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4개월의 여정을 끝내다
예전에 읽은 칼럼의 문장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까치발을 딛고서라도 내가 몸담고 있는 구역 밖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필요하면 과감히 밖으로 나가보는 것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쉽지 않지만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출처 : 경향신문 기자칼럼, 기자의 한계, 홍진수 문화부 기자. 2019.09.18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909182044005
인생,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많이 산 것도 아니지만 적게 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다 문득문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음을 마주하게 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무겁게, 무섭게 느껴져 자주 무기력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변하고 싶었는데 너무 지쳐서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 날이 더 많았습니다.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 같아서, 마음 어딘가가 부서지기 시작했습니다.
변해야 한다는 걸 감지한지는 꽤 됐습니다. 다만 겁이 나고 게을러서 외면했던 것이죠. 어쨌거나 익숙한 상황은 편안하니까요. 비록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더라도요. 고통도 계속되면 익숙해잖아요.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으며 이제는 행동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어디일지, 얼마나 멀지, 어떤 길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스스로를 돌보며 ‘재활’과 ‘재건’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다음에 가야지, 다음에 만나자 미뤘던 행복을 다시 찾고 몸과 마음 모두 튼튼해지는 게 우선으로 두었습니다.
예전에 팀장님이 ‘사고는 수습하면 되는 것’, ‘이미 결정 난 일은 좋은 방향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라고 얘기해 주셨습니다. 이 말은 지금도 깊이 남아 ‘수습하고 좋은 방향으로 만들 것’이란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그런 노력을 하는 게 저에게 이로운 일이겠죠. 평생 편하게 살 팔자는 아닌 듯합니다. 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어떤 상태가 같은 상태로 오래 유지되는 건 못 견디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또 바깥세상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16년도부터 지금까지 동료들과 즐겁게 일했고, 많이 배웠고, 힘들었던 만큼 분명 성장한 것도 있습니다. 저는 이번 정류장에 내려 다음 버스를 타지 않고 도보 여행을 하려 합니다. 몇 정거장을 걸어 지나갈지, 다음 버스는 언제 탈지, 혹은 버스를 만들지도 모를 일이죠.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기대감도 듭니다.
일단은 5년 4개월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여독을 조금 풀어야겠습니다.