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에게는 20명이나 되는 손주들이 있었다.
손주들이 우르르 모이는 명절이 되면 그 많은 손주들의 손가락에 하나하나 봉숭아 물을 들여주셨다.
작은 손톱 위에 빻은 봉숭아 잎을 올리며
첫눈이 올 때까지 꼭 남아있어야 할 텐데.
그래야 우리 손녀 첫사랑 이루어질 텐데, 그렇지?
하며 소녀처럼 웃으셨다.
내 어렸을 적 할머니는 유난히도 작은 몸집에 허리가 굽은 모습이었다.
언제부터 허리가 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 할머니는 항상 꼬부랑 할머니.
일곱이나 되는 자식을 키우느라 허리 한번 펴기 힘드셨을 것이다.
어려운 살림에 배고픈 자식들 입에 뭐라도 넣어주기 위해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할머니는 꿋꿋하시고 의지가 강하신 분이란 걸
아빠는 오랫동안 이야기해주셨다.
할머니는 3년이란 시간 동안 병원에 누워계셨다.
마지막 2년은 손주들 이름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셨다.
할머니는 유일하게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빨리 오세요, 혼자서 무서워요.
아이가 되어버린 할머니는 오랫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셨다.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못 뵈었다.
할머니는 내 이름을 기억 못 하셨지만 내가 오면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잦은 링거로 할머니 손은 파랗게 멍들어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대학에 실패했을 때
걱정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나를 꼭 안아주시며 넌 잘할 거야라고 믿어주셨다.
그렇게 강인하던 할머니는 너무도 약해지셨고 작아지셨다.
꼭 잡아드리면 부서질 것 같던 할머니의 손도 이제는 더 이상 잡아드릴 수 도 없지만,
돌아가시기 전에도, 지금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못난 손녀이지만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어요.
항상 그리워요. 나의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