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행방
어느 때부터인가 눈물이 사라졌다. 응당 이럴 때면 울어야 하지 않나, 싶은 때에도 내 눈은 건조했다. 슬픈 영화를 보거나, 내게 아주 힘든 일이 있어도 울지 않았다. 얼마 전 짝사랑을 그만하겠노라 고했던 순간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런 나는 내가 눈물이 없는 사람이 된 줄 알았다. 사람은 원래 변하는 거니까, 어련히 커가면서 눈물샘이 무거운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울고 싶은 날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짝사랑을 못하겠다고 친구 그만하자고 당사자에게 고했던 날, 웃긴 사람이 아니라 우스운 사람이 된 게 아닐까 생각했던 날, 오래 사귄 친구가 내 발 등을 찍은 날, 첫 근무지에서 인격을 모독당한 날, 생각도 안 나는 수많은 나날이 있었다.
가슴께에서 올라오는 덩어리진 앙금이 올라오던 그때, 나는 메마른 입에서 침을 끌어모아 꿀꺽 삼켰다. 식도를 타고 내리는 그 점액에 밀려 슬픔이 내려갔다. 그렇게 하면 울음이 나지 않았다.
울지 않는 대신 울음의 대체제를 찾았다. 으레 남들이 슬프면 한다던 술과 담배를 했다. 담배는 아무리 태워대도 영 맛을 모르겠기에 금방 끊었지만 술은 입에 맞았다. 헤벌쭉 헬렐레 즐거워지면 얼추 슬픔이 밀려났다. 다음날이면 숙취 핑계로 슬픔을 미루고, 하루 또 살아간다고 슬픔을 미루고, 그렇게 미루다 보면 시간이 금세 슬픔을 잊게 해줬다.
상담을 받았다.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제일 힘들었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남 앞에서 눈물을 흘려본 건 10년도 더 된 일인 것 같았다. 그때 알았다. 나에겐 눈물 흘려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였다. 눈물 흘리면 안 되는 줄 알았던 거였다. 슬픔을 미루고 미루다가 그만 우는 법을 까먹어버린 것이었다.
사실 난 눈물이 많았을 지도 모른다. 울고 싶었던 때애 모두 울었다면 난 필시 울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울지 못했다. 울면 약해지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해져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마저 약해지면, 나마저 약해져서 도움이 필요해지면, 가뜩이나 형 때문에 힘드신 엄마 아빠가 무너지진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내 일생의 목표는 절반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기를 쓰고 웬만한 면에서 반타작은 하려고 했다. 고교 시절 성적도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은 되었다. 교우 관계도 특출나게 척지는 아이가 없었다. 아들로서도 웬만한 도리는 다하려고 했다. 10대 혹은 20대로서 진로를 찾고 나아간다든지 하는 역할은 얼추 해냈다.
'얘는 너무 00 해서 어떡해?'
같은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해냈다. 종종 마음에 드는 일은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그랬다. 적당히 고상했고, 적당히 인정받을 수 있었으며, 적당히 으시댈 수 있었고, 적당히 재미있었다.
적당히 하기 위해선 강함보다는 나약하지 않음이 필요했다. 나는 약해지지 않으려고 했고, 울지 않았다. 힘들면 울고 싶으니까, 울지 않기 위해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내게 힘듦은 잘못이었다. 나는 늘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힘들지 않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다. 힘들지 않은 사람으로 되었다, 되고 말았다. 힘듦, 슬픔, 눈물은 실존했으나 인정하지 않았다. 누군들 안 그러겠냐는 생각으로 수업 뒤의 블랙보드처럼 휙휙 지워버렸다.
그래서 내가 제일 힘들었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눈물이 비죽 나왔다. 내 힘듦을 알아줘서, '힘든 게 당연하니까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라고 해주는 것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던 힘듦이 정당해진 것 같아서, 그만 눈물이 났다. 사실 울라면 한참이고 울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또 꿀꺽 삼켰다. 어머니가 비싼 돈 주고 마련해 주신 상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았다. 으레 해야 하는 수준의 상담 성취도를 위해 '열심히' 상담을 들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까 더 울지 못한 바를 잠시 후회할까 했다. 내가 언제 또 그렇게 자연스레 눈물이 나올 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잠시 생각하다가 도리질 치며 생각을 지웠다. 후회해 봐야 무엇 하나 싶었다. 이렇게 생각했다고 해서 내가 쉬이 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또다시 울면 안되는 사람이 되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게 무어가 나쁜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