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코 흘리던 11살, 담임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낯선 교실 문을 드르륵 열었다.
시끌벅적하던 교실 안이 순간 조용해지고 40명의 하얀 얼굴들이 날 쳐다본다. 남들 앞에서 주목받는 걸 즐기던 성격에다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꼬맹이는 어디로 가고 얼굴이 벌게져 선생님 뒤에 숨어 우물쭈물.
바닷가까지 달음박질로 10분이면 도착하는 동네에서 10년이라는 한 평생을 살았지만
또래들 사이에선 나름 하얀 얼굴에 세련된 여자애였다.
그랬던 내가 서울에 데려다 놓으니 그저 사투리 쓰는 볼빨간 꼬마가 되어 서있을 뿐.
4학년 1반에 창원에서 온 전학생이 있대! 쉬는 시간이 되자 교실 안보다 더 많은 꼬마들이 창문에 대롱대롱.
내 책상 주변에도 사투리로 말해보라며 눈을 반짝이는 꼬마들이 대롱대롱.
그 꼬마들 사이에 1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지겹게 볼 줄은 상상도 못 하였던 내 단짝이 매달려 있을 줄은
그땐 정말 몰랐다.
쌍꺼풀 없는 긴 눈. 동글동글하고 작은 얼굴. 노란 듯 하얀 피부에 웃음소리가 요란한 너는 꽤 장난꾸러기였다.
친구도 많았고 누구와도 잘 친해지는 서글서글한 성격 덕분에 난 금방 서울 학교가 좋아질 수 있었다.
주번도 같이, 우유 당번도 같이, 당연히 집도 같이.
그러다 우유 먹기 싫어서 학교 뒷문에 뽑기 팔던 아저씨한테 드리고 뽑기 빵 먹었는데.
입술 주변에 설탕 덩어리를 덕지덕지 묻히고 우리는 키득키득 웃으며 집으로 가곤 했다.
당연히 같은 중학교를 지원했고
당연히 같이 교복을 사러 갔고
당연히 같이 하굣길에 떡볶이를 사 먹었다.
넌 우리 언니, 동생과도 인사하는 사이에서 반말하는 사이가 되었고
우리 엄마랑 너희 엄마는 우리처럼 자주 만나 얘기하는 사이가 되었고
내가 처음으로 강아지를 데려왔을 때 너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갔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붙어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날 저녁 메뉴에 대해, 각자 가족들이 하루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왜 너한테 하고 싶었을까.
그렇게 우리는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최고의 공부 메이트, 수다 메이트, 여행 메이트, 맛집 메이트...
지겨운 줄도 모르고 내 인생 대부분의 일을 함께 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똑똑했던 너였다.
나보다 먼저 남부럽지 않은 명문대를 갔고
어렵다는 취업시장이 무색하게
나보다 먼저 그럴듯한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대학 입학도, 취업도 늦은 내 앞에서 단 한 번을 자랑하지 않았다.
자존심 센 내가 혹시나 기분 나빠할까 조언 한마디 하지 않고
그저 넌 뭘 해도 잘할 거라며 심드렁하게 한마디 던질 뿐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해, 기업에서 필요로 하지 않은 전공에, 중구난방인 스펙
게다가 높은 눈까지.
때아닌 방황을 하다
마음속에 숨겨놓았던 전망 없는 내 꿈을
술 한잔 걸친 날 어렵게 털어놓았을 때
그렇게나 무뚝뚝하던 넌 나 대신 울어주었다.
얼마나 힘들었니. 얼마나 말하기 어려웠니.
너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꾹꾹 참아왔던 내 마음도 무너져버렸고, 덕분에 조금 편하게 울 수 있었다.
고마워. 그동안 좀 울고 싶었거든.
실컷 울고 나니, 너는 퉁명스럽게 그랬다.
어렸을 적에 날 질투했었다고, 언제나 당당했고 어떤 모습을 하던 멋있었다고.
너의 눈에 지금도 멋진 내 모습을 사랑해달라고.
맨 정신엔 할 수 없었을 너의 그 말이 날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전망 없고 힘들고 좁은 길이지만
응원하는 네가 있기에 조금은 용기를 내어 걸어보기로 했다.
준비하던 대학원 원서를 삭제하던 날,
이 결정에 가장 큰 부싯돌이 되어준 네가 고맙다.
언젠가 내 인생의 영화가 끝날 때 엔딩 크레디트를 장식해 줄 여자.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내 단짝 친구로 있어준 너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