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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스무리 Feb 19. 2018

나를 위한 걱정일까?

걱정에 대한 두 번째 생각 나눔

걱정에 대한 첫 번째 글에서는, 타인을 걱정하는 행위 자체가 결국은 자기 자신의 만족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는 다소 공격적인 가설을 세워보았다. 가설에는 응당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한 법인 터, 내가 직장에 있을 때 겪은 일화 몇 개를 2% 정도 각색하여 증거로 제출하고자 한다. 


첫 번째. 마치 내가 태풍의 눈인 것마냥 나를 향해 쏟아지는 업무를 보며 걱정해주는 착한 대리님에 대한 일화

A대리: 봄봄아, 왜 네가 이런 일까지 하고 있냐... 진짜 걱정된다. 이것저것 할 게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나: 그러게요 대리님... 이건 제가 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그래도 막내사원이니까 제가 해야죠.

A대리: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좀 일다운 일을 배워야 하는데, 네가 회사에 실망할까봐 걱정이다 이 형은.

나: ㅎㅎ 아닙니다 대리님. 그래도 이런 것도 다 경험이 되겠죠~ 좀 짜증은 나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구요!

A대리: 그래, 네가 고생이구나. 얼른 나랑 같이 재미있는 업무를 하면서 제대로 된 일을 배워야 하는데...

이 대화에서 A대리님은 정말 고맙게도 필자를 걱정해주고 있다. 필자를 회사의 Ace로 거듭나도록 물심양면 도와주실 생각이셨던 A대리님은, 필자가 단순반복적인 업무만을 하고 있는 상황을 매우 안타까워 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형"이라는 단어는 필자와 A대리 사이가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 있(다고 A대리는 생각하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대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 많은 분들이 짐작하고 계실 지도 모르겠지만 - A대리님의 마지막 멘트이다 : "얼른 나랑 같이 재미있는 업무를 하자꾸나!"

그러니까 A대리님은 필자가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을 잡아먹는 업무만 하면서 능력을 낭비하는 상황에 대한 걱정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업무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업무에 매몰되어 본인을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A대리님이 진심으로 필자를 '걱정'했다면, 거두절미하고 자신이 도와줄 일은 없는지 물어봤을 것이다. 또 필자가 진짜로 재미있는 업무를 하길 원했다면, 재미있는 업무를 하자고 은근히 제안하기 전에 필자가 재미있어 하는 업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자 했을 것이다. 결국 이 일화를 통해, 나를 향한 그의 걱정이 돌고 돌아 그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 끝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데드라인이 지나고 나서야 그 업무의 존재를 깨달은 필자를 걱정하는 속 깊은 C과장님에 대한 일화

나: 앗! 와... 오늘까지 로열티 관련 전표 작성했어야 했네....

B대리: 왜 무슨 일 있어 봄봄아? (B대리님은 팀 내에서 필자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

나: 아, 제가 오늘까지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깜빡하고 있다가 지금에야 생각 났어요. 재무 관련 업무라서 데드라인 넘겨서 제출하는 전표를 받아줄 지 모르겠네요...

B대리: 아 그래? 에이, 걱정마~ 그 부서도 매일 늦는데 뭐. 하루 이틀 늦은 거는 받아줄 거야! 걱정 마!

나: 그랬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대리님.

C과장: (지나가던 중) 왜 봄봄아 무슨 일이야? 아 그 로열티? 그거 오늘까지 제출이잖아.
            (C과장은 필자와 같은 부서 內 다른 팀 소속)

나: 네, 근데 제가 깜빡하고 있다가 방금 알게 돼서 좀 늦을 것 같아요...

C과장: 그거 오늘까지 맞지? 그래, 난 어제 오후에 처리했거든. 그거 늦어서 어떡하냐...? 늦어도 괜찮대? 재무팀 쪽에서는 늦으면 잘 안 받아주는데... 나도 잊어버리고 있다가 어제 오후에 생각나서 급하게 처리했거든. 어쩌냐 봄봄아...걱정되네. 얼른 재무팀에 전화라도 해봐! 아, 나는 어제 생각나서 다행이다.

이 일화 속 C과장님은 데드라인을 넘길 위기에 처한 필자의 상황을 걱정해주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런 의도로 말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C과장님은 필자의 실수를 통해 본인이 기한 내에 업무를 잘 처리했음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정으로 필자를 걱정했다면, C과장은 막연히 걱정된다는 말보다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라도 주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거짓 걱정의 범람은 직장을 다니는 이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라 확신한다.  


위의 두 가지 일화를 작성하다 보니, 필자가 너무 정이 없고 모든 걱정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하지만 필자는 나름대로 긍정적이고 활발한, 또 자칭 재미있고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으로, 위의 일화들에서 보이는 필자의 시니컬한 삶의 태도는 저 걱정을 내뱉은 사람들이 어떠한 특성을 가진 생명체인지 충분히 겪어본 이후에 내린 결론이기 때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고 있지 않든 하루에 10번은 족히 넘는 걱정을 들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10번은 넘게 남을 걱정해주며 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삶의 태도가 '나'와 '남'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걱정의 본질은 '남'보다 '나'에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러면 진심이 담긴 '걱정'을 주고 받는 우리네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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