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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soda Feb 27. 2017

타이완 여행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 #5

10시 반 기차를 예매해 두었기 때문에 어제보다 더 빨리 일어났다. 어제도 같은 시각에 호텔에서 나왔더라면 10시 버스를 타고 가서 컨딩의 해변가 한 곳 정도는 들릴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동행과 나누다가, 그랬다 한들 결국에는 어제와 똑같은 일정만 소화하고 리조트에서 30분 더 미적거렸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호텔을 나서보니 하늘이 상당히 파랗고 미세먼지도 한풀 꺾여서 가오슝이 우리의 발길을 붙잡는 것 같았지만, 표를 예매해 두었으니 아쉽지만 이틀 동안 들락거렸던 메이리다오 역 6번 출구와도 작별을 고했다.

안녕, 개찰구까지 너무 멀었던 6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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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남아서 스타벅스에서 까눌레와 아메리카노를 사고 편의점에 들러 안닌 토후와 푸딩을 산 뒤에도, 밑에 내려가서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구경하며 십 분 남짓 기다린 뒤에야 우리가 타고 갈 열차가 들어왔다. 돌아가는 여정은 두 시간 걸리는 것으로, 올 때보다 더 많은 역에서 정차하고 더 많은 사람이 탔다.

푸딩맛 푸딩. 안닌 토후맛 안닌 토후. 그러려니 싶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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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뎬 역에 3시 20분까지 가야 해서 타이베이 중앙역에 내린 다음에 일단 초록색 선이 지나가는 중산 역에 가기로 했다. 지하도를 따라 가면 금방이라고 하니, 미츠코시 같은 데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겠다는 의도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슬슬 중화요리가 질린다는 말이나 할 게 아니라 미리 조사해온 대로 중앙역 근처에 있는 맛있다는 사천요리 가게라도 가둘 걸 그랬다. 아니면 중앙역 지하에서 새송이버섯 튀김이나 사다가 집어 먹든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선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중산 역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중산에 있는 미츠코시 백화점에는 딱히 먹을 만한 곳이 없었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배가 안 고팠는데도 굳이 점심을 먹을 거라고 기를 쓰고 캐리어를 끌고 돌아다닌 것도 실패에 한몫했을까.


미츠코시 1관과 2관, 3관을 차례대로 들락거리며 그럴싸하게 점심을 해결할 만한 레스토랑을 찾아다녔지만 캐리어도 걸리적거리고 딱히 마음이 동하는 곳도 발견하지 못한 우리는 3관 앞에 놓인 안내판에서 미츠코시 백화점 안내도를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결국 Afternoon Tea에 가기로 결심했다. Afternoon Tea라 하면 무엇인가, 일본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가게가 아니던가. 굳이 그곳에서 밥을 먹거나 디저트를 즐긴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간판을 보면 뭔가 편안한 곳이라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눈에 익은 곳이기는 하다. 피곤하고 지쳤을 때나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을 때, 가볍게 들러서 카페 런치를 즐기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 게 안이했다는 거다.


다른 곳을 다시 헤매고 다닐 기력이 생기지 않아서 30분을 기다렸다가 들어간 뒤, 우리는 메뉴판을 보고 금액을 원화로 환산하지도 않은 채 수프와 빵, 차가 포함된 세트를 주문했다. 지인은 레드 카레, 나는 뭔가의 오믈렛. 


수프와 빵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메인 요리는 정말이지, 찻집 같은 데서 밥을 시켜 먹는 건 아니라는 것을 절절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래, 차라리 케이크를 먹을 걸 그랬다. 생각해보면 배도 별로 안 고팠는데, 그냥 춘수당에 가서 밀크티나 한 잔 마시면 배부를 정도였는데, 굳이 뭘 점심을 먹겠다고 발품을 실컷 팔다가 결국에는 찻집에 와서 음식을 반이나 남기는지 등등, 숟가락질을 하면 할수록 불만과 후회가 밀려 올라오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맛.

지인의 레드 카레 위에 살포시 올려져 있던 고수를 접시 위에 내려놓았더니 조그마한 풀벌레가 살금살금 기어가는 것도 볼 수 있었는데…….


아무튼 밥을 적당한 곳에서 그만 먹고 차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이게 또 좀처럼 오지 않는 것이다. 3시 20분까지 신뎬 역에 갈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면서, 40분이 되어서야 우리 앞에 놓인 다즐링과 캐러멜 티를 오 분 만에 후루룩 들이마시고 캐리어를 들고 일어났다. 차는 맛있었기 때문에 역시 찻집은 차를 마시라고 있는 것이라며, 케이크 세트나 시켜 먹을걸 그랬다는 후회와 함께 재빨리 가게에서 나왔다. 계산서에 찍힌 금액은 NT$1,034. 이번 여행뿐만 아니라 내가 다녀온 모든 여행을 통틀어서도 탑 5에는 들어갈 것 같은 돈 낭비라 할 수 있겠다. 


