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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soda Feb 25. 2017

타이완 여행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 #3

아침 6시 반에 눈을 뜨자마자 날씨를 확인했다. 컨딩의 날씨는 흐리고 때때로 비. 특히 오후 5시 이후로 비 표시가 집중되어 있었다. 호텔 조식을 먹을 때까지도 좀처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였지만, 가오슝으로 넘어온 것 자체가 반쯤은 컨딩에 가기 위한 일정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일단 출발해 보기로 했다. 동행이 여행지에서 맑은 날씨를 불러오는 행운을 지닌 사람이라는 데 희망을 걸고, 내가 여행지에서 최소 하루는 엄청난 비를 불러오는 사람이라는 데에는 눈을 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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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R 쭤잉 역으로 가서 2번 출구 앞에서 컨딩 익스프레스 티켓을 왕복(NT$600)으로 구입했다. 창구 앞에 이지카드 충전이 가능하다는 표시가 있어서, 컨딩에서 버스를 탈 때 쓰려고 카드도 충전했다. 컨딩 익스프레스 티켓을 파는 곳에서 이지카드 충전을 해준다는 건 거기서도 쓸 수 있다는 뜻일 거라 생각했지만, 혹시나 사용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잔돈도 준비했다. 

호텔에서 나오는 시간이 약간 늦어진 탓에 10시 버스를 놓치고 10시 30분 버스를 타게 되었다.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아서 주위를 빙글빙글 돌다가 편의점에 가서 음료라도 구입하기로 했다. 


근처 세븐일레븐에서 얼그레이 밀크티를 발견했는데, 일반 밀크티보다 훨씬 맛있었다. 한글이 적힌 패키지와 일본어가 적힌 패키지, 둘 다 무척 귀여웠다. 한 달쯤 전에 학교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십여 년 만에 따뜻한 데*와를 한 캔 사 먹고 "오랜만에 먹어보니 정말 맛있군!" 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 맛에는 추억이라는 감미료가 더해져서 그렇게 느꼈던지라 또 사 먹고 싶지는 않았던 반면, 이 밀크티는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해서 최근에는 밖에서 밀크셰이크는 물론이거니와 카페라떼나 코코아조차 마시지 않는 내가 찾아다닐 정도로 맛있었다. 맛있는 걸 마셨더니 소화가 안 되는 줄도 잘 모르겠던데, 귀국하고 돌아와서 방심하고 딸기 크림 어쩌고 하는 음료를 카페에서 사 마셨다가 속이 더부룩해서 혼났다.

얼그레이 밀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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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은 차에 타서 찍으려고 했으나 통째로 회수당하는 바람에 찍지 못했다. 일단 손에 남아있던 컨딩에서 돌아오는 표만 한 컷. 출발 시각은 도장으로 찍어주지만 일단은 아무 거나 탈 수 있는 모양이다.

잃어버리면 안 된다.

버스를 타고 내려갈 때에는 오른쪽에 앉아야 바다를 잘 볼 수 있다. 버스의 좌석 배정이 2-1 형식이라서 나와 동행은 왼쪽에 나란히 앉았고,  그래서 컨딩에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 반 동안 실컷 잠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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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딩 익스프레스는 샤오완이라는 곳까지 가는 모양이었지만, 우리는 아직 그쪽 지리를 잘 몰라서 일단 컨딩이라는 이름의 정류소에서 내렸다. 아마도 사람들이 스쿠터 같은 걸 빌리거나 야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사 먹는 번화가가 이 정류장 주변이지 싶었다.

버스에서 내려서자 완연한 여름이었고, 어디로 갈지 망설이는 그 잠깐 사이에 동행은 모기에 물렸다.

이곳은 여름이다!


미리 적어온 버스 시간표를 참고하여 컨딩 셔틀버스를 탔다. 귤색 노선은 주말에만 어롼비까지 간다고 들었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기사님께 글자를 보여주니 고개를 끄덕끄덕하셨고,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어롼비에서 내렸다. 그곳은 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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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세워주는 곳에서 길을 따라 들어가자 공원 입구가 보였다. 입장료는 성인이 NT$60이었는데,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반대편에는 널찍한 주차장과 함께 한국의 관광지에서도 종종 발견하곤 하는 약간은 낡고 옛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번잡한 기념품점 및 식당 거리가 들어서 있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내린 곳에서 고작 버스로 15분 남짓 달려왔을 뿐인데, 널찍한 하늘 한편으로 먹구름이 몰려왔다. 종종 한 방울씩 비가 떨어져서 이제 본격적으로 쏟아지나 생각하면 다시 구름이 걷히고 한쪽에서 푸른 하늘이 드러나곤 했다. 바람이 약간 세게 불었지만 전반적으로 기분이 좋고 구경하기 좋은 날씨였다.


넓은 잔디밭 여기저기에서 뒹굴거리는 사람들.
이것이 태평양인가.
맑음과 흐림이 공존하는 하늘.
등대는 공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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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을 세울 때에는 어롼비뿐 아니라 근처에 있는 신기하게 생겼다는 바위도 보고 해변에도 한 번 들릴까 했는데, 어롼비를 둘러보고 나자 왠지 오늘의 숙제를 모두 끝낸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허기가 져서 그런가 하고 일단 시내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가오슝에서 당일로 왔다 가는 게 아니라 아예 1박을 넣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이왕 두 시간 반 동안 버스를 타고 내려온 김에 여유롭게 둘러보면 좋겠지만, 일단은 너무 늦어지기 전에 가오슝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그리 자주 다니지도 않는 셔틀버스의 시간을 맞춰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썩 내키지 않았다. 스쿠터나 자전거를 빌리는 건, 겁 많은 나에게는 논외의 선택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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