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장르가 아니라 태도다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원종우
생각비행. 2014. 280p. 16,000
과학은 장르가 아니라 태도다.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라는 해괴망측한 카페로 떠들썩하다. 이른바 대체 의학, 자연 치유로 불리는 돌팔이 의학을 팔아먹던 곳이다. 그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허무맹랑한 것이었는지는 '보건복지부가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는 사실로 갈음하고 넘어가겠다. 먹는 걸로 장난치는 놈들이 양아치라면, 건강으로 장난치는 놈들은 쌩양아치다.
다만 이 쌩양아치가 득세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되짚어볼 여지가 있다. 특히 안아키의 주장에 귀 기울이게 되는 정서적인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과잉진료에 대한 걱정, 의료사고에 대한 불안감 등을 들 수 있겠으나, 그 근저에 있는 마음은 '의사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두려움이다.
이처럼 전문가 집단과 시민 사이의 간극은 전문가에 대한 불신을 낳게 되고, 결국 사회적 문제로 파생된다. 그 사례가 의학분야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안아키 사태'인 것이다.
의학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두 집단 간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과학과 같이 고도화, 세분화된 영역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전문 서적에 낑낑댈 수는 없는 법. 이 책의 저자와 같은 과학커뮤니케이터가 필요한 시간이다.
1. 물리학과 생물학, 화학, 천문학까지 과학 전반의 기초를 체계적이고 쉽고 재미있게 정리하는 과학입문서...는 아니다. 오히려 과학에 흥미를 가지게 된 개인적인 경험부터 과학을 다룬 소설과 영화를 거쳐 종교와 음모론의 비과학적 영역까지 커버하는 '재밌는' 과학 안내서에 가깝다.
2. 저자가 직접 쓴 SF소설이 왕왕 등장하는데, 재밌다(특히 단편소설 <30초>). 이론을 시작하기전 주제에 대한 흥미를 엄청나게 끌어낸다는 점에서 과학 안내서에 알맞은 적절한 선택이라 하겠다. 이외에도 풍부한 사진 자료와 삽화, 술술 읽히는 저자의 산뜻한 문체 등도 강점이다.
3. '과학은 장르가 아니라 태도다'는 말에서 드러나듯,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과학의 재미를 전달해 독자를 '호모 사이언티피쿠스'로 만드는 데 주력한다.
결국 과학의 왕도는 있었다. 대충하면 된다! 다만 대충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잘 분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접하는 학교 교육 환경이나 사회적 관습 속에서는 이게 뒤집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p.16)
과학이 일견 차갑고 딱딱해 보이는 이유는 따지는 게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 따지는 게 많아졌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는 우리 인간이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p.206)
신비감과 환상을 혼동하기 쉬우나 이는 전혀 다르다. 환상은 대개 무지를 전제로 하지만 신비감은 그렇지 않다. 올바른 지식과 그에 대한 이해가 오히려 신비감을 자아내는 동력이 된다. (p.262)
4. 그럼에도 중력, 시간여행, 임사체험, 평행우주, 영구동력 등 과학적 지식을 꽤나 밀도 있게 다룬다. 몇몇 부분에서는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땐 저자가 그러했듯 우리도 '복잡한 부분은 대충 읽고 건너뛰면서 알아들을 만한 부분만 집중해서' 읽는 스킬을 발휘하면 된다. 기말시험 준비하듯 꼼꼼하게 이해하고 정리해서 과학 지식을 얻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5. 끝으로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오거든 목차 구성을 다시 하면 좋겠다. 14장까지 있는데, 2장 중력, 4장 시간여행, 5장 평행우주 등 앞부분에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집중적으로 나온다. 내용이 점층적으로 쌓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압 부분에서 독자들을 긴장하게 만들 이유는 없을 터. 뒷부분의 적절한 부분, 특히 과학적 태도와 재미를 다루는 부분을 당겨왔으면 한다. 뭐, 알아서 점프해서 읽는 분들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