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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soda Feb 28. 2017

타이완 여행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 #6

느지막이 일어나서 조식을 먹고 온천에도 한 번 다녀온 뒤에 정오쯤 체크아웃을 했다.

조식은 중식과 양식 중에 선택이 가능한데, 동행과 나는 둘 다 양식을 골라서 엄청나게 커다란 오믈렛을 받았다. 처음에 주스를 고르라고 하기에 나는 오렌지를, 동행은 파인애플을 선택했는데 뭔가 과즙이 엄청나게 많이 든 생과일주스 같은 게 나왔고 엄청 맛있었다.

타이완 오렌지는 약간 싱거운 듯하면서도 맛있다.
케찹이 없는 게 아쉬웠으나 맛있기는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소파에 앉아서 셔틀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정말로 친절하고 예쁜 직원이 와서 사진을 몇 장 찍어줬는데, 생각보다 사진이 너무 잘 찍혀서 놀랐다. 덕분에 동행과 내가 같이 찍힌, 셀카가 아닌 제대로 된 사진도 생겼고. 

오늘부터 날씨가 추워지고 비가 올지도 모르니 조심해서 다니라는 말을 들으며 셔틀버스에 올랐다. 창밖을 바라보니 아까 그 직원이 손을 흔들어주고 있던데, 어찌나 느낌이 좋은 사람이던지.

날씨가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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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이를 뒤로 하고 다시 타이베이로.

오늘의 숙소는 호텔 쿼트라는 곳으로, 난징푸싱 역과 타이베이 아레나 역 중간쯤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는 게 단점이기는 하나 내부 시설이 깔끔하고 라운지 서비스가 좋은 곳이었다.

오후 한 시쯤 된 시각이라 체크인이 안 될 것 같아 가방만 맡겨놓을 생각이었는데, 직원이 체크인 처리도 해주었을 뿐 아니라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맡겨 놓았던 가방까지 방에 들여놓아 주었더라. 친절하기도 하지.


점심을 먹으러 먼저 갈까 아니면 치아더 베이커리에 가서 펑리수를 살까 잠깐 고민하다가, 일단 호텔에서 더 먼 곳에 위치한 치아더를 먼저 가기로 했다. 이게 실수였는데, 왜 그때 MRT 역 두 개 거리 즉 호텔에서 도보로 20분을 걸어서 가겠다고 결심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별로 비싸지도 않은 기본요금을 아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거기까지 가려면 점심을 먹으려고 정해두었던 레스토랑이 먼저 나오는데 말이다. 우리는 그 레스토랑 앞을 지나면서도 "흠, 라스트 오더가 2시네. 2시면 그냥저냥 갔다 올 수는 있겠다"라는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었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걸어서 다녀오기에는 그게 상당히 무리가 있는 계획이라는 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2시에 맞춰서 들어온다 해도 들어오자마자 주문한 뒤에 30분 만에 식사를 끝내야만 하지 않은가(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해야 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는 결정이었다. 특히 어딘가에 여행을 갔을 때 가끔씩 정말로 게으름을 무릅쓰고 부지런하게 행동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뭔가 이런 식으로 어정쩡한 실패를 한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단순한 착각일까.


아무튼 우리는 일단 치아더로 가서 펑리수와 밀크 케이크, 누가 크래커를 구입했다. 펑리수는 지난번에 누가 이런저런 맛을 다양하게 사다 줬지만 기본이 가장 맛있었던 기억이 나서 기본만 샀고, 맛을 알 수 없는 누가 크래커와 밀크 크래커는 한 상자씩만 구입했다. 집에 와서 뜯어먹어 보니, 밀크 케이크는 맛있기는 하지만 뭐 그리 특별한 맛은 아니라 낱개로 두어 개만 샀어도 충분했을 것 같고, 누가 크래커는……, 내가 사람들이 유명하다고 하는 동먼 역의 그 가게에 가서 사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치아더의 누가 크래커는 참 맛있었다. 짭조름한 야채 크래커 사이에 쫀득하고 달달한 누가가 어쩜 그렇게 맛있던지. 세 상자를 사 왔으면 질린다고 후회했을지도 모르지만 하다못해 두 상자는 사올걸 그랬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없어서 MRT로 한 정거장을 이동하여 덴수이러우點水樓에 갔는데, 정말로 라스트 오더 시간인 2시보다 딱 5분 일찍 들어갔다. "너네 라스트 오더 2시인데 괜찮아?"라고 물어보기에 "응, 괜찮아"라고 대답하고 들어왔는데, 아무리 그래도 뭘 주문할지도 정하지 않고 들어가서 5분 만에 메뉴판을 탐구하여 음식을 시키기엔 무리가 있었다. 요리가 나오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는 걸 감안하면 더 그러하고.


