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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허생 Mar 03. 2017

8.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기꺼이 '지옥'에 발을 딛는 이들에게



글이 돈이 되는 기적. 이성주

생각비행. 2016. 276p. 14,000

    

'글이 돈이 되는 기적'은 글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글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기 위한 사투를 의미한다. 이런 미친 짓을 하지 말길 바란다. 


재밌는 책이 출간됐다. 모리 히로시라는 일본 소설가의 에세이집, 「작가의 수지」란 책이다. 추리소설 작가인 저자가 평생 동안 작가로서 번 돈을 꼼꼼하게 계산하여 기록한 것이다.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그는 19년간 278권의 책을 썼고 1,400만 부를 팔아, 무려 153억(!)을 벌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먼 나라 이웃나라' 일본의 '잘 나가는' 작가의 이야기일 뿐, 한국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주 잘 풀린 케이스인 장강명 작가의 사례(한국일보, 20년간 인세 153억? 한국작가에겐 꿈 같은 일)만 보더라도, 직장인 월급 비슷하게 버는 것조차 아아아아아ㅏㅏ주 특별한 케이스라는 걸 알 수 있다. 소설이 이러니, 다른 분야의 글 사정은 더욱 참혹하다.


이 책은 그 참혹한 곳에서 16년간 '대한민국에서 팔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글'을 써왔던 작가의 기록이다. 칼럼, 기사, 시나리오, 단행본부터 자서전 대필, 논문 대필까지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글을 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취미로 써라, 전업은 하지마. 그럼에도 글을 쓰겠다면, 주변을 정리하고 모든 걸 다 걸고 써라.'



1. 어떤 경로로든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다보며 진솔하게 쓴 글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진솔하다고 자신 있게 단정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책이 일종의 실패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시나리오 쓰기를 포기하고 잡문(본인의 워딩대로)을 닥치는 대로 썼던 과거를 '지옥'으로 회상한다. 그는 이 실패담을 글쟁이답게, 놀랍도록 흡입력 있게 썼다.


2. 「작가의 수지」가 터부시 되는 작가의 먹고사니즘 하나만을 파고든 책으로 박수를 받는다면, 이 책도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글 써서 먹고살 수 있냐'는 오래된 떡밥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밝힌 글은 흔치 않다. 19년 동안 그 환경이 점점 더 황폐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글은 더욱이. 


3. 게다가 이 판이 얼마나 개판인지 알 수 있는 생생한 경험들을 어디 가서 들을 수 있겠나.


솔직히 말하겠다. 영화판은 양아치들의 천국이다. 작가 몇몇이 모이면, 무용담 삼아 이제까지 떼인 돈을 말하며 욕을 한다. (p.54)
자서전 대필을 해본 작가라면 알 것이다. 대단한 '필력'이 필요하지 않다. 왜냐면 자서전은 '찍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p.130)
가난한 작가, 그중에서 대학물을 먹고 좀 똘똘하다 싶은 애들이 한 번 이상은 이 '논문 대필'의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p.190)


4. 다만 책 구성이 다소 느슨하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이 전체적으로 거칠게 이어지는 건, 날것을 보여주는 방법임을 감안하더라도 시나리오가 나오다 삥 뜯는 기레기로 점프하고, 언론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편집 과정에서 쳐내도 될 법한 이야기가 '외전'의 형태로 본문에 들어가 있다. 대필에 대해서도 자서전, 논문, 에세이를 묶어서 정리했으면 훨씬 체계가 잡혀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5.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을 꼽으라면, 글 써서 먹고사는 게 '지옥' 같았다는 실패담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을 쓰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해봤는데, 너도 해볼래? 라고 지옥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것 같달까. 특히 부록으로 글쓰기 노하우인 '글이 돈이 되는 기적을 위한 팁'을 제시하는 걸 보면 얼마나 악질적인 의도(...)로 이 책이 쓰였는가 알 수 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 같은 의혹에 방점을 찍는다.


아직까지 난 글 이외의 다른 걸로 생계를 꾸릴 생각이 없다. (p.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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