2015년에 나가사키에 갔을 때에도 피곤에 지쳐서 Afternoon Tea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냥 케이크와 차를 시켜 먹고 만족스럽게 가게를 나섰던 걸로 기억한다. 다시 한번, 찻집에서는 차와 다과를 시키자는 교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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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뎬 역까지 가려고 MRT를 탔는데 하필이면 중간에 무슨 역까지밖에 가지 않는 아이라, 동행과 함께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퍼뜩 고개를 드니 사람들이 모두 내려버리고 불이 꺼져서 황급히 짐을 챙겨서 내렸다. 그래서 또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고, 3시 20분이 살짝 넘어서야 신뎬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 묵을 호텔의 셔틀버스를 3시 30분에 예약해둔 탓에 엄청나게 긴장해서 캐리어를 끌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겨우 한쪽에 세워진 차를 발견했다. 전에 우라이를 갈 때에는 버스를 타고 갔는데, 그때도 신뎬 역에는 출구가 하나밖에 없다는 말에 안심하고 여유를 부렸다가 버스 정류장을 못 찾아서 엄청나게 헤맸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도 '오른편으로 관광 안내소를 확인하고 패밀리마트 앞에서 승차'라는 말이 어찌나 어렵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오른편으로 관광 안내소를 확인하면 지나치지 말고 그 앞에서 오른쪽으로 돈 뒤에 슬쩍 오른쪽을 보면 패밀리마트가 보일 거고, 네가 서 있는 그 자리에 아마 호텔의 셔틀버스가 서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던 건데, 이렇게 써놔도 아마 다음에 또 갈 기회가 있다면 또 헤매겠지.


지난번에는 포즈랜디스에서 묵었던지라 버스를 타고 왔는데, 그때와는 달리 엄청나게 빠르게 우라이에 도착했다. 잠깐 졸다가 눈을 뜨니 이미 호텔.     

볼란도 우라이에 도착했다.
방이 지나치게 넓은 것 같아서 좋았다.
호텔 계단에서 보이는 멋진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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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까지 호텔 카페에서 웰컴 티 세트를 준다고 하기에, 이제 슬슬 지겨워질 때도 됐지만 또다시 Afternoon Tea에 갔던 걸 한번 후회해 보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럭저럭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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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호텔 방으로 돌아와서 퍼블릭 배스에 들렀다 왔더니 이제는 저녁을 먹을 시각이 되었다. 하루 내내 먹기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의 프렌치는 맛있기로 유명하다니 기대를 품고 식당으로.

무화과와 채소를 곁들인 오리 콩피 애피타이저에서 시작하여, 전통적인 맛이라는 샬롯과 가리비로 만든 무언가, 닭고기와 포르치니 버섯이 들어 있다는 딤섬이 하나 둥둥 떠 있는 수프, 베이비 콘을 곁들인 생선 요리, 베리류의 과일맛이 나던 소르베, 메인 요리로 비프스테이크와 따뜻한 채소를 거쳐서 디저트와 차로 끝나는 코스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얘가 가장 맛있었던 듯.
음…….

일단 오리 고기는 좋아하지 않아서 어떤 부분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좋을지도 알 수 없으니 넘어가고, 전통적인 맛이라는 무언가는 정체는 모르겠지만 맛있었고, 딤섬이 들어있는 수프는 딤섬 피가 너무 두꺼운 것 같기는 했지만 수프 국물 자체는 시원했고, 생선 요리는 아마 그날 먹은 것 중에서는 가장 맛있었을 거고, 소르베야 뭐 맛있는 소르베 맛이었다. 하지만 메인 요리로 부탁했던 비프스테이크는 실망스러웠는데, 일단 고기 자체에 아무런 양념이 되어 있지 않아서 먹기가 불편했다. 뭐랄까 정말 육류를 먹고 있는 기분. 소스를 찍어먹기에는 소스의 양이 너무 적었고, 가장 큰 단점은 접시 위에 직접 소금을 뿌려서 채소를 올렸는지 채소가 소금에 푹 찌든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소금 절임 브로콜리를 제외하면 내 채소들은 그럭저럭 먹을 만은 했는데, 동행의 접시 위에는 소금이 다량으로 투하되었는지 모든 채소들이 소금에 절여진 상태였던 모양이다. 옆에 앉았던 다른 손님이 직원에게 계속해서 "too salty "라는 말을 하는 걸로 미루어 짐작컨대, 우리만 다량의 소금을 받은 건 아닌 듯했다.


그러니까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그냥 호텔 석식이라 생각하고 왔다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뭔가 프렌치로 유명한 레스토랑이라는 말을 줄곧 들어왔던 터라 지나치게 기대했던 게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식사를 끝내고 후기를 찾아보니 요즘 프렌치가 맛이 떨어졌다는 평이 몇 개 보이던데, 뭔가 바뀌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우리가 갔을 때만 소금 과다 투하 같은 실수가 있었던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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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정말 좋은 곳이었고, 어매니티도 턴다운 서비스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온천도 무척이나 좋았다. 퍼블릭 배스뿐 아니라 방에도 욕조가 있어서 물을 채워 들어갔는데, 호텔 직원의 말마따나 피부가 보들보들해지는 느낌이 바로 들어서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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