오톡 방에 찾아 들어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혼자였다.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았고, 배가 고파도 괜찮았다. 다만 혼자라는 점은 괜찮지 않았다. 그 외로움을 견뎌내는 일은 내게 넘치는 호르몬의 욕구를 이겨내고 수음을 참아내는 일보다도 어려웠다.

어쩌면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때리고, 성폭행하고, 부모를 욕보이는 남자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제 외로움을 채워주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서는 정서적으로밖에 얻을 수 없던 만족감을 그들은 현실에서도 채워줄 수 있으니까, 제가 매달리면 붙잡혀주는 남자가 그들이었으니까.

그 친구는 어쩌면 양아치 반달들에게 의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긴 밤의 외로움을 나를 감정 쓰레기통이나 어장 속 물고기로 보는 여자에게 의탁하여 이겨냈듯이, 그 친구는 긴 밤과 그보다도 어두운 낮을 강한 척하는 남자들에게 기대어 이겨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아무리 강한 척을 해도 약하다. 나도 그랬고, 그녀도 그랬다.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다시마'라고 불렀던 그 아이. 내겐 어릴 적 길고 긴 짝사랑이었던 아이. 내가 사랑과 욕정의 차이를 알았던 계기가 되었던 아이. 불쌍했고, 구제해 주고 싶었고, 그래서 눈을 뗄 수 없던 아이. 지금은 양아치 반달에게서 벗어났을지, 건강은 할지, 잘 살아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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