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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스무리 Feb 19. 2018

여기저기 흩어진 고민의 흔적을 모아

가끔 공책에 끄적이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며

필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리를 잘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리고 새 것을 사용하는 것을 즐겨 한다. 그래서 가끔 방 정리를 하다보면 맨앞 두 페이지 정도만 쓰인 공책들이 수두룩하다. 아주 돈 낭비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그래서 몇 개의 공책에서 취업 후 끄적인 글들을 찾을 수 있었고 이 글들을 모아 브런치에 담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이번 편은 몇 개의 글을 조각모음 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글. 2017년 1월 15일 (일)에 간단히 적은 일기

오늘은 정독 도서관에 방문했다. 서울의 구석구석에 아직도 내가 가보지 못한, 가볼 만한 곳들이 산재해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세상은 넓고 인생은 짧다'는 어느 누구의 아쉬움 가득한, 또 어떻게 보면 기대가 그득한 그 말에 공감하는 하루.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마음 가는 대로 발을 내디뎌 볼까 생각하다가도, 풀려고 해도 잘 풀리지 않는 꼬인 이어폰 줄처럼 얽히고 설킨 '나'와 '너'의 관계가 내 발목에 무거운 무게를 달아놓는다. 
앞으로도 이 다이어리에 개인적인 생각들을 적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일기는 필자가 서울 남산에 위치한 정독 도서관에 방문하여 작성한 것이다. 당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의 젊음이 아깝게 느껴지는 듯 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어폰 줄처럼 얽힌 '나'와 '너'는 마음대로 살고 싶은 '나의 마음'과, 이러한 결정을 어렵게 하는 주변 시선, 가족 등을 '너'라는 대명사로 나타내어 표현한 것이다. 지금 읽어도 공감이 가는 것이, 필자는 항상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나보다.


두 번째 글. 지점에서 파견 근무를 하게 된 첫날에 적은 일기

국내영업본부에서의 마지막 2주는 지점에서 보내게 된다. 오늘은 지점 근무 첫 날. 삶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공간. 지점 관할 내 대리점을 방문하며 만난 대리점 대표님은 아침에 온 문자를 늦은 오후에야 확인한다며, 당신이 보기엔 새파란 젊은 신입사원에게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그의 옅은 주름 뒤에서 그간 치열했을 지난 30여 년의 과거의 삶과, 여전히 치열해 보이는 오늘이 공존한다.
    지점을 책임지고 있는 지점장님과의 대화 도중,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면 도서관에서 밤을 새며 책을 읽고 싶다"는 그의 말 한 마디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낀다. 길지 않은 28년의 시간동안,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충분히 해내며 살아 왔을까? 
이제 28살이다. 내 인생도 이미 정해진 경로대로 철도를 달리는 기차처럼 정형화된 삶이 될까? 아니라면, 철도를 벗어나도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으면서 내가 스스로 나의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현명함과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내가 다녔던 회사는 마케팅 부서의 신입사원들을 6개월동안 국내영업본부에 파견하여 근무할 기회를 제공하였고, 그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고객 대응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지점에 2주동안 파견 근무를 하러 가는 것이었다. 마케팅을 하는 직원이 현장의 상황을 몰라서는 안 된다는 매우 중요한 생각에서 출발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 일기는 그 깨달음의 일부를 갈무리해놓은 것이다. (그러나 본사에서 이런 경험을 하고 온 신입사원들의 깨달음을 귀 기울여 듣지는 않는 것 같다) 한 편으로는 처음 느껴보는 삶의 치열함에 적잖이 놀라면서도, 과연 나는 30년 넘는 시간동안 동일한 업무를 지속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시나 좋은 직장에 몇십 년을 다니는 안정적인 삶이 필자가 원하는 것인지 파악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세 번째 글. <카페에서 (꿈 공장이라 표현하고 싶은)>

저마다의 이유를 가방 안에 푹 넣은 채 카페에 모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자리를 찾아 바삐 움직이는 눈, 그리고 드디어 꺼내드는 자신만의 이유. 마음이 허한지 책을 꺼내는 사람도 있고, 물리적으로 허한지 샌드위치를 꺼내는 사람도 있다. 많은 것이 담긴 노트북을 주섬주섬 챙기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겉보기에는 그저 하나의 카페일 지 모르지만, 이 장소는 학생, 회사원, 아저씨, 아줌마들의 생각과 꿈이 떠 다니는 공간이다. 그들이 가방에서 꺼내는 각자의 이유가 얼마나 무거울 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입 벌린 조개처럼 직각을 이루어 열려 있는 노트북 속에 담긴 무거운, 무거워서 때로는 무서운 그 삶의 무게를 내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안에 진주가 있기를 모두가 바랄 뿐이다. 
탁자 위엔 그들을 위한 색색의 음료가 놓여져 있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음료는 줄어들고, 음료가 줄어들 듯 우리 마음의 여유도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 같다. 맛있게 볶아지는 원두의 향기를 따라 시간의 향기도 흐르는 이 곳은 현대인들의 꿈 공장, 카페.

이 글은 일요일 오후 카페에 앉아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보며 끄적인 글이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일주일이 끝나는 일요일에는 각자가 보이는 미묘한 표정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일 출근 생각에 점점 어두워지는 회사원의 표정과,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으로 자소서를 적고 있는 취준생들, 학업에 집중하려는 학생과 그를 유혹하는 친구의 손길 등. 그 와중에 그들이 그려내는 각자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눈에 보이는 듯 하여 카페를 '꿈 공장'이라 표현한 것 같다. 아마도 필자가 내 자신의 미래와 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필자는 항상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로망과 꿈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긴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금까지의 인생 중 가장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한 6개월만이라도 꼬박꼬박 일기를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항상 생각만 하고 실행하는 옮기지 않는 버릇이 있는데... 이렇게 산산조각 난 필자의 글을 스스로 읽으며, 버르장머리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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