허겁지겁 메뉴판을 앞뒤로 뒤적이다가 일단 맛을 알고 있는 소룡포와 산라탕을 고르고, 일본 블로그를 참고하여 이름을 알 수 없는 매콤한 생선 누룽지 튀김 요리를 시켰다(NT$1,166). 

육즙이 정말 많았던 소룡포.
산라탕과 매콤한 생선튀김.

요리는 셋 다 맛있었는데 역시 밥을 천천히 먹는 나로서는 약 30분 만에 밥을 다 먹는 게 힘들기는 했다. 차도 마시면서 이야기도 나누면서 느긋하게 먹어야 하는데, 음식을 차례차례 입속으로 집어넣기만 해도 30분이 다 가버리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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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들러 짐을 놔두고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로 향했다. 애프터눈 티세트를 먹기에는 배가 너무 부르니, 가볍게 케이크 숍에서 차와 케이크를 먹기로 했다. 메뉴판에는 세트와 차 메뉴밖에 안 나와서 안에 들어가 직접 케이크 두 조각을 고르고 차를 시켰다. 나는 아리산 우롱차와 프랑부아즈를, 동행은 동방미인차와 핑크 레이디라는 케이크를 주문했다. 프랑부아즈야 뭐 익히 알고 있는 맛이고 진짜 맛있는 건 핑크 레이디였는데, 리치가 이렇게나 맛있는 과일인 줄 처음 알았다. 

달콤하고 맛있는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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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이 로즈 잼을 구입해서 손이 무거워진 바람에 어차피 역으로 가는 길이니 다시 잠깐 호텔에 들려서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중산 역으로 향했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에 나올 듯한 하늘이었다.

중산 역에서는 차와 다기를 샀다. 일단 왕덕전에서 아리산 우롱차와 로즈 우롱차를 산 뒤, 동행이 찾아온 지도에 의지하여 어딘가 골목길 안쪽에 조금 세련돼 보이는 가게가 늘어서 있는 구역에 위치한 가게에서 다기를 샀다. 비싸게 사려면 한없이 비싸질 수 있는 게 또 다기이지만, 특별 세일을 하고 있는 NT$2,000 남짓의 세트를 구입했다. 집에서 차를 마실 때마다 정말 만족스럽다. 다만, NT$4,000 남짓이라 포기했던 다반이 계속 눈에 아른거린다. 비단 헹군 찻물을 버리러 싱크대로 가는 게 귀찮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저녁은 배가 안 고파서 미츠코시 지하에 있는 춘수당에서 밀크티와 아즈키 라떼를 마시고 때웠다. 우엉 튀김과 닭튀김을 사 먹을 계획이었는데 안 팔아서 어찌나 아쉽던지. 회전율이 높아서 잘 팔리는 메뉴만 가져다 놓는 게 효율적이라 그런 것인지, 메뉴 자체가 너무 적은 것 같았다. 

아즈키 라떼는 녹은 팥빙수 맛. 하지만 맛있다. 껄껄.

여기까지 쓰고 사진 폴더를 보니 어느새 끝이다. 타이완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밀크티였다니, 배가 별로 안 고파도 어딘가 가서 뭔가 맛있는 걸 먹었어야 하는데!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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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귀국하는 날이고 정오 비행기라서 호텔에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해서 타고 갔다. 호텔에서 공항까지는 NT$1,100으로 정해져 있는 듯했다. 연결해준 직원도 공항까지 실어다 준 기사님도 굉장히 친절하고 좋았지만, 비행기는 한 시간 지연되어 어느 틈엔가 1시 출발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며 지연된 비행기를 기다리느라 면세점을 정말 찬찬히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심지어 우리 탑승동이 아닌 곳에 있는 면세점까지 둘러보았는데도 시간이 남아돌았다. 게다가 사람들이 다 탄 뒤에도 뭔가 탑승객 수속이 어쩌고 하면서 한참 동안을 더 활주로에서 뭉그적거렸는데, 돌아올 때 기내식으로 나왔던 따뜻한 제육덮밥 비슷한 무언가가 상당히 맛있지 않았더라면 화날 뻔했다. 


집에 돌아와서 짐 정리하고 어쩌고 하다 보니 하루가 다 갔는데, 여행의 마지막 날이란 늘 이렇게 이동만으로 시간이 다 가는 것 같다. 아침 9시에 타이베이의 호텔을 나섰는데 설렁탕 한 그릇 먹고 집에 왔더니 8시가 넘